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한발
앤드류 새먼 지음, 박수현 옮김, 안도섭 감수 / 시대정신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한국전쟁은 우리에게 남북한 간의 처절한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인식되지만, 사실 단순한 내전이 아니라 UN군을 비롯한 다수의 국가가 참전한 국제전이다.

소위 민주주의 진영의 참전국은 16개국인데, 절대다수의 병력과 병참 및 총사령관을 맡은 게 미국이라 아무래도 한국전쟁에 대한 기록과 시각은 미국 위주로 편향되기 쉽다.

영국은 UN군에 여단 병력을 파견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영국의 양국 간 정치적 유대관계 상 협조를 보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파견된 29여단은 한국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음에도 일반에게 널리 인식되지 못하고 있다.

저자는 재한 영국인 저널리스트로서 한국여성과 결혼하였다. 자연스레 한국과 영국의 관련 사안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잊혀진 전쟁’의 ‘잊혀진 전투’를 세상에 드러내고자 한다.

29여단은 3개 대대-글로스터 대대, 라이플스 대대, 퓨질리어스 대대-로 구성되어 있다. 1951년 초 오늘날의 송추인 해피밸리에서 라이플스 대대가 중심이 된 여단은 중국군과 혈투를 벌였고, 같은 해 4월 말에 적성 임진강 유역에서 여단 전체가 생사를 건 처절한 싸움을 벌였다. 그리고 이때 글로스터는 대대 자체가 궤멸되었다.

한국전쟁의 무수한 전투 중 영국군의 전투가 갖는 의의는 무엇인가?
전면 북진을 감행한 UN군에 대해 중국군은 두 차례의 대규모 공세를 가하여 압록강과 두만강 부근에서 전면 철수를 하게끔 만든다. 이어서 임진강을 넘어 3차 공세를 벌였고 해피밸리 전투는 이때 치러졌다. 영국군은 막대한 희생에도 불구하고 중국군의 맹공을 버텨냈다. 하지만 전선 동쪽 한국군 라인이 붕괴되면서 결국 UN군은 서울을 비롯한 한강 이북을 포기한다. 그것이 유명한 1.4 후퇴다.

잠시 소강상태 후 UN군은 조금씩 치고 올라가 임진강 유역까지 재수복하자 중국군은 UN군을 완전히 무너뜨리기 위하여 제5차 공세를 계획하여 막대한 병력을 투입한다.

“중국군의 팽 원수는 놀고 있던 게 아니었다...팽의 5번째 공격은 서울을 함락하는 것만을 목적으로 두지 않았다...공격은 쓸어버리는 데 목적이 있다.” (P.235)

이윽고 한탄강과 임진강이 합류하는 적성 일대에 주둔하던 29여단을 중국군 63군(3개 사단으로 구성된)이 파상공격을 해온다. 29여단은 수일에 걸친 처절한 항전으로 방어선을 사수하는데 성공하지만, 좌우의 UN군이 철수하면서 적군에 포위되고 만다. 죽음을 건 돌파로 겨우 여단의 전멸은 피했지만, 글로스터 대대를 잃고 말았다. 영국군의 저항은 보답을 받았다. UN군을 궤멸시키려던 중국군의 작전 의도는 강력한 저항으로 실패하고 UN군은 전열을 재정비할 귀중한 시간을 벌 수 있었던 것이다.

‘중국군의 5번째 공세’ 지도(P.446)를 보면, 중국군이 얼마다 대담한 작전을 전개하였으며, 29여단의 전투의 결과가 갖는 중요성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이 책의 장점은 전황 자체에 충실하다는 점이다. 국내의 한국전쟁 관련 저서가 대체로 전쟁 발발의 원인에 집중하며, <콜디스트 윈터>가 거시성과 미시성의 조화를 도모한 반면, 저자는 여기에서 전투 자체라는 미시성에 주목하고 이를 철저히 기술하는데 충실하다. 뜬구름 잡는 거대담론이 아닌 피와 살이 튀는 끔찍하지만 생생한 사실을 재현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모험담을 쓰듯 역사를 쓰기 원했다. 불안, 공포, 흥분, 환희를 담고자 했다.” (P.7)

이 책에서 흔히 인해전술로 오인되고 평가절하 되는 중국군의 진정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살아남은 영국군들은 중국군이 진짜 전사라고 이구동성으로 증언한다. 그들은 대체로 장비가 부족하고 효율적 작전전개와 대응을 하지 못하였을 뿐 개개인의 매섭고 끈질긴 전투력은 대단한 것이었다.

그래서 중국군을 과소평가하였던 전쟁 초기 미군이 유인책에 말려 큰 실패를 겪었던 것이다.

“중국 공산당은 만일 미국이 중국을 공격해 들어온다면, 해안 방어는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대신 험준한 내륙으로 적을 끌어들여 보병 위주의 근접전투를 벌일 계획을 세워놓고 있었다...근접전과 야간 작전이 그것이다.” (P.103)

“이는 인민해방군 전략가들이 꿈꿔왔던 기회였다. 그들의 적들은 평탄하지 못한 산악지형 깊숙이 유인되어 들어오고 있었고, 바로 그곳은 자신들이 싸움을 벌이기 선호하는 장소였기 때문이다.” (P.118)

중국군마저 인정할 정도로 무서운 용맹을 발휘한 영국군 개인이지만, 시선을 올려서 부대 단위에서 볼 때 흠결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용기를 인정하는 것과 미비한 측면을 지적하는 것은 별개의 사안이다.

먼저 그들은 측면의 한국군 및 미군 부대와 커뮤니케이션이 부족하였다. 그들은 오로지 상급부대의 지휘를 받아 전방을 주시하며 싸우는 데 주력하였다. 임진강 전투는 뼈아픈 경험을 제공하였다.

“임진강 전투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영국군 대대들은 자신들의 측면에 위치한 부대들과 상호 균형을 맞추는 데 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P.449)

또한 영국군은 적들을 맞아 전투를 벌이는 데 관심과 자원을 집중하였다. 보다 강력한 방어진지를 구축하기 위한 지뢰 매설, 철책 설치 등의 노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하였다. 그래서 중국군에게 근접 접근을 허용한 채 전투에 임하는 피해를 감수해야 했다. 그것은 자기 능력에 대한 자신감의 반영인 동시에 그만큼 중국군의 병력과 전투력에 대하여 경시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충분한 방어 준비를 갖추었더라면 여단의 대규모 피해는 상당히 감소했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주저항선을 요새화 하려는 시도도 없었다. 지뢰도, 철조망도, 적을 고착해 사살할 수 있는 다른 종류의 장애물도, 벙커도, 아군이 안전하게 기동할 수 있는 통신 참호도 없었다.” (P.517)

“(임진강 전투 이후) 라이플스의 부관 한 명은 “한국전 들어서는 처음으로 대대가 본격적으로 지뢰지대와 철책을 설치하기 시작했고, 포화를 견딜 수 있는 벙커 구축을 하게 됐다.”고 적고 있다.” (P.450)

영국군을 포함한 UN군의 분전은 보답을 받았다. 오늘날 우리나라가 자유세계의 당당한 일원으로 국제사회에서 날로 중요한 역할을 맡는 것을 보면, 참전용사들은 자신들의 청춘과 목숨을 바친 것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책은 이렇게 마친다.
“오히려 내가 이런 말이 하고 싶어, ‘저한테 감사하지 마십시오. 내 인생을 가치 있게 만든 건 여러분입니다. 내 자신을 돋보이게 해준 사람 또한 여러분입니다.’” (P.551)

그래도 우리는 절대로 잊어선 안 된다.
“대다수의 민간인들에게 전쟁은 자신들의 땅과 가족과 사회를 짓밟는 대학살이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그 전쟁이 옳은지 그른지는 상관이 없었다.” (P.181)

전쟁은 필요악도 아니며, 전쟁의 참혹성을 볼 때 전쟁 영웅의 예찬과 전쟁의 불가피성 옹호는 어불성설이다. 전쟁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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