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렐의 발명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5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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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몇몇 드라마나 영화 또는 그 주인공에 열광하는 것은 거기에서 심적 위안과 즐거움을 발견하는데 있다. 그것은 예술과 오락의 미덕이기도 하다.

한편 온라인 게임의 가장 큰 폐해는 게이머가 게임 밖과 게임 안의 공간을 구분하지 못하고 동일시하는데 있다. 즉 그는 현실 세상과 사이버 세상을 혼동한다. 그에게 진정한 세상은 괴로운 현실이 아니라 기쁨을 제공하는 사이버 세상일 수도 있다.

이 작품의 화자는 사형선고를 받은 도망범이다. 그는 현실 세계의 누구와도 접촉하는 것을 꺼린다. 그래서 아무도 가고자 하지 않는 악명 높은 외딴 섬에 스스로 들어간다.

아무도 없는 곳. 그런데 일군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떠들썩한 나날을 보내는 바람에 화자는 밀물이 몰려들면 물에 잠기는 저지대에 숨어 그들을 관찰한다. 그리고 한 여성을 바라보며 사랑의 감정을 품는다.

그는 그녀에게 다가가려고, 대화를 나누려고 하나 반응이 없다. 주위를 지나치는 인물들 모두 그의 존재를 아는 체하지 않는다. 그들은 어느 순간 홀연히 사라졌다가 수일 후 떠날 때와 마찬가지로 불현듯 나타난다. “언덕에는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P.70)

그는 자신이 허상이 아닌 실체로서 존재함을 안다. 코기토 에르고 숨. 그러면 그들은 무엇인가? 작가는 교묘히 암시한다. “그 사람들은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들은 순전히 헛것일지도 모른다.” (P.38~39)

화자는 그들이 모두 영상에 불과하며, 이 모든 것이 모렐의 발명임을 발견한다. 모렐은 인간의 모든 감각을 촬영하고 상영하는 기계를 만들고, 이 무인도에 자신과 화자가 사랑하는 포스틴, 그의 친구들과 함께 일주일 간 휴가를 보내며 전 과정을 촬영한다. 조수 간만의 차에 의해 발생한 전기를 동력으로 영사기는 영상을 반복하여 무한 상영한다.

“모든 감각이 동시에 작동하면 영혼이 나타납니다...마들렌이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미각적으로 존재한다면 그것은 그녀가 실제로 그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P.115)

“나는 그 사람들과 쉬지 않고 반복되는 그들의 행동에 경멸감을 느꼈다. 거의 토할 지경이었다. 그들은 수없이 언덕에 모습을 드러냈다. 인공적인 환영들로 가득 찬 섬에 있다는 것이 가장 참을 수 없는 악몽이었다.” (P.121)

모렐이 원한 것은 포스틴과의 불멸성. 인간의 유한한 삶을 떠나 영구히 재생되는 포스틴에 대한 자신의 사랑과 그녀에 대한 독점적 소유 그것이었다. 이것을 위해 그는 자신과 그녀, 다른 친구들의 목숨을 대가로 지불하였다. 그리고 치명적 전염병에 대한 소문으로 “자기가 만들어 낸 기계들과 불멸성을 보호”(P.152)하였다.

“이제 나는 모렐의 행동을 고귀하고 정당한 것으로 생각한다.” (P.159)

화자는 이제 모렐을 긍정한다. 화자 역시 포스틴과의 사랑을 이루고 싶어한다. 그는 영상 속에 자신이 들어갈 것을 결심한다. 그가 새로이 촬영을 하고 편집을 하는 동안, 그는 서서히 죽어간다. 전염병의 징후 그대로, 하지만 통증을 전혀 느끼지 못한 채.

“내 영혼은 아직 이 영상으로 옮겨가지 않았다. 만일 그랬다면 나는 이미 죽었을 것이고 아마도 포스틴을 더 이상 볼 수 없을 것이며 그 누구도 파괴할 수 없는 환상 속에서 그녀와 함께 있을 것이다.” (P.165)

이 작품은 까사레스의 대표작으로 인정받는다. 일찍이 26세인 1940년에, 이러한 작품을 쓸 수 있었다는 것은 그가 얼마나 시대를 선취하였는지를 웅변한다. 보르헤스의 서문에서처럼 당대는 심리 소설과 사실주의 소설이 주류를 이루었다. 이때 까사레스는 순전한 상상력을 가지고 현실에 기대지 않은 작품을 썼다.

까사레스는 세상을 러시아 인형[마트료쉬카]으로 파악한다. 훗날 그는 작품집으로 표제를 이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그의 환상은 막연한 공상이 아니다. “그에게 문학 속의 환상은 단지 일상으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우리의 일상 세계에 숨겨져 있는 또 다른 현실을 밝혀내려는 노력이다.” (P.172)

문학이 예술로서의 힘을 유지하는 것, 그것은 상상력이다. 독자는 문학에서 논픽션 다큐멘터리와 심리분석서를 기대하지 않는다. 문학에게 그것은 단지 본질을 드러내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기계문명과 정보화가 인간 세상을 옥죄어가는 당대와 현재, 문학도 점차 건조하여 윤기를 잃고 거칠어가고 있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를 필두로 한 중남미의 마술적 사실주의와 환상 문학에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도 여기에 멀지 않다.

뒤늦게 찾아 온 까사레스. 그의 이 소설은 함의가 무궁무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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