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딸라르네 마지막 아벵세라지인의 모험
샤토브리앙 지음, 신곽균 옮김 / 새미 / 2003년 2월
평점 :
품절


프랑스 낭만주의 문학의 선구자 샤토브리앙의 대표작 모음이다. 샤토브리앙?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이다. 당장 네이버 검색에 도움을 요청한다. 아, 안심 스테이크의 일종이란다. 샤토브리앙의 요리사가 개발하였다고 하니 샤토브리앙의 까다로운 미식가적 취향을 알 만하다.

어쨌든 국내에는 명성만이 자자한 샤토브리앙의 작품집은 이것이 거의 유일하다. 지만지고전천줄로 발간된 <나체즈 족>의 요약본이고, 작가 이문열의 이름을 빌린 편집판에 <르네>가 수록되어 있을 뿐이다.

샤토브리앙의 명성에 비하여 국내 소개가 미약한 연유는 무엇일까? 의문은 이 작품집을 읽으면서 조금씩 해소되었다.

<아탈라>와 <르네>는 <기독교의 정수>라는 총서에 수록된 작품이다. 표제에서 알 수 있듯이 샤토브리앙은 기독교의 호교론적 입장에서 기독교의 영광과 승리를 찬양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마지막 아벵세라지인의 모험>도 작품의 기본 입장은 마찬가지다. 따라서 순문학적 의의와 가치는 논외로 하고, 작품의 제재와 작가의 주장은 기독교 문화권이 아닌 우리나라의 보편적 정서와는 부합되지 않는다.

샤토브리앙은 프랑스 대혁명 시절에 영국에 망명하는데, 이 기간에 신생 아메리카대륙의 프랑스령 루이지애나를 방문하여 신대륙의 문물을 체험한다. 이때 알게 된 나체즈 족은 순진한 무지와 신앙의 영광이라는 테마를 작가에게 각성시킨다.

그렇다고 이들 작품이 문학으로서 뒤처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낭만주의 문학의 개시를 알리는 듯 한 우울과 알지 못할 불안의 정서가 이국적 취향과 결합되어 독자에게 묘한 설레임을 느끼게 한다. 게다가 샤토브리앙 문체의 특징으로 생각되는데, 정물화의 박제된 듯 한 세부 묘사가 아니라 살아 숨쉬는 듯한 역동적이고 현란하며 감정을 고조시키는 영탄적 수법 등. 한마디로 독자를 작중 인물에 몰입시키는 능력이 대단하다.

이러한 그의 영향으로 당대에는 소위 세기병이 유행하였다고 하며, 그의 감화를 입지 않은 자유로운 작가가 없었을 정도라고 한다.

이 책에 수록된 세 작품의 공통점은 참된 신앙 즉, 기독교의 승리다. 인디언인 아탈라는 모태신앙으로 기독교를 믿으며 샥타스의 애정에도 신에게 바쳐진 언약을 죽음으로 수호한다. 아멜리는 동생 르네에 대한 사랑을 인식하면서도 수녀원에 들어가서 신에 대한 헌신으로 생을 마친다. 그리고 마지막 아벵세라지인 아벵 하메트와 스페인 귀족의 딸 블랑카는 열렬히 사랑하지만 종교적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나 결국 아벵 하메트가 굴복하고 만다.

작가는 독자의 애간장을 녹이는 요령을 알고 있다. 선남선녀의 깨끗하지만 아슬아슬한 사랑, 엇갈리는 사랑과 신앙의 약속, 그리고 순결한 죽음과 카타르시스.

여기에는 단순한 종교적 태도 외에 갈등과 비판이 은연중에 내재해 있다. 아탈라는 굳이 독약을 마실 필요가 없었다. 어머니에 의해 강요된 헌신 약속은 정당한 권위를 지닌 신부가 파기시킬 수 있었다. 여기에 광신적 신앙과 종교적 무지에 대한 따가운 비판이 자리 잡고 있다.

르네와 아멜리의 사랑은 남매간의 근친상간적 요소라는 위험하면서도 줄타기의 재미를 제공한다. 외로운 처지의 남매간에 끈끈한 애정은 지극히 당연하다. 둘은 이를 점차 인식하지만 겉으로 내색할 수는 없다. 그것은 당대의 가치관과 인륜에 위배된다. 아멜리의 선택은 동시대의 수많은 귀족 미혼여성들의 선택처럼 수녀원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녀는 불같은 열정 대신에 물의 평온을 선택하였다.

아벵 하메트와 블랑카의 사랑은 조금 더 복합적이다. 여기에는 종교간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된다. 블랑카는 이슬람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누구보다 멋진 아벵 하메트를 사랑하지만, 그녀에게 신앙은 사랑보다 우월하다. 서로는 상대가 신앙을 바꾸기를 기다리면 세월을 보내는데, 무수한 사랑의 예에서 보듯이 결국 남자가 지고 만다. 그렇지만 두 사람을 행복한 결합을 맺지 못한다. 각자 쓸쓸한 여생을 보낸다. 왜일까? 신앙의 차이는 극복하였지만, 조상의 직접적 원수라는 인륜적 차이는 극복할 수 없었던 것이다.

세 편의 작품은 작가의 종교관을 배제하고 문학적 접근만으로도 상당한 재미와 감동을 받을 수 있다. 특히 <르네>에서 전반부의 르네가 말하는 모호한 우울과 멜랑콜리는 진정 낭만주의의 선도라고 할만하다.

다만 조금 더 세밀한 번역이 뒤따랐으면 좋겠다. <마지막 아벵세라지인의 모험>에서 블랑카와 돈 카를로스의 관계가 누나와 남동생 관계인지 아니면 오빠와 여동생 관계인지 혼용하고 있어 작품 이해를 방해하고 있음은 용서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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