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셀레스띠나
페르난도 데 로하스 지음, 안영옥 옮김 / 전예원 / 199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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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에 쓰인 스페인의 고전문학이다. 이 작품의 의의는 “‘만일 스페인에 <돈 키호테>가 없었다면 대신 그 영광을 누렸을 작품’이란 말 한마디로 설명된다.”(P.5)고 옮긴이는 설명한다. 수많은 독자와 평론가들이 인류 최고의 문학 유산으로 손꼽는 <돈 키호테>에 버금가는 작품이라니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이 작품은 특이한 구성을 택하고 있다. 대화체 소설 또는 희곡의 성격을 모두 갖추고 있어 명확한 장르 규정이 어렵다. 아직 문학의 세밀한 분화가 이루어지기 전이므로 이렇게 형식상 혼용이 이루어지고 있는 듯하다. 이는 우리 고전문학에서 판소리와 판소리체 소설의 관계와 유사하다.

우연히 만나게 된 갈리스또와 멜리베아. 갈리스또는 멜리베아의 사랑을 성취하기 위한 중개인으로 셀레스띠나를 요청한다. 셀레스띠나의 계책으로 멜리베아도 갈리스또를 사랑하게 되고 두 사람은 사랑을 나눈다. 이때 중개 성공에 대한 보상의 분배로 갈리스또의 두 하인은 셀레스띠나와 다투다가 죽이게 되고 자신들도 교수형을 당한다. 한편 갈리스또는 담장에 걸쳐놓은 사다리를 급히 넘어오다가 실족하여 목숨을 잃게 되고 절망한 멜리베아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문학상 영원한 테마인 남녀 간의 사랑이 이 작품의 핵심 소재이다. 하지만 여기엔 사랑과, 탐욕, 질투와 시기 등 인간사의 적나라한 모습이 가감없이 그려져 있다. 중세의 신성을 벗어나 서서히 르네상스로 이행하는 과정의 세계상이다.

갈리스또는 당당하게 멜리베아에게 청혼하지 않는다. 아니, 전혀 결혼 등 미래에 대한 언약을 언급하지 않는다.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가문 간에 철천지원수 사이도 아니다. 귀족과 평민(또는 천민) 등 신분상 격차가 존재하지도 않는데. 통상적인 만남과 교제 절차를 따랐다면 연인 간, 하인과 셀레스띠나의 비극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갈리스또는 처음부터 은밀하게 만남을 주선할 방책만을 강구하였다. 그래서 셀레스띠나가 개입할 여지가 발생한 것이다.

이에 대해 옮긴이는 해설을 덧붙인다. 갈리스또는 정통 스페인 귀족가문이며, 멜리베아 집안은 개종한 유대인이라는 사실. 따라서 귀족이라는 타이틀은 획득했지만 정상적인 통혼은 꿈도 꾸지 못할 관계라는 것. 이 점을 염두에 두면 갈리스또와 멜리베아의 세간의 이목을 피하는 사랑과 괴로움이 다소 이해된다.

작품의 표면상 주인공은 두 연인이지만, 실질적 주인공은 셀레스띠나다. 그래서 작품 표제도 변화하였다. 셀레스띠나는 마녀로 불리는 노파로, 창녀들의 포주이며, 마을의 만능해결사이기도 하다. 그녀는 약품을 사용하여 창녀의 머리털 색을 바꾸거나, 피부를 매끄럽게 하고 심지어는 숫처녀로 감쪽같이 위장하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사기꾼이기도 한 셈이다. 여하튼 그녀는 복합적 속성을 지닌 존재로서, 작품 전개의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갈리스또의 두 하인, 셈쁘로니오와 빠르메노, 그리고 셀레스띠나와 같이 지내는 두 창녀, 엘리시아와 아레우사도 각기 당대 서민사회의 참모습을 보여준다는 면에서 중요하다. 두 하인의 탐욕, 특히 빠르메노의 충직한 하인에서 일탈하는 과정은 과연 갈리스또라는 인물이 사랑에 빠져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소위 말하는 뛰어난 인물인지 의심스럽게 만든다. 갈리스또와 멜리베아의 귀족적 고상과 우아함과 대비되는 속인들의 생생하면서도 비속하기까지한 일상을 네 남녀는 말과 행동으로 숨김없이 예증한다.

이 작품을 관통하는 핵심어는 사랑이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셀레스띠나는 멜리베아에게 이렇게 말한다.
“숨겨진 불이요, 즐거운 상처며, 맛있는 독약이며, 달콤한 비통에, 유쾌한 아픔에, 즐거운 고통, 그리고 달고도 쓰라린 상처에 부드러운 죽음이죠.” (P.112)

그리고 이 작품을 지배하는 가치관은 바로 철저한 현세주의다. 인생은 죽고 나면 아무 소용없는 것, 한창 젊고 아름다울 때 인생을 즐겨라 늙어지면 못 노나니!

“젊은이들이 해야 할 일은, 아니 너희들 고유의 일이란 즐기는 것뿐이야. 지금보다 더 나은 때가 올 거라고 생각하면서 기다리면 어느새인지도 모르게 지나가 버리는 게 젊음이야.” (P.58)
“오늘 먹을 것이 있는 한 내일은 생각하지 말자. 많이 가진 자나 가난한 자나 죽는 건 매한가지. 우리는 영원히 사는 게 아니잖아요? 즐기자구요.” (P.70)

<라 셀레스띠나>는 중세 엄격주의와 신성주의에 대한 아래로부터의 도발인 셈이다.

* 이 책은 완역본이 아니다. 옮긴이는 스페인 문부성에서 라디오 방송용으로 각색한 작품을 참조하였다고 적어놓고 있다. 따라서 이 작품에 대한 맛보기 또는 소개작으로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 최근에 옮긴이가 새로이 완역본을 출간하였다.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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