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음반을 듣다 보면 내가 쇼팽의 야상곡을 좋아하는 건지 아니면 이반 모라베츠의 피아노 음색을 좋아하는 건지 헷갈린다. 그만큼 이 음반은 음질이 매우 뛰어나다. 

여전히 내게 쇼팽의 음악은 병약한 낭만주의 감성이라는 선입견이 지배적이다. 협주곡과 왈츠, 폴로네즈를 제외하면 그다지 손이 가지 않는다. 듣다보면 심신이 나른해지고 졸음이 쏟아지게 만드는 따분한 음악. 몇번이나 본격적인 감상을 위해 노력했어도 거미줄에서 헤어나지 못한 상태다. 

그런데 우연히 고클 게시판에서 추천하는 글을 보고 이 음반을 구입하였는데, 이건 뭐랄까 음악을 처음부터 다시 듣는 느낌이다. 첫음부터 예사 연주가 아님을 너무도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음악에만 빠져들게 되었다. 피아노의 절묘한 뉘앙스. 야상곡답게 음폭이 넓지 않은데도 전혀 지루함을 자아내지 않는 터치와 템포. 거기다가 숨을 삼키게 하는 여리디 여린 약음마저 아무렇지도 않게 잡아내는 탁월한 녹음. 한 마디로 명연주 명반의 요건을 갖춘 셈이다. 

연주자의 대중적 선호도가 높지 않다는 점과 음반사가 메이저 레이블이 아니라는 점이 결합하여 일반적인 음반추천서에는 오르지 않았지만 매니아에게는 컬트적 찬사를 받고 있으며, 그후 나도 여기에 가담하였다.   

당초 내가 구입했던 것은 오른쪽 음반인데 2 for 1으로 가격도 저렴하여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지 품절되고 이제는 왼쪽의 정상가 음반으로만 판매되고 있다.  

한밤중이나 새벽, 사위가 고요한 데 이 연주를 듣고 있노라면 어수선한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으며 아름다운 꿈속 세상을 거닐다가 도원경에 들어온 상념에 잠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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