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맥베스 부인 베스트셀러 미니북 20
니콜라이 레스코프 지음, 이상훈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6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레스코프를 일컬어 ‘천재적인 스토리텔러’라고 평한다. 또 진정한 러시아를 이해하려면 도스토예프스키가 아니라 레스코프를 읽어야 한다는 전언도 있다. 또 톨스토이도 그의 작품을 높이 평가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언뜻 보면 대단한 작가로 여겨지지만, 사실 웬만한 세계문학사에는 그의 이름 한 줄 들어가 있지 않다. 그의 진가가 지난 세기 들어서 서서히 드러나고 재평가 받고는 있지만, 적어도 국내에서는 이제 갓 시작단계일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에 대한 과소평가의 연유를 생각해 본다. 문학작품, 특히 소설 장르에서 스토리의 역할과 의의를 평가하는 잣대에 따라 통상적으로 서사 중심의 경향은 지난 세기 전반 이후 급격히 퇴조를 보였다. 웬만한 순수 문학 작가는 전통적 서사 구조를 해체하고 재해석하는 포스트모더니즘에 치중하고 대중의 이해에 난해하게 다가오는 작품이 수준높은 문학으로 은연중에 자리매김하였다.

오늘날 이런 기조는 동일하다. 순수 문학은 대부분 비대중적이며, 쉽게 읽히는 작품은 대중적, 통속적이라고 평가절하 된다. 그러기에 레스코프에 대한 국내 인식이 그리 높지 않은 것은 충분히 납득이 될 만하다.

<러시아의 맥베스 부인>의 원제는 <므첸스크 군의 맥베스 부인>이다. 사실 내게 이 제목은 레스코프 소설보다는 쇼스타코비치의 동명의 오페라로 더 익숙하다. 젊은 쇼스타코비치에 대한 공산당 기관지의 혹독한 비판으로 그가 표면적으로나마 전향하지 않을 수 없게끔 하는 계기가 되었던 작품이다. 그때 음악을 들으면 궁금했던 게 셰익스피어의 맥베스 부인과 어떤 유사점이 있을까 궁금하였는데, 이제 비로소 원작을 읽으며 의문이 다소 해소되었다.

이 작품의 카테리나 리보브나와 <쌈닭>(원제는 <여전사>)의 돔나 플로토노브나는 모두 전형적인 러시아 여인상이다. 모두 므첸스크 군 출신의 근대화되고 도시화되기 이전의 원형적 이미지를 보유하고 있다.

카테리나 리보브나가 처음부터 지독한 악녀는 아니었다. 그녀는 자유로운 시골의 삶을 살다가 부유한 상인의 후처가 되어 외관상 그럴듯하나 아무 할 일도 없이 지루한 나날을 시간 죽이며 보내는 유한마담이다. 야생 동물을 우리나 새장에 가둬놓은 격이라고 할까. 카테리나 리보브나는 세르게이에게서 억제된 본능과 사랑의 충동을 일깨우게 되었고 이후 그녀의 행복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철저히 제거하였다.

즉 활달하고 자유분방한(때로는 드세고 거칠기까지 한) 러시아 여인의 에너지가 잘못된 방향으로 분출된 것이다. 여기에 난봉꾼 세르게이의 야심과 사랑의 배신도 한몫 하여 그녀는 죄악의 구렁텅이로 점점 깊숙이 빠져들게 된다.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사람을 죽이는 냉혹함, 반면 사랑하는 이에게 맹목적 순정을 바치는 지고지순함, 이 상반되는 이미지를 한 몸에 품고 있는 카테리나 리보브나는 단순히 악녀라고 매도하기에는 너무나 복합적이다. 결과가 아닌 그녀의 배경과 내면을 다소나마 이해하는 독자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카테리나 리보브나가 비극적 인물상이라면 <쌈닭>의 돔나 플로토노브나는 희비극적 인물이다. 그녀의 언사와 행동은 무모할 정도로 단순하여 과연 그녀가 진행하는 사안의 귀결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열을 내어 장시간 화자에게 들려준 레카니다 페트로브나 이야기는 레카니다의 이기적 영악함과 돔나의 우둔한 집요함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사례다. 레카니다는 돔나를 원망하지만 매춘부로 전락한 것은 스스로의 타락이다, 물론 돔나가 압박하여 계기를 만든 것은 사실이지만.

돔나가 들려주는 체험담은 외형상 우습지만 내면상으로는 오히려 슬프고 비참한 당대 러시아 민중의 삶을 가감없이 보여주는 풍경 소묘이다. 특히 세상사에 통달한 듯한 돔나가 젊은 청년에 대한 사랑에 빠져 어이없이 영락해 가는 마지막 장면은 희극적 웃음을 넘어 오히려 인간적 동정을 자아낸다.

카테리나 리보브나와 돔나 플로토노브나, 그들은 니콜라이 레스코프가 창조한 인물이지만, 허구적 인물이 아니라 주위에서 찾아볼 수 있는 살아 숨쉬는 존재이다. 그들은 러시아의 건강한 여성으로 태어났지만, 당대의 현실은 그들을 건강하게 살도록 하지 못하게 한다. 한 명은 박제된 마네킹을 강요받고, 다른 한 명은 소박한 선량함을 집요한 우둔함으로 변질시켰다.

이들이 그저 2세기 전 러시아에만 국한된 현상일까 생각해본다. 

- 2011. 1. 14 마이페이퍼에 쓴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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