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진 항아리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 지음, 김기선 옮김 / 성신여자대학교출판부 / 2005년 2월
평점 :
절판


<슈로펜슈타인 일가>와 비교할 때 너무나 눈부신 발전을 보여주는 이 작품을 보면 확실히 클라이스트라는 작가의 천재적 소질을 인식하게 된다. 모든 면에서 전작과는 월등한 성취에 도달하여 동일 작가의 작품인지 의심마저 일으킬 정도다. 독일 연극사의 3대 희극으로 꼽힌다고 한다.

이 작품은 완벽한 희극이며, 법정극이자 심리극이기도 하다. 단 1막으로 구성되었는데, 이는 장면간 고조되는 박진감과 긴장감을 놓치지 않으려는 작가의 절묘한 의도라고 하겠다. 확실히 초반 아담 판사의 인물을 형상화하는 부분에서 리히터 서기관과의 대화를 통해 아담 판사의 면모가 짐작된다.

항아리를 깨뜨린 범인을 놓고 벌이는 공방전은 얼핏 하찮고 우습게 보이지만 사실은 피고 루프레히트의 약혼녀 에바의 정절과 순결에 관련된 사항이므로 만만치 않다.

“네 명예가 이 항아리에 달려 있었던 거야...만인이 주시하는 가운데서 항아리와 함께 네 명예가 깨진 거야.” (P.42)

에바의 어머니 마르테 부인은 따라서 심야에 에바의 방에 있다가 항아리를 깨뜨린 사람이 루프레히트가 되어야만 도덕적 손가락질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반면 루프레히트는 약혼녀 에바가 다른 남자를 만난 것으로 생각하고 분개한다. 에바는 명확한 해명을 주저한다.

다른 인물들의 성격이 고정되어 크게 변함이 없는 반면, 아담 판사는 극적으로 눈부신 변신을 거듭한다. 호색하고 욕심 많으면서도 교묘한 척 하지만 사실은 어리숙하기 그지없다. 엄숙한 판사에서, 희극적 언행을 보이다가 어떻게 하면 곤경에서 벗어날까 능청스럽게 굴면서도 재판을 교묘하게 왜곡하려고 노력한다. 루프레히트를 범인으로 몰기 힘들자 또 다른 청년, 이어서 악마가 범인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렇게 웃음과 동정이 교차하는 아담 판사의 인물을 제대로 소화하려면 실제 무대에서는 대단히 뛰어난 배우가 아니면 안 될 것이다. 그의 연기에 따라 극 전체의 분위기와 흥망이 좌우된다.

검열관 발터와 서기관 리히트는 사건의 실상을 밝히고 이른바 정의를 구현하는 데 있어 구심적 역할을 수행한다. 하지만 그들의 태도는 매우 상반된다.

발터는 모범적 검열관이다. ‘암행어사 박문수’의 독일판 재현이라고 하겠다. 그는 아담 판사의 두서없는 태도와 모호한 행적에서 사건을 직감하고 교묘히 압박해 들어간다. 그리고 최후에 사법 정의를 선언한다.

서기관은 어떠한가? 그는 아담 판사의 하급자인 동시에 상급자 유고시 판사를 대행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실제로 앞마을에서 검열관은 부정을 저지른 판사를 내쫓고 서기관을 판사로 임명하였다. 리히트는 초반부에는 온순한 듯하지만 암암리에 아담 판사를 의심하고 진범을 밝혀내기 위해 후반부에는 오히려 사건 심리를 주도하여 마침내 목표를 달성한다. 하지만 새로운 판사 리히트는 과연 아담 판사보다 나은 인물일까?

“공탁금이라던가 이자 절취라던가, 그런 걸 거론할 수야 있겠지만 누가 그런 데 대해서 근사한 연설을 하겠나?” (P.18)

이 작품은 아담 판사의 흥미진진한 캐릭터 변화를 지켜보는 즐거움이 넘친다. 또한 자기가 스스로를 재판하면서 범인이 아니게끔 유도하는 우스꽝스러운 시도에서 재판의 역설을 만끽한다. 그리고 아담 판사의 추잡한 에바 유혹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에바의 순결이 빛을 발하며 에바와 루프레히트가 행복한 손을 잡는 장면에서는 순수한 기쁨을 느끼게 한다. 이 모든 게 한 치의 삐걱거림도 없이 맞물려서 극적 고양감을 드높이는 수법은 대가의 연륜마저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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