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코프스키의 3대 교향곡의 연주는 누가 뭐래도 에프게니 므라빈스키 지휘의 레닌그라드 필이 최고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딱 하나만을 택하라면 교향곡 제4번의 연주다. 이 연주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심장이 쿵쾅거리고 온몸이 흥분으로 전율하였던 것을 기억한다. 제5번의 연주는 그렇게 대단하는 느낌은 받지 못했으며, 제6번은 훌륭하지만 아직 최고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제4번의 경우는 두말할 것 없이 제일이다. 1악장 서두부터 강렬하게 뿜어내는 금관악기의 포효부터 강한 인상을 받는데, 그 울림은 서구 관현악단에서 들을 수 있는 자유롭게 쭉 뻗어 올라가는 소리가 아니었다. 무거운 숙명의 압력에 억눌려 있어서 그것을 극복하려는 필사적인 몸부림처럼 억압을 뚫는 처절한 울림이 분출한다. 그리하여 4악장까지 단숨에 휘몰아치는 것이다.  

카라얀의 연주는 1악장에서 너무나 시원스레 장쾌함을 뿜어내는 개방적인 면모를 보인다. 순음악적인 측면에서는 나무랄 데 없으나, 이 제4번에 있어서는 내게는 큰 느낌을 주지 못하는데 전체적으로도 므라빈스키와 같은 균형이 없고 4악장에서의 박력있는 표현도 그냥 겉도는 외향에 치우쳐 있다. 오히려 4악장에서는 솔티/시카고의 연주가 훨씬 뛰어나다. 솔티도 전 4악장을 탁월하게 그려내고 있지만 역시 므라빈스키에는 따르지 못한다. 아마도 영원한 명반이란 이것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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