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할 수 없는 사랑의 가벼움
마리아 데 사야스이 소토마요르 지음 / 현재 / 1999년 10월
평점 :
절판


17세기 스페인 여류 문학가 마리아 데 사야스 이 소토마요르. 그녀는 세르반테스의 후세대로서 보카치오와 세르반테스의 강한 영향을 받아 여성주의적 시각에서 독자적 작품을 남겼다. 각 10편으로 이루어진 <Novelas amorosas y ejemplares>(1637)와 <Desengaños Amorosos>(1647)이 그것이다. 각각 ‘사랑의 모범소설 또는 사랑에 눈먼 이야기’와 ‘사랑의 환멸’로 번역될 수 있다.

특히 전자는 작품명에서 세르반테스의 <모범소설>의 직접적 영향을 드러낸다. 세르반테스를 제외하고 국내에서 그다지 없는 스페인 황금세기 문학, 더구나 여류작가의 작품이 부분적이나마 출간되었다는 사실 그 자체가 경이롭다.

이 책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의 가벼움>은 바로 <Novelas amorosas y ejemplares>에서 5편을 발췌하여 번역한 것이다.

수록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용서할 수 없는 사랑의 가벼움
- 나는 모자란 여자가 더 좋아
- 속고 속이는 사랑의 종말
- 대가없는 사랑은 없다
- 순결한 사랑은 마법보다 강하다

전체적으로 데카메론 유형의 가벼우면서도 당대 현실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필치가 자못 흥미롭다. 읽는 데 있어 전혀 부담을 주지 않는다. 더구나 제재가 영원한 테마 ‘사랑’에 관한 것이므로.

흔히들 기독교적 가치관의 강력한 지배와 명예와 정조 관념이 투철한 당대 스페인 사회(비단 동시대 유럽도 마찬가지지만)에서는 귀족층의 경우 도덕적으로 순결성이 유지될 것으로 생각한다. 그것이 한낱 착시에 불과함을 이 작품은 일거에 산산조각 낸다. 더구나 여성에 의한 적극적 고발이기에 참신함과 설득력을 배가한다.

그럼으로써 옮긴이의 말마따나 “외모와 돈으로 표상되는 공허한 사랑의 굴레는 현대 사회의 특유한 현상이 아니라 시대를 초월한 인간 사회의 변함없는 엄연한 진리”(P.236)임을 깨닫게 된다.

<용서할 수 없는 사랑의 가벼움>에서 아민타의 순결을 빼앗고자 하는 하신토를 돕는 정부 플로라의 마음가짐이 이채롭다. 연인의 바람기를 돕는다! 하지만 그녀의 속셈은 참으로 무섭다.

“플로라는 하신토가 아민타를 품에 넣고 나면 금세 지겨워할 것이고, 또 아민타도 이제 곧 불행의 늪으로 빠질 거라 생각하면서 그들을 신방으로 안내했다. 플로라는 하신토가 아민타에게는 치욕과 불행만 남기고, 다시 자기 품안으로 돌아올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P.31)

결국 아민타는 자신의 명예를 깨뜨린 하신타와 플로라를 죽임으로써 복수에 성공하고 마르틴과 결합하여 행복하게 살았다. 해피엔딩이다!

그런데 정말 행복한 결말일까? 아민타의 입장에서는 행복하다. 하지만 본인의 실수로 인한 작은아버지와 가문의 불행과 불명예는? 약혼자인 사촌 루이스의 입장은? 여기에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작가는 주인공의 운명에만 초점을 맞춤으로써 은연중 타인의 피해와 불운은 외면하는 당대의 세태를 여실히 보여준다.

<나는 모자란 여자가 더 좋아>의 파드리께를 비난할 수 있는 이는 없다. 그는 자신의 잇달은 체험으로 신념을 강화시켰다.

“나쁜 여자가 있으면 좋은 여자도 있다. 모두가 한결같을 수 없는 법이다. 하지만 그는 여자들을 믿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특히 똑똑하고 현명한 여자일수록 더 믿을 수 없다는 거였다.” (P.66)

그래서 공작부인의 설득력 있는 반론에 동의하지 않는다.

“멍청한 여자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잘 모른답니다. 오히려 총명한 여자가 그런 위험에서 자신을 지킬 줄 알지요. 그건 당신의 편견이에요. 모든 이치를 깨달은 총명한 여자가 훨씬 나을 거예요.” (P.96)

파드리께는 똑똑함과 굳은 정조를 동일선상으로 파악하는 우를 범했다. 똑똑하면서 소위 헤픈 여성도 있지만 진실로 현명함과 정조를 동시에 갖춘 여성도 있는 법이다.

설사 그렇게 믿었는데 그게 아니라면? 그것은 파드리께의 깨달음에서 찾을 수 있다.

“파드리께는 그제야 똑똑한 여자들이 체면을 지킬 줄 알며, 만의 하나 체면에 어긋난 행동을 해도, 명예에 금이 가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는 공작부인의 말을 떠올렸다.” (P.110)

이는 씁쓸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만의 하나 정조를 깨뜨려도 남의 이목에 드러나지 않게 행동하는 게 똑똑한 여자의 미덕이다. 세상의 남자들이여 여자의 정조를 믿지 마라. 그대들이 여성들을 유혹하려 드는 것처럼.

<속고 속이는 사랑의 종말>에서는 마르코스의 불행에 불쌍함을 금할 수 없다. 마르코스의 잘못은 절정기에 다다른 스페인의 사치와 낭비의 관습에 동참하지 않은(사실은 동참할 여력도 안되지만) 사실이다. 근검절약으로 돈을 모아 오붓한 가정을 꾸리고자 하는 그를 악인으로 볼 수 없다. 따라서 우습지만 차마 웃을 수 없음에 마음이 아프다.

<대가없는 사랑은 없다>를 보면, 작가는 작품에서 권선징악을 의도하지 않음을 명확히 알게 된다. 사실 선과 악의 명확한 경계를 설정하기 어렵다. 평범한 주인공이 한 순간 악인으로 변했으나 다시 선인으로 돌아와 뒤늦은 행복을 누린다. 호르헤는 그렇게 콘스탄사를 포기하고, 테오도시아를 얻었다. 호르헤의 동생 페데리코, 질투에 눈 먼 형에게 죽임을 당하는 불운을 맞이하는 그는 쓸쓸히 잊혀졌다.

<순결한 사랑은 마법보다 강하다>를 읽으며, 후대의 제인 오스틴을 떠올린다. 사랑과 결혼이 인생의 주된 과제인 여성. 이는 여성의 지위가 남성 즉, 남편에 의해 좌우되는 현실에서 여성에게는 가장 첨예한 이해가 달린 사안인 탓이다. 현실은 17세기에도 그리고 21세기의 요즘도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변함없다. 그래서 독자는 페르난도에 대한 후아나의 질긴 사랑과 운명에 동정을 보내며, 클라라의 헌신과 현명한 처신, 그리고 되찾은 행복에 박수를 보내게 된다.

마리아 데 사야스 이 소토마요르의 작품집이 온전한 형태로 국내에 출간될 수 있다면, 그만큼 우리의 문학적 이해도와 감수성을 더욱 폭넓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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