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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과 비르지니 - 그린북스 92 ㅣ 그린북스 92
생 피에르 지음 / 청목(청목사) / 198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폴과 비르지니>에 대해서는 단편적으로 접하다가 라마르틴의 <그라지엘라>에 비중 있게 작품내용이 소개되면서 구체적 관심을 갖게 되었다. 또한 내가 가이드북으로 삼고 있는 <세계문학사 작은사전>(가람기획)에도 작가와 작품소개가 반영되어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의 번역본은 참으로 구하기가 어려웠다. 알아본 바에 따르면 1960년대 박영사 판(이헌구/이상로 공역)과 1980년대 청목사 판(김종건 역)이 전부다. 하지만 둘 다 이미 절판된 지 오래되어 시중서점에서 구하기 어려웠고 도서관에도 비치되어 있지 않았다. 따라서 한동안 끙끙대다가 중고서점을 통해 간신히 입수할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청소년용으로 기획된 청목사 판이다.
사연이 남달랐던 만큼 무엇보다 작품내용이 궁금하였다. 비극적 결말의 순결한 사랑의 명작으로 세간에 알려진 평가가 정말로 적정한지...
작품은 아프리카 동쪽, 인도양 상의 당시 프랑스 식민지 프랑스 섬(현재의 모리셔스)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문명의 손때가 덜 탄 열대의 섬, 이는 단순한 지역적 배경이 아니라 폴과 비르지니의 순수한 사랑이 잉태되는 정당성을 부여한다. 여기서 작가는 섬의 자연을 아름답고 섬세하게 묘사하는데, 일찍이 이 섬의 기행기를 썼던 작가의 체험이 녹아 있다.
폴과 비르지니의 어머니들은 각기 프랑스 본토에서 우여곡절을 겪고 자의반타의반으로 섬에 흘러들어왔다. 주류적 시각에서 보면 그들은 당대 사회의 패배자이며 주변인이다. 그러기에 그들은 세상사에 욕심을 부리지 않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면서 자신들과 자녀들의 삶을 꾸려나간다.
생-피에르는 계몽사상가 루소에게 매우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따라서 이 작품에는 인위와 겉치레를 거부하고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메시지가 작품 내내 시종일관 직접적으로 반영되어 있다. 화자인 ‘나’를 포함한 가족들은 긍정적 인간상으로 그려진 반면, 비르지니의 어머니의 백모로 대변되는 프랑스 본국의 사람은 부정적 인간상으로 대비된다.
작품 전반부는 섬에서의 행복한 목가적 생활에 대한 한 편의 동화 같은 찬미가다. 그 속에서 폴과 비르지니의 사랑은 가족에서 연인의 감정으로 서서히 자라난다. 소설을 읽으면서 이렇게 소박하며 아름다운 삶을 그린 작품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분위기는 밝고 따뜻하며 때로는 감미롭기조차 하다.
작품의 그림자는 비르지니가 프랑스로 떠나게 되면서이다. 부유한 백모에게 수년간 머물며 유산 상속을 받은 후 폴과 결혼하여 넉넉한 생활을 할 수 있게끔 주변에서 권유한 결과다. 그 후 작품의 분위기는 급격히 어둡고 무거워진다. 프랑스로 쫓아가고자 하는 폴과 이를 만류하는 화자 간의 기나긴 대화는 세상사의 가식과 허위, 모순, 부패를 적나라하게 까발리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비르지니가 본국에서 결코 순탄하고 행복하게 지내지 못하리라는 것의 암시다. 너무나 직설적이고 진지한 대화이므로 오히려 전반적 작품 분위기와는 이질적인 느낌마저 든다.
조금씩 암시를 드리우며 불길하게 예고된 결말은 마침내 비르지니가 탄 배가 폭풍우로 인하여 섬 앞에서 좌초하고, 비르지니가 거치적거리는 옷을 벗고 구조되기를 거부하며 죽음을 맞이하는 것으로 절정에 달한다. 본국에서 몇 년간 교육의 결과는 그녀에게 문명인의 수치심을 목숨보다 중시하도록 만들었다.
비르지니와 가족의 비극은 그들이 그릇된 문명의 예속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였으며, 순수한 자연성 회복이 매우 어렵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반영한다. 폴과 비르지니가 노동을 하며 땀 흘리는 삶을 살도록 하는데 만족하였다면 눈물을 웃음이 대신하였을 것이다.
이미 세태의 먼지에 물들어 삶과 사랑의 순수성에 쉽게 감동하지 못하지만 이 작품에 꽤 깊은 감명을 받았다. 아울러 이런 아름다운 작품이 제대로 출판되지 않는 현실이 씁쓸하다. 영어판 중역이 아니라 프랑스어 원전으로 반듯한 새 번역본이 출간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