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갈의 다프니스와 클로에
롱고스 지음, 김원중.최문희 옮김 / 세미콜론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3세기 경에 롱고스(Longos)에 의해 씌어진 것으로 생각되는 사랑 이야기다. 전원을 무대로 한 산문 구성의 목가적 사랑 이야기의 고전으로서 후대 많은 작품들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다.

시골에 버려진 아기, 아기의 신표, 빼어난 외모, 순진하고 자연 순응적인 삶, 주인공의 고난과 사랑의 성취, 그리고 밝혀진 출생의 비밀, 행복한 결말 등. 과거나 현재에도 여전히 통용되고 있는 고전적 사랑담의 기본 틀을 제시하고 있다.

무대는 그리스 레스보스 섬. 고대 그리스의 저명한 여류시인 사포로 유명해진 곳이며, 레즈비언의 어원이 되기도 한 곳이다. 섬 주민들은 제우스 신을 비롯한 디오니소스, 판과 님프들을 공경하는 고대문화의 유습을 독실하게 지니고 있다. 아직 기독교의 세례가 미치지 않아 볼 수 있는 이러한 이교도적 문화는 친숙하지는 않지만 오히려 진부함을 떨쳐내 작품에 소박하고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겨 색다른 재미를 준다.

다프니스는 염소를 치며, 클로에는 양을 돌본다. 그들은 한 곳에 양과 염소를 풀어놓고 나무 아래에 다정하게 앉아 다프니스의 팬파이프를 반주삼아 클로에가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푸르르고 상쾌한 하늘, 새들은 지저귀고 샘물이 졸졸졸 흘러가는데 미풍은 귓가를 간지럽힌다. 상상만 하더라도 절로 가슴 속이 흐뭇하고 시원해지면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되는 아름다운 광경이다.

다프니스와 클로에는 천진무구 자체이다. 자연의 본능에 따라 입을 맞추고 포옹을 하며 옷을 벗고 나란히 누워서 행복함을 즐기나 아직 이성 간의 육체적 성 관계는 알지 못한다. 그래서 때로는 뭔가 답답하고 미진함을 느끼지만 예나 지금이나 이를 가르쳐주는 이는 없다. 이웃의 유부녀인 리카이니온의 사랑 수업으로 성교의 즐거움을 알게 된 다프니스, 하지만 그는 첫 성교가 클로에를 아프게 할까봐 그녀와 행하지는 않는다.

이처럼 이 작품은 인위적 도덕률과 가식적 경건함의 외피를 두르지 않는다. 아직 문명의 위선이 들어오기 전 인간 본연의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거리낌 없이 묘사한다. 이것은 인간이 문명화되면서 잃어버린 가장 큰 미덕이기도 하다.

해적의 노략질과, 이웃 마을 메티나의 침공 등은 시대를 막론하고 존재하는 폭력과 전쟁의 그늘을 당대에도 엿볼 수 있다. 또한 이러한 간난신고는 주인공들의 행복한 결실에 필수적 통과의례이다.

롱고스의 글은 자체로서도 고전적 격조의 아름다움을 독자에게 제시하지만, 이 책을 더욱 빛나게 하는 것은 화가 마르크 샤갈의 빼어난 그림의 역할이다. 20세기의 뛰어난 화가인 샤갈은 1961년에 롱고스의 작품에 삽입할 칼라 판화 작품을 완성하였다. 총 41편의 그림은 글을 읽지 않고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작품의 느낌을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어 또 다른 즐거움이다. 하지만 역시 글과 그림의 결합이 목가적 글에 환상적 분위기를 더해주어 글과 그림의 행복한 만남의 미덕을 가시적으로 웅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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