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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랑의 이야기 - 발췌 ㅣ 지만지 고전선집 344
후안 루이스 지음, 안영옥 옮김 / 지만지고전천줄 / 200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14세기 전반에 발간된 이 작품은 장편 운문 소설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다. 원전이 방대하고 수록한 내용이 다양할 뿐만 아니라 부분적으로 소실된 경우도 있어 체계적 이해가 어렵다는 평이 있다. 게다가 이 번역본은 원전에서 3분의 1 정도를 발췌하여 번역하고 있어 번역의 질을 떠나서 작품의 전체적 이해가 매우 곤란하다.
이타의 수석사제 신분인 작가는 이 작품의 의도를 ‘나쁜 사랑’에만 열중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사랑’의 이야기를 통해 계도하는데 둔다. 여기서 나쁜 사랑은 속세의 미친 사랑을 지칭하며, 좋은 사랑은 신에 대한 사랑이다.
하지만 이어서 작가는 다른 말을 하고 있다. 인간이란 존재의 속성 상 미친 사랑에 빠져들 수밖에 없으며, 여기에 미친 사랑의 이야기를 통하여 제대로 된 미친 사랑을 하는 법을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작가의 진정한 의도가 이 중에서 무엇인지는 알기 어렵지만, 확실한 것은 이 작품에서 표제[비록 작가가 직접 붙인 것은 아니지만]와는 달리 좋은 사랑의 이야기는 찾아보기 어렵다.
전체적으로 화자인 작가가 사랑을 하고자 뭇 여성에게 구애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작가는 사랑과 여성의 의의에 대하여 긍정적인 견해를 밝힌다.
“여인이 남자에게 나쁜 것이라면, 남자의
몸에서 만든 여자를 남자에게 동반자로 주지 않을 것입니다.
좋은 일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그토록 귀족적으로 만들지도 않을 것입니다.” (P.44)
따라서 남성이 여성에게 사랑을 느끼고 구애를 하는 것은 당연한 본성이다. 예나 지금이나 남성들은 아름다운 여인에 시선을 돌린다. 여기서 의인화된 사랑(Amor)이 당시의 미인관을 들려준다.(P.77~78, 81~82)
애석하게도 화자의 노력은 별로 성공을 거두지 못한다. 번번이 헛수고에 그친 화자는 마침내 사랑(Amor)에게 불평을 털어놓고 비너스에게 하소연한다. 비너스의 조언을 받아들인 화자는 매파, 즉 뚜쟁이를 통해 도냐 엔드리나에 대한 구애에 성공한다. 매파와 뚜쟁이는 종이 한 끝 차이인데, 뚜쟁이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라 셀레스티나>의 원형을 여기에서 발견할 수 있다.
구애에서 매파의 중요성이 강조되므로 매파 우라카가 죽었을 때 화자의 상실감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그래서 화자는 매파를 데려간 죽음을 비난하며, 묘비명을 적기도 한다.
사실 이 작품에서 화자의 연애담은 그다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지 못한다. 화자와 여성 간의 담화 중에 인용하는 숱한 우화 및 일화가 작품의 재미를 더해 준다.
로마인들과 그리스인들 간에 일어난 이야기
사자와 여우에 대한 우화
땅의 출산에 대한 우화
알카라스 왕의 아들에 대한 예언
도둑과 개에 대한 우화
세 명의 여자와 결혼하고자 했던 젊은이에 대한 이야기
주피터에게 왕을 청했던 개구리들에 관한 우화
늑대와 학의 우화
화가 나서 자살한 사자의 우화
개구리를 믿은 두더지에 관한 우화
같은 여인을 동시에 사랑한 두 명의 게으름뱅이에 대한 이야기
화가 피타스 파야스에 대한 이야기
귀도 심장도 없는 당나귀에 대한 우화
이런 이야기들이 작품 속에 들어가 있으며, 게다가 ‘육체 씨와 사순절 양의 싸움’이라는 우화는 별도 장으로 길게 수록되어 있다.
이 작품은 무수한 단편의 모자이크로서, 민간 구비전승이 문자로 정착하는 시기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발췌본이 아니라 하루빨리 완전본이 나와야 작품의 진면목을 제대로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그건 그렇고 좋은 사랑에 대한 작가의 속내는 무엇일까? ‘탈라베라 사제들의 노래’를 보면, 정부를 두지 말라는 대주교의 칙령으로 모든 성직자들이 낙심하고, 일부는 집단으로 불복 상소를 내기도 한다. 이것이 작가의 내심을 슬쩍 표현한 게 아닐까?
“만일 주교가 그 일을 나쁘게 본다면
여러분들은 선행을 버리고 악행을 행하시오!” (P.1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