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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 끝나지 않은 전쟁, 끝나야 할 전쟁
박태균 지음 / 책과함께 / 2005년 6월
평점 :
2010년은 한국전쟁 발발 60주년을 맞이하는 해다. 좀 늦었지만 일련의 한국전쟁 관련 서적을 읽어볼 계획이다. 왜냐고? 그건 내가 이 나라의 국민이며 이 나라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타이틀 부제처럼 한국전쟁은 ‘끝나지 않은 전쟁’이며, ‘끝나야 할 전쟁’이다. 우리나라의 미래는 한국전쟁의 진정한 종전 이후에 가능하다.
한국전쟁, 솔직히 아직은 6·25사변이라는 명칭이 더 입에 익숙하다. 수십 년간 교육받은 결과는 하루아침에 바꿔지지 않으니까. 한국전쟁은 종결된 전쟁이 아니며 여전히 진행형이다. 그리고 잊혀진 것도 아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여전히 우리의 가족 중 연장자들은 대부분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가지고 살아왔다. 나는 해당 없다고 섣불리 단언하지 말라. 우리 현대사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방면에서 좋건 나쁘건 한국전쟁과 그 후폭풍에 압도적인 영향을 받아왔다.
그런데 우리는 한국전쟁을 잘 알고 있는가? 교과서에서 나열된 단편적인 상식, 그리고 가끔씩 TV에서 보여주는 낯선 흑백화면들. 무척 잘 알고 있을 듯하지만, 사실은 대부분 혹은 전혀 실상을 알지 못한다. 그 원인은 무엇이고, 전개과정은 우리가 알 듯 영웅적이었는지, 휴전 협정과 그 이후는 어떠했는지 말이다.
저자는 대단히 객관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가급적 한 발짝 떨어져서 차분한 어조로 한국전쟁에 관한 각종 주장과 학설들을 소개하고 비판한다. 물론 그도 뜨거운 한국 사람인지라 부분적으로 감정이 치솟는 것을 억제하지 못하는 때도 있다. 그것을 단점으로 칭한다면 가혹한 일일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여기서 한국전쟁에 관한 모든 것을 다루려고 하지 않는다. 개론서의 미덕에 충실하다. 여기서 드라마틱한 전쟁 장면의 전개를 기대한다면 실망할 것이다. 나도 조금은 실망하였다. 하지만 작가의 진짜 관심은 전쟁 그 자체가 아니라 전쟁으로 피해 받은 인간과 사회이며, 여기에 안타까움과 애틋함을 감추지 않는다.
한국전쟁의 발생 원인에 대해서는 과거 분분한 논의가 있었다. 전통적인 전격 남침설에, 브루스 커밍스의 유명한 저작에 힘입은 수정설, 그리고 일부의 북침설 등. 그동안 학교에서 교육받은 원인은 물론 전격 남침설이다. 피에 굶주린 북괴가 전격적으로 38선을 넘어와 평화롭게 살아가던 남한을 일대 아수라장으로 몰고 갔다는 것이다.
브루스 커밍스의 공헌은 한국전쟁에 대한 기원을 단지 1950년에 맞추었던 인식을 1945년으로 끌어올린 데 있다. 해방과 곧 이은 분단, 그리고 분단의 고착과정이 전쟁의 진정한 원인이며, 1950년은 고조된 긴장이 분출된 시점이었다. 저자 박태균은 좌우익의 대립이라는 내적 기원론과 미국과 소련에 귀인하는 외적 기원론을 세심하게 분석 및 비판하고 있다. 부분적 책임은 있지만 전체를 귀인할 수는 없다고 판단한다.
“한국전쟁의 기원을 정치세력들 사이의 대립과 갈등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두 번째 이유는 당시 정치세력들 사이에는 갈등의 골을 메울 수 있는 공통분모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P.55)
“미국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식민지 지역에서 공산주의의 확산이라는 문제에 부딪혔던 것이다...미국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더 적극적이고 공세적인 정책을 실시해야 했다. 그리고 그러한 정책이 한반도의 분단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이다.” (P.71)
“문제는 외세가 어떻게 한 나라를 분단시킬 수 있었는가를 해명하는 점이다. 이는 외세의 힘만으로는 가능하지 않다. 분단을 하려는 외세의 힘에 부합하는 내부의 힘이 있어야 한다. 앞서 살펴본 다양한 정치세력의 갈등, 그리고 그 갈등을 통합으로 풀기 보다는 외세와 결탁하여 특정 지역에서라도 주도권을 장악하려 했던 정치적 이해관계가 바로 분단의 충분조건이 되는 것이다.” (P.81)
우리 현대사의 비극은 과거사가 청산되지 못한 상황에서 민족보다 개인의 야망이 우연성과 결부하여 필연성으로 나아갔다는 점이며, 그 여파는 21세기의 대한민국을 여전히 옥죄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로 재평가하자는 논의를 제기하고 있지만, 이승만은 건국의 아버지가 아니라, 올바른 건국을 망치고 민족과 국가에 영영 씻어낼 수 없는 상처를 만든 장본인이라는 명약관화한 사실은 결코 외면되거나 은폐할 수 없다.
“이승만 정부의 북진통일론은 이승만이 주장한 민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보여준다. 그가 주장한 민족은 보통 국민들로 구성된 민족은 아니었다. 만약 그랬다면, 민족 구성원들을 또다시 죽음으로 몰아넣는 북진통일론을 주장하지 말았어야 했다. 민족 구성원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으면서 대관절 어떤 민족을 구하려 했단 말인가? (P.297)
저자는 분단과 분단극복 활동에 특별히 한 장을 할애하여 서술하고 있다. 저자의 좌우합작세력에 대한 지지와 여운형의 실패에 대한 아쉬움은 무엇보다 그것의 성공이 분단의 조기 극복과 장차 다가올 거대한 전쟁을 미연에 방지하는 유일한 해법이라는 인식에서이다. 하지만 역사는 주전파와 매파의 선명성을 선호하며, 주화파와 비둘기파는 언제나 회색분자로 매도당하기 십상이다.
“여운형은 통일국가가 수립되었을 때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었던 유일한 정치인이었다. 통일국가가 수립되었을 때 다양한 정치세력들을 포괄하면서 미국과 소련의 합의를 끌어낼 인물이 그 말고는 없었다.” (P.107)
“역사에는 결과론적으로만 평가해서는 풀리지 않는 측면이 있다...분단국가가 수립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국민 정서였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당시 좌우합작운동과 남북연석회의는 사회적인 공감대를 충실하게 반영한 것이었다.” (P.109)
한국전쟁은 기본적으로 내전이다. 전개과정에서 미군과 유엔군의 참전, 중공군의 참전이 잇달아지면서 국제전으로 확전되었지만, 발발 최초에는 남과 북의 군대 간 힘겨루기였다. 미국과 소련의 정보 공개 이후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김일성의 남침 요청에 스탈린은 매우 망설였다. 그러다가 1949년 이후 정세 변화에 따라 개전해도 미국이 참전하지 않을 것이고, 단시일 내에 전쟁을 종결지을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여 전쟁을 승인하였다.
“전쟁 계획을 입안한 것은 북한이었다. 다만 개전 후 외부 세력이 개입할 경우 북한 단독으로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는 어렵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래서 북한 지도부는 동분서주했다. 소련과 중국의 도움이 필요했던 것이다.” (P.170)
“전쟁은 기습적이고 신속해야 합니다. 남조선과 미국이 정신을 차릴 틈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강력한 저항과 국제적 지원이 동원될 시간을 주지 말아야 합니다.” (P.167)
전쟁의 전개과정을 저자는 남과 북의 각각 실패과정으로 파악한다. 북한은 당초 구상대로 조기에 남한을 통일하는데 실패하였다. 그리고 미군은 간신히 낙동강방어선을 확보하고 인천상륙작전을 통해 북한국의 허리를 끊는데 성공했지만 완전히 제압하는데 실패하였고 무분별한 북진으로 중공군의 참전과 뼈아픈 후퇴를 겪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지금까지의 연구에서 한국전쟁의 전개과정에 대한 서술은 대개 ‘성공’의 과정으로만 그려져 왔다...그러나 이제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참혹한 이 전쟁은 앞에서 보았듯이 실패의 연속과정이었다. 그렇기에 어느 누구도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P.243)
그런데 전쟁은 단순한 정치적 게임이 아니다. 전쟁의 피해는 고스란히 군인과 민간인에게 돌아간다. 대개의 경우 그들의 피해는 드러나지 않거나 공론화되지 않을 뿐이다. 최근에서야 노근리 학살사건 등 민간의 전쟁 피해의 실체가 조금씩 밝혀지고 있다. 저자는 민간인 피해와 세균전 의혹 등에 대해서도 언급하지만, 이는 개론적 차원에 국한하고 있다. 다른 저자의 <전쟁과 사회>가 전자에 대한 본격적 연구서이며, 후자에 대해서는 아직 구체적 연구가 진행되지 못하였음을 토로한다.
“불행한 사실은, 실패의 피해는 전적으로 병사들이나 후방의 민간인들에게 돌아간다는 것이다. 전쟁 지휘자들이 실패에 대해 지는 책임은 지극히 적거나 또는 전혀 책임지지 않는 경우도 많다.” (P.244)
“전쟁에서 가장 직접적인 피해를 입는 것은 전선에서 싸우는 군인들이다. 그러나 전쟁은 전선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후방에서도 벌어지기 때문에 군인 아닌 민간인도 엄청난 피해를 입는다. 민간인학살과 같은 피해도 있고, 정치적 갈등이나 경제적 곤란 같은 피해도 있다...민간인학살과 이산가족 문제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P.328~329)
한국전쟁의 결과는 무수한 인명과 막대한 재산의 손실만이 아니다. 전쟁은 잠정 분단을 영구화하였고, 이후 미국과 소련의 외교정책에 영향을 미쳐 국제 정세는 이데올로기 간 첨예한 냉전 체제가 강화되었다. 게다가 남과 북은 모두 김일성과 이승만에 의한 독재 체제가 구축되어 북쪽에서는 여전히 그리고 남쪽에서는 최근까지도 억압이 끊이지 않았음을 상기해야 한다.
“한국전쟁은 분단을 고착화시켰다. 단지 눈에 보이는 분단을 넘어서 한국인들의 마음속에 분단을 고착화시킨 것이다.” (P.360)
“한국전쟁의 경험은 베트남에 대한 적극적인 개입을 가로막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 점 또한 한국전쟁이 미국의 대외정책에 미친 중요한 변화가 될 것이다. 38선 이북으로의 진격이 가져왔던 엄청난 실패는 그 후 10년이 지나도록 미국이 제3세계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지 못하는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P.362)
이 책이 한국전쟁 전반을 아우르는 총서가 아니다. 400면 남짓한 분량으로 우리 역사와 사회에 처참한 상흔을 남긴 일대 전쟁의 전모를 어찌 담아내겠는가. 그래서 저자는 중요한 쟁점을 중심으로 논점을 명확히 하거나 과거의 관습적 인식에 날카로운 분석의 칼을 던지고 있다. 이를 통해 한국전쟁의 성격이 무엇이고 그 여파에 오늘날까지 드리워져 있음을 독자에게 일깨우고 싶었던 게 아닐까?
* 앞으로 천천히 읽어나갈 한국전쟁 관련 책들이다. 앞으로 갈길이 아득하지만, 우리 현대사를 올바르게 인식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콜디스트 윈터 (데이비트 핼버스탬) : 미군의 시각
내가 물러서면 나를 쏴라 (백선엽) : 한국군 최고지휘관의 시각
마지막 한발 (앤드류 새먼) : 영국군의 시각
한국전쟁1 - 맥아더·클라크·리지웨이 보고서 (미 해외참전용사협회) : 미군 최고지휘관의 시각
전쟁과 사회 (김동춘) : 민간인피해
한국전쟁의 진실과 수수께끼 (A.V.토르쿠노프) : 전쟁 발발의 기원
한국전쟁 (정병준) : 한국전쟁의 총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