레르몬토프 문학의 이해와 감상 78
고일 / 건국대학교출판부 / 199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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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르몬토프와 같이 국내에 소개된 작품이 몇 편 되지 않아 번역본만으로는 작가의 작품세계 전반을 조망하기 힘든 경우 삶과 문학세계를 소개한 책이 매우 유용하다.

레르몬토프는 20대 후반에 사망하였다. 그의 작품세계는 충분한 성숙단계에 도달한 바로 그 순간에 때 이른 종말을 맞이하고 말았다. 따라서 그는 푸슈킨과 후대를 잊는 군소 작가 중 하나로 평가받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우리 시대의 영웅>과 <리곱스카야 공작부인>을 읽고 나서, 그의 서정시집을 일독한 후 이 책을 펼쳐든다.

무엇보다도 푸슈킨과 바이런의 세례를 받은 그가 어떻게 그들의 영향을 극복하고 독자성을 갖추어 나가는 과정이 흥미롭다. 확실히 <시인의 죽음> 이전 그의 단시들은 서경적, 서정적 낭만성으로 충만하였다. 이따금 보이는 환멸과 나태 등 면도 아직은 관념에 머물고 있다.

다수의 장시 내지 서사시를 통해 레르몬토프의 본령이 단시에 머물지 않았음을 알 수 있으며, 또한 희곡 작품에도 관심을 기울였음도 알게 된다. 레르몬토프는 일부 무지한 자들이 생각하듯이 우연히 끄적거린 한 편의 시와 소설로 명성을 얻은 운 좋은 유한귀족이 아니었다. 어렸을 때부터 불어와 영어를 철저히 공부하였고, 아랍어에도 관심을 가졌으며 이미 십대 시절부터 시를 쓰기 시작한 조숙한 문인의 면모를 보이고 있다.

비로소 <우리 시대의 영웅>의 페초린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리곱스카야 공작부인>의 페초린, 그리고 희곡 <가면무도회>의 아르베닌과 장시 <악마>의 인간적인 면을 지니는 악마. 이들은 모두 레르몬토프 자신의 분신이다. 당대 전제 군주정의 압정에서 자유의 공기를 압살당하고 운신이 제약받는 선구적 지식인이 겪는 시대와 사회와의 불화. “사회가 그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그 또한 사회의 질서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둘 사이에 존재하는 괴리는 극복될 수 없다.”(P.83)

그 속에서 주인공은 사회와 겉돌고 사랑에 무정하며, 자신에 체념한다. 이는 내면에 대한 자기비판과 외부에 대한 냉소 및 공격성으로 발현된다. 가슴속 한켠에 따스한 불빛을 품고 있으면서도 차가운 이성으로 불빛의 발산을 가로막는다.

“타인에게 행복은 안겨 주는 게 아니라 불행을 안겨 주는 운명을 타고난...이 점에서 이들은 철저히 비극적인 주인공이요, 악마적인 형상이다.” (P.92)

이러한 부조화와 억제된 갈등은 오래가지 못한다. 니트로글리세린이 조그만 충격이나 열에도 맹렬한 연소 작용으로 이어져 폭발하듯이. 현실의 레르몬토프는 결투에서 죽음을 맞이하였다. 존경하던 대선배의 뒤를 따라서. 작중의 페초린은 결투에서 상대에게 죽음을 안겨주고 페르시아로 총총히 떠난다. 그는 공녀 메리에게 사랑의 쓴맛을, 벨라에게는 사랑의 죽음을, 그리고 막심 막시므이치에게는 우정의 환멸을 안긴 채 조국을 떠난다. 아르베닌은 아내를 죽이고 자신마저 죽음에 이르게 하며, 악마는 사랑을 얻자마자 자신의 본성으로 사랑을 빼앗기고 만다.

레르몬토프의 요절은 향후 문학세계를 무한한 발전을 예상해 보면 참으로 아쉽지만 그의 작품 인물들의 행보를 통해서 이미 운명 지어졌다고 볼 수 있다. 그가 결투로 죽음을 맞이하기 5개월 전에 발표한 시 <유언>이 이를 입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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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08-24 0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2010.12.26 마이페이퍼로 쓴 글을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