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뉴 - 에티오피아 전사들의 한국전쟁 참전기
키몬 스코르딜스 지음, 송인엽 옮김 / 오늘의책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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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당시 우리나라를 돕기 위해 참전한 국가는 미국만이 아니었다. UN군의 기치 아래 16개국이 참전하였다. 그 중에서 이색적인 것은 남미의 콜롬비아와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의 파병이다.

이 책은 그저 우리나라에게 있어 가난하고 비참한 아프리카의 한 약소국으로 인식되는 에티오피아가 당시 머나먼 아시아의 자그마한 분단국 대한민국을 위하여 전투 병력을 파병하고 그들의 전투 활약상을 기록한 기념비적인 저작이다.

에티오피아의 한국 파병부대명은 ‘강뉴’인데, 현지어로 ‘초전 박살’과 ‘혼돈에서 질서를 세우다’를 뜻한다고 하며, 당시 에티오피아 황제가 파병부대에 직접 하사한 부대명이라고 한다. 강뉴 부대는 대대 규모로 1951년부터 1956년까지 총 5진이 파견되었으며, 전원이 최정예인 황실근위대에서 선발되었다.

이쯤에서 에티오피아 황제가 파병한 배경이 궁금해진다.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에서는 독특한 종교, 문화적 독자성을 가진 국가다. 기독교 국가로서 수천 년간 독립 국가를 유지하였다. 그러다가 20세기 전반에 파시스트 이탈리아에 수년 간 강점당하는 비극을 겪었다. 당시 이탈리아의 부당한 침공에 맞서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는 UN의 전신인 국제연맹에 원조를 호소하였으나 국제연맹은 이를 외면한다. 이탈리아의 에티오피아 불법 침공이 묵인되는 것을 지켜본 나치의 히틀러는 곧바로 오스트리아를 병합하며 제2차 세계대전의 전초가 된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고 하지만, 당시 국제연맹이 이탈리아의 불법 침공을 강력히 제재하였다면 그 후 세계 역사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을 것이다.

어쨌든 약소국이 스스로를 지키는 길은 집단안보가 최선의 방법임을 인식한 에티오피아는 UN군에 적극 참여한다. 비록 과거 자신은 도움을 받지 못했지만 UN 결성 후 최초로 집단안보를 선언한 한국전쟁에 동참하는 길이 후일 자신들의 안보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에티오피아는 인류 평화를 보장하는 가장 확실하고 이상적인 수단으로 집단안보를 생각하고 있다. 이 나라는 집단안보 정신이 결여되어 1935년부터 이탈리아에 의해 5년 동안 점령되었던 뼈아픈 경험을 가졌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이 집단안보의 결여가 제2차 세계대전 발발의 중요한 한 원인이 되었다.” (P.27)

한국전쟁에서 강뉴 부대의 엄정한 규율과 과감한 용맹성은 많은 우방국들의 찬탄을 자아냈다. 그들은 크고 작은 253번의 전투에서 모두 승리하였으며, 단 한 명의 포로도 잡히지 않았다. 이런 연유로 한 그리스 종군기자가 그들의 활약상을 세계만방에 알리고자 펜을 들어 한국전쟁 정전 직후인 1954년에 출간하였고, 그것이 이제 50여년 만에 국내에 소개되었다.

순전히 책의 내용만을 살핀다면 단조롭고 평면적이다. 구체적인 전투의 기록이 생생하게 묘사된 게 아니라 부대의 지휘관 소개와 전투일지의 나열에 불과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흥미로운 전쟁 다큐를 기대하고 책을 집어 들면 실망이 클 것이다.

오히려 이 책의 가치는 그동안 외면당했던 한국전쟁에서 에티오피아 군대의 의의와 역할을 재발견하고, 그들이 머나먼 타국에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이 목숨을 바치러 온 연유가 무엇인가를 헤아리는 데 있다.

강뉴부대 출정식에서 한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의 축사를 잠시 들어보자. 황제의 축사는 과거의 체험과 맞물려 피를 토하는 절규가 느껴진다.

“집단안보 장치는 즉각적이고 절대적이어야 한다. 동료애가 있는 어떤 작은 나라도 어떤 민주주의 국가도 어떤 국민도 유엔의 집단안보 장치에 의해 그 독립이 보호되어야 한다...(중간생략)...집단안보에는 국경도 물리적 거리도 초월하도다. 이곳에서 머나먼 극동의 한 나라의 독립을 지키기 위한 집단안보 원칙에 참가하는 데에는 아무런 주저도 없으며 단지 유엔에 대한 회원국의 책임을 다하는 것뿐이도다.” (P.280~282)


우리나라는 집단안보 덕택에 국가의 명운을 존속할 수 있었다. 그리고 UN의 지원을 받던 국가에서 지원을 제공하는 유일한 국가, 세계가 주목하는 모범국가로 발전하였다. 이제 우리의 역할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현재 가난하다고 그들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과거의 우리는 그들보다 더욱 가난하고 처참한 처지였음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우리가 국제사회에 진 영원한 빚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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