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디스트 윈터 - 한국전쟁의 감추어진 역사
데이비드 핼버스탬 지음, 이은진.정윤미 옮김 / 살림 / 200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일천 페이지가 넘어가는 이 두꺼운 책을 굳이 읽는 연유는 무엇보다도 가장 최근에 나온 책이며, 한국전쟁에 대해서 보다 세부적인 내용에 대한 기대감, 그리고 미국과 미군측 입장에서 바라본 한국전쟁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복합적인 것이다.

저자 핼버스탬은 일찍이 월남전을 다룬 책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언론인이라고 한다. 그의 유작이 된 이 책에서 핼버스탬은 소위 ‘잊혀진 전쟁’이 미국에서 철저히 잊혀질 수밖에 없었던 정치, 사회적 맥락과 군사적 실패를 철저히 분석하고 있다. 그럼에도 조금도 딱딱하지 않고 지루하지 않게 풀어나가는 솜씨는 과연 능숙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는 한국전쟁을 미시적 관점과 거시적 관점을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전투현장의 말단 병사의 행동과 목소리가 나오는가 싶더니 어느새 미국 행정부 최고위층의 정치 외교적 파워게임을 냉철하게 분석하고 있다. 이러한 변환자재는 글에 생명력과 활기를 불어넣어 저자의 주장에 한층 설득력을 높여주고 있다.

이 방대한 저작물을 심도 깊게 검토하고 중점사항을 논의한다면 전문적 연구역량을 필요로 할 것이므로 몇 가지 인상 깊은 대목을 중심으로 간단히 기술하고자 한다.


1. 중공군에 대한 무지와 공포

‘운산에서 얻은 교훈’으로 이 대작을 시작하는 것은 중공군과의 첫 교전과 걷잡을 수 없는 퇴각이 미군에 미친 충격의 강도를 말해준다.

인천상륙작전으로 일거에 전세를 역전시켜 북진을 한 유엔군은 청천강과 압록강 부근에서 보이지 않는 적으로부터 공격을 당한다. 당시 중공은 유엔군이 자국의 국경까지 진군할 경우 참전할 것임을 개전 초부터 강하게 천명하였다. 이는 북한군에 대한 원조와 아울러 장제스의 대만을 돕는 미국에 대한 적대적 경고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미군은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핼버스탬은 동경의 맥아더사령부와 전선의 미군지휘체계를 철저히 분석하면서 의도적인 정보의 왜곡이 개입(P.584)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한국전쟁의 발발 후, 맥아더는 총사령관이 되어 유엔군을 지휘한다. 지휘관이 전선에서 병사들과 동고동락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전쟁의 결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맥아더는 전쟁 중 한국에 단 하룻밤도 머물지 않았다(P.28). 동경에서 참모들에 둘러싸여 원격 지휘를 하였다. 전선 사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여기서 맥아더에 대한 재인식이 시작된다.
“한국전쟁에는 단층선이 있었다. 단층선의 한 면은 야전부대가 직면하는 전장의 위험과 현실의 세계고, 다른 면은 안일한 명령만 쏟아내는 도쿄 사령부에 있는 환영의 세계였다.”(P.46)

저자를 포함한 미군사관들은 맥아더의 결정적 오판이 북진에 있다고 한다. 적당한 장소, 예컨대 평양 정도에서 전선을 안정화시키고 숨고르기를 하지 않고 파죽지세로 밀어붙이는 데만 급급하여 전쟁 초기 인민군이 저질렀던 실수를 그대로 반복하였다. 이는 인민군 외에 숨어있는 적은 없다는 오만한 단정에 근거한 것으로 중공군의 존재를 외면 내지 무시하였다.

중공군의 참전 가능성에 대한 오판은 단순 시위용 해석 또는 정치적 판단의 가능성을 포괄한다. 당시 미국 정계는 대중국 정책을 놓고 입장이 팽팽하게 갈려 있는 상태였다. 소위 차이나핸즈의 객관적 중국정세와 장제스 측의 차이나로비의 친대만, 반공산 세력으로. 맥아더는 진작부터 차이나로비와 가깝게 지냈다. 그는 인민군을 단숨에 싹쓸어버려 최소한 한반도에서 공산세력을 일소하려고 하였다. 그리고 중공국의 참전 후 만주 폭격 및 핵공격 등 확전을 통해 기회를 틈타 중공과도 전면전을 불사할 의도도 감추지 않았다.

저자는 중공군의 공격방식에 대해서도 참신한 분석을 제시한다. 중공군은 병력 수만 믿고 막무가내로 전진하는 소위 ‘인해전술’로 유명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물론 유엔군에 비해 화기와 장비 면에서 열악하므로 이를 만회하기 위해 압도적인 병력을 투입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은 철저한 전략을 마련하여 매복전과 심리전으로 상대를 압박하였다. 그런 면에서 유엔군의 북진 후 전면 퇴각은 바로 중공군의 함정에 빠진 결과이다. 중공군은 진즉에 북한에 진주하였지만, 철저한 은폐로 유엔군의 눈을 속이고 그들이 자신들이 파놓은 함정에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그들[중공군]은 북한의 산악 지대에서 남한군과 유엔군 부대가 북쪽으로 더 깊숙이 진격하여 이미 무리하게 늘어진 보급선이 더 길어지기를 기다렸다...미군이 북쪽으로 더 깊숙이 들어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P.31)
“미군이 덫에 걸려들면 중공군은 바로 전쟁에 뛰어들 게 분명했다. 중공군은 이미 수적으로 열악한 미군과 남한군이 압록강 이북으로 북진하면 거대한 산악지대에 부딪혀 결집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P.33)

청천강과 장진호에서 당한 참패와 치욕, 그리고 뒤이은 걷잡을 수 없는 퇴각으로 미군은 중공군에 대해 공포심에 떨게 되었다. 평지보다 산지를, 낮보다 밤 행군을 선호하며, 종적을 남기지 않고 어느새 후방으로 가서 포위하는 신출귀몰한 전술, 그리고 무엇보다 어지간한해서는 감당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병력 등.

저자는 미군이 중공군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고 싸우는 요령을 찾아낸 것을 지평리전투와 원주전투를 계기로 삼고 있다. 아군이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고 막대한 수의 적군에 포위당했다 하더라도 포병의 화력 지원과 공군을 이용한 군수물자의 지속적 공급이 뒷받침된다면 충분히 대적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후 미군과 중공군의 전투 양상을 고지를 둘러싼 소위 땅따먹기 형태로 변화한다. 개전 초기 같은 전면적 전진과 후퇴는 더 이상 불가능하였다. 다만 변화된 전투방식은 가장 큰 단점은 무수한 인명을 대가로 요구한다는 점에 있다. 전부대원이 전사하는 순간까지 절대 후퇴 없이 적진을 향해 총격을 가해야 겨우 승리를 담보할 수 있었다.


2. 맥아더의 신화 깨뜨리기

우리나라 사람에게 맥아더는 신격화된 존재이다. 한때 월미도의 맥아더 동상을 철거하자는 주장이 제기되었지만 강력한 역풍은 오히려 그의 존재의 거대함을 상기시켜줄 뿐이었다.

이 책은 한국전쟁을 다루고 있지만, 내면적으로는 맥아더와 트루먼 간의 정치적 대결 상황을 기본적 갈등구조로 삼고 있다. 대통령에게 복종하지 않는 장군의 이미지는 경례를 하지 않은 장면에 함축되어 있다. 한국전쟁의 신화, 맥아더의 참모습은 우리가 알고 상상했던 것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저자는 그의 부친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 가계를 분석하여 그의 명예욕과 권력욕을 신랄하게 까발린다. 태평양전쟁 초기에 패퇴하여 호주로 철군하였을 때 책임을 물어 그를 해임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쟁 초기의 패전은 전적으로 그의 적정에 대한 무지와 인종차별적 편견에 따른 오만의 결과라고 말이다.

한국전쟁 발발 당시, 미군 총사령관은 맥아더였다. 맥아더는 제2차 세계대전 중은 물론 그 이후 까지 태평양 지역의 미군을 총괄하였다. 그는 일본제국의 항복을 받아냈으며, 그의 명성은 웬만한 정치인을 능가하고 그의 화려한 경력은 대통령보다도 뛰어났다. 그의 자존심과 명예와 경력과 그리고 나이는 그로 하여금 자신이 대통령의 지휘를 받는 군인이라는 지위를 망각시켰다. 사실 그는 오랫동안 일본 동경에서 제왕처럼 군림하였으며, 그 주변에는 자신의 사람들로 장벽을 둘렀다.

맥아더와 트루먼은 서로를 무시하였으며, 또한 두려워하였다. 트루먼은 맥아더의 명성과 권위를, 맥아더는 트루먼의 지위를 부러워하였다. 그들의 관계는 총사령관과 군통수권자의 관계를 뛰어넘었다.
“트루먼은 맥아더를 통제하지 못해 대통령의 위엄에 심각한 손상을 입었고, 맥아더는 대통령직을 제대로 존중하지 않음으로써 역사적으로 자신의 위상에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 (P.195)

양자가 모두 타격을 입었다. 하지만 역사는 맥아더의 과오에 더 비중을 둔다. 어쨌든 그는 상관의 명령과 지시를 따르지 않았으며, 그것은 군인으로서 가장 나쁜 잘못이었다. 맥아더 자신 또한 부하의 명령 불복종은 절대 용납하지 않았다.

3. 미국과 한국전쟁

한국전쟁의 트라우마는 오늘날 우리사회에도 여전히 짙게 배어있다. 이념에 관한 한 우리사회는 아직 닫힌사회다. 그것은 이념이 단순히 이데올로기에 국한된 사안이 아니라 전쟁과 결부된데 연유한다.

그렇다면 미국에게 있어 한국전쟁은 무엇인가? 한국전쟁은 월남전과 다르게 ‘잊혀진 전쟁’으로 치부되어 왔으며 정당성도 취약한 것으로 인식되었다.

“한국전쟁은 단순히 국경을 넘어 북한이 남한을 침공한 도발 이상의 의미였다. 식민 지배를 거치면서 십수 년 동안 쌓였던 내부 분열과 모순 그리고 오랜 정치갈등이 터져 나온 위험한 상황이었다.” (P.110)

저자 역시 최근의 역사인식을 따르고 있다. 한국전쟁은 국제전과 내전이 묘하게 결합된 형태로서 외부세력의 영향과 내부적 모순이 증폭작용을 일으켰다고 본다.

미국에게 있어 남한은 전략적으로 중요한 가치가 없었다. 그래서 애치슨라인에서도 남한을 제외한 것인데, 전후 국방예산의 대폭적 삭감과 국방력의 약화를 겪는 미국으로서는 남한에 최소한의 치안유지 병력을 남긴 채 보다 중요한 일본 방어에 우선순위를 두었다.

따라서 공산주의 세력은 미국의 대응을 완전히 오판하였으며, 미국에게 있어 한국전쟁이 발발하였을 때 “문제는 미국이 한국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가 아니라 공산주의의 도발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관한 거였다.” (P.132) 즉 공산세력의 도발을 방치하면 나치가 슬금슬금 오스트리아와 체코를 먹어치운 것과 같은 사태가 재발할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남침을 저지한 것과 북진은 전혀 다른 사안이었다. 미국은 중공과의 충돌을 극도로 꺼려하였다. 이는 맥아더가 북진을 주장한 이유와 맥락을 같이한다. 즉 대만에 쫓겨와있던 장제스의 바램대로 “중국의 한국전쟁 개입은 필연적으로 장제스 정부가 그토록 원하던 갈등을 유발할 게 분명했다.” (P.481) 장제스와 차이나로비는 중공과의 전면전을 통해 공산세력을 무너뜨리고 중국을 서구권에 복귀시키기를 고대하였으며, 맥아더는 이를 지지하였다.

따라서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한국전쟁 중 미군의 가장 큰 실수는 바로 무모한 북진에 있다고 저자는 평가한다.
“미국이 한국전쟁에서 저지른 가장 큰 실수는 중공군이 참전하지 않을 거라고 큰소리치면서 압록강까지 적군을 추격한 일이었다.” (P.974)

중공군의 개입으로 일거에 다시금 한강 이남까지 퇴각하면서 전쟁은 당초 예상보다 장기전이 되었으며, 유엔군을 포함한 미군은 커다란 인명적 피해를 입게 되었다. 미국의 시각에 북진은 잘못된 결정이라고 보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하지만 우리의 주관적 시각에서 북진이 없었다면 그 후 전쟁과 국내외 정치사회 상황이 어떤 식으로 전개되었을지는 예측할 수 없다. 국민의 감성 측면에서도 패퇴한 적을 소탕할 기회를 놓치는 것은 용서할 수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북진 자체가 실수가 아니라 중공군의 개입 가능성을 외면하고 아무런 대비 없이 무작정 북진한 것이 잘못이라고 보는 게 보다 옳은 논지라고 하겠다.

미국에게 한국전쟁은 아무런 역사적 의의도 갖지 못한 잊혀진 전쟁으로 인식되는 게 타당할까? 저자는 미국의 한국전쟁 참전의 정당성을 참전용사의 시각을 빌어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인민군이 두 번 다시 남한을 넘보지 않았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미국이 한국전쟁에 참전한 것은 정당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했다.” (P.1014)

“어차피 누군가가 나서서 해야 할 일이었다.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봐도 참전하는 것 말고는 달리 뾰족한 수가 없었던 것 같았다.” (P.1015)

※ 미8군 사령관 월튼 워커 장군에 대한 재인식이 필요하다. 워커의 자취는 광진구 워커힐에 남아있다. 그는 맥아더의 무시와 참모진의 외면, 그리고 열악한 지원에도 꿋꿋이 인민군의 공격을 막아냈다. 그의 낙동강 방어전의 성공은 인천상륙작전의 기반이 되었지만, 생전은 물론 전사 이후에도 그에 대한 평가는 그다지 높지 않다.

“낙동강방어선전투를 지휘했던 월튼 워커는 미군 역사를 통틀어 공로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가장 불운한 사람이 되었다....무기 상태도 엉망이고 병력도 턱없이 부족한 군대를 이끌고 우수한 전투력을 갖춘 사나운 적의 진격을 막고자 힘겹게 사투를 벌였다.” (P.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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