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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사리요 데 토르메스의 삶 그의 행운과 불운 - 지만지고전천줄 78
작자 미상, 최낙원 옮김 / 지만지고전천줄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이 왜소한 책은 외양과 달리 스페인 문학사, 나아가 세계 문학사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 작품이다. 바로 스페인 문학이 창시한 피카레스크 소설, 소위 악한(惡漢) 소설의 선구자에 해당한다. 본격적인 악한 소설은 해설에도 나와 있듯이 마테오 알레만의 <구스만 데 알파라체>라고 한다. 다만 이 작품은 국내 번역본은 나와 있지 않아 실체를 알 수 없다.
이 책은 16세기 중엽에 씌어졌는데, 주인공 라사로가 자신의 삶과 인생역정을 진술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라사로를 ‘악한’으로 볼 수 없다는 점이 본격적 피카레스크와 차이점이다. 라사로는 사회 밑바닥 생활을 겪으면서도 가슴 한켠에 따뜻한 온정을 놓지 않는다. 그는 무정하고 냉혹한 악한이 될 수 없다.
“현실이 그러한데도 저는 그를 미워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고요. 그는 더 가진 것도 없고, 더 가질 수 있는 능력조차도 없었으니까요. 사실 그에 대해서는 미운 마음보다는 연민이 앞섰습니다.” (P.106)
이 작품은 당대 로망스와 기사 문학이 판치던 시기에, 왕공(王公)이 아니라 평민을 주인공으로 삼아 귀족 생활의 구름 위 세상이 아니라 두 발로 단단히 대지를 밟고 있는 이 세계의 현실을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다.
그가 겪는 사람과 사회의 모습은 결코 우아하지도 정의롭지도 않다. 남을 속이기를 밥보다 더 자주 먹듯이 하고(맹인, 면죄부 포교사), 인색하기가 자린고비를 능가하며(맹인, 신부), 온통 허세와 위선(하급 귀족, 수석 사제)으로 가득 차 있다. 이는 속세뿐만 아니라 성직 사회도 다를 바 없다. 따라서 성직자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 곳곳에 나타나 있어 한동안 금서 목록에 오르게 된 적도 있다.
“주님, 당신은 알고 계십니까? 저런 부류의 사람들이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이 살고 있으며, 주님을 위해서는 조금도 고통을 받으려 하지 않는 저들이 정말 별것도 아닌 하찮은 명예를 위해서 어떠한 고통도 참고 견딘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P.89~90)
라사로는 가난(대부분은 심한 배고픔)과 고달픈 운명을 벗어나기 위하여 인색한 주인과 속고 속이기를 거듭한다. 그에게 인생의 최고선은 기아를 벗어나 보다 높은 지위로 올라가는 것이다. 필요하다면 허위와 기만은 언제든 이용할 수 있다. 우리는 그를 비난할 수 없다. 옛말에도 사흘 굶으면 남의 집 담을 뛰어넘는다고 하지 않던가. 라사로는 최소한 동냥을 했지 훔치거나 강탈하지는 않는다.
“궁핍은 항상 위대한 스승인지라 저는 밤낮없이 온통 배고픔을 해결하는 데에만 생각이 매달려 있었습니다.” (P.74)
“그것은 단지 배가 고파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보다도 운명은 왜 그렇게도 나에게 잔인한가 하는 절망감 때문이었습니다.” (P.89)
라사로는 후에 포고 담당 공무원이 되어 자리를 잡고, 수석 사제의 도움으로 그의 하녀와 결혼도 하게 되어 안정된 삶에 다가선다. 비록 그의 아내와 수석 사제가 부적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그에게 이것은 더 이상 중요한 문제가 되지 않으니까.
라사리요 토르메스의 파장은, 마테오 알레만을 거쳐 그 유명한 세르반테스에게까지 흘러간다. 세르반테스의 <모범 소설>과 <돈 키호테>는 피카레스크의 작용과 반작용과 무관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