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말로우[말로]는 셰익스피어와 동시대의 뛰어난 극작가이다. 그의 명성이 일반에게 많이 부각되지 못하는 연유는 그가 희대의 대문인의 동시대인이라는 점이다. 또 하나 서른 살도 안 되는 나이에 요절하여 창작기간이 짧다는 데 있다. 그럼에도 현전하는 그의 작품들은 셰익스피어의 눈부신 빛으로도 가리지 못하는 그만의 독자적인 아름다움을 문학사에 고고히 드리우고 있다.
셰익스피어 외에 말로우니 벤 존슨이니 하는 작가들의 작품이 조금씩이나마 소개되어 문학적 편식을 치유하는 데 도움이 되고 있어 다행이다. 희곡은 소설류와는 다른 독특한 미감을 지닌다. 연극 상연을 전제로 하는 게 기본이지만 머릿속에서 무대와 배우의 동작을 상상하며 대사를 음미하는 것은 실제 연극과는 구별되는 자체의 맛이 있다. 마치 실연이 아니라 악보를 통해 음악에 가까이 다가서는 것과도 같다.
말로우의 주요 작품으로는 <탬벌레인 대왕>, <몰타섬의 유대인>, <파우스투스 박사>, <에드워드 2세> 등이다. 이 중에서 앞의 세 편은 이 책의 일독 이후에 실제로 읽어볼 작품들이다. 미지의 작가에 곧바로 다가서기에는 약간 부담이 있어 간단한 해설서를 구한 것이 이 책이다.
다만 이 책에서 저자는 머리말에서 적시하였듯이 순전한 해설서라기보다는 말로우의 작품들을 종교적 요소를 중심으로 분석하고 있다. 따라서 말로우의 작품에서 다른 관점의 비평을 얻고자 한다면 다소간 실망하게 되고 만다. 나처럼 말이다.
말로우는 영국 르네상스 시대의 사람이므로 응당 종교적 영향력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그는 성직자가 되기 위한 공부를 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일정 부분 그의 작품에서는 가톨릭과 영국 국교회, 그리고 대륙에서 대두되고 있는 신교의 교리 등이 혼재할 수 있음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다. 다만 종교성의 시각으로 말로우의 작품 전체를 포괄할 수 있다면 그의 이름은 오늘날까지 전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셰익스피어처럼 르네상스인으로서 인간의 자유로운 욕망과 정신을 표출하는데 선구적인 역할을 하였다. 오히려 작가로서의 활동은 그가 셰익스피어보다 선배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말로우 작품집이 대산세계문학총서의 하나로 출판된 것을 제외하면 말로우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서도 변변히 없는 상황에서 이 책의 존재는 감지덕지하지만, 이왕이면 조금 더 다채로운 시각에서 그의 작품세계를 조망할 수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은 과욕일까. 하긴 본문이 채 백여 면도 되지 않는 손바닥만 한 책자에는 지나친 기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