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로펜슈타인 일가
배중환 엮음 / 부산외국어대학교출판부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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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이스트는 짧은 생애 동안 8편의 단편소설과 8편의 희곡 작품을 남겼다. 작품의 비중과 의의를 감안할 때 그의 주력은 단연 희곡이며, 괴테와 실러의 뒤를 이은 19세기 독일 최대의 극작가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다행히 국내에는 그의 희곡 작품이 모두 번역되어 있다. 이제부터 찬찬히 그의 희곡들을 훑어나갈 계획이다. 희곡의 장르적 특성상 문자만으로 온전한 감상과 이해는 어렵겠지만 수박겉핥기나마 그와 그의 문학을 더 잘 이해하고 싶다.

<슈로펜슈타인 일가>는 그의 첫 극작품이다. 독일 슈바벤 지역을 배경으로 슈로펜슈타인 가문의 두 가계인 로지츠 가와 바르반트 가의 갈등과 대립, 파멸과 극적인 화해를 서술하고 있다. 착상은 분명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이탈리아와 독일이라는 배경 및 작가의 성향 차이로 어둡고 무거우며 긴박감을 자아내는 극적 구성을 가지고 있다.

상속자가 없으면 전 재산이 다른 가계로 넘어가게 되는 오래된 상속계약은 상대방이 자신의 가계를 단절시키려고 음모를 꾸민다는 의심을 낳게 되고, 이것이 우연한 사고를 오해로 빚게 하고 갈등은 증폭된다. 재물이 피보다 진하다는 속설은 여기서도 동서양의 구분을 가리지 않는다.

오해와 증오로 눈과 귀가 막힌 사람들에게 합리적 이성과 설득은 외면되고 처참한 대접을 받는다. 이러한 상황을 반전시키는 길은 오토카르와 아그네스 두 가계의 미래 상속자 간에 싹튼 사랑과 행복한 결합. 하지만 사태는 그들의 사랑을 밝은 빛으로 안내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의 만남 사실은 마지막 치명타를 날릴 좋을 기회로 인식되고 만다.

두 젊은 남녀의 죽음으로 양 가계는 극적인 화해를 하는데, 이 화해가 온전할지는 자못 의심스럽다. 루페르트의 화해의 손에 질베스터는 얼굴을 돌리고 손을 내미는 장면이 이를 암시하는 게 아닐까.

제재의 선택과 긴박한 구성은 이의 없이 매우 뛰어나다. 가문간 대립과 개인간 사랑이라는 이루어질 수 없는 관계를 클라이스트 특유의 갈등 증폭적인 긴박한 글쓰기 수법이 더욱 고조시키고 있다. 다만 우연성의 개입과 인물 대화와 행동의 과도한 비개연성이 작품에의 몰입과 깊은 이해에 역작용을 하고 있어 아쉽다.

<로베르 귀스카르>는 미완성작이다. 현재는 당초 구성에서 단편만 남아 있을 뿐이다. ‘로베르 귀스카르’ 또는 ‘로베르 기스카르’는 11세기의 실존 인물로서 노르만 왕으로 당시 교황과 연계하여 이탈리아와 시칠리아에 비잔틴과 이슬람 세력을 몰아내고 노르만 왕국을 세웠다. 나아가 그는 비잔틴 제국을 정복하고자 진격하던 중 그리스에서 병사하고 만다. 유명한 카노사의 굴욕 사건과도 관련이 있다.

미완성작이니만큼 전체적 구조와 연관하여 작품의 완성도를 논하기 어렵다. 다만 페스트에 발목 잡혀 귀국을 청원하는 병사들, 병마에 시달리지만 굴복하지 않으려고 버티는 귀스카르, 후계구도를 둘러싸고 첨예한 신경전을 벌이는 아들 로베르와 조카 아벨라르 등 극의 재미와 긴장을 강화하는 대립적 요소들이 중첩하고 있어 편린에서나마 흥미진진함을 느낄 수 있다. 완성본이 존재했다면 어쩔지 아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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