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도 시리즈가 있다. 당신이 무인도에 간다고 할 때 음반을 딱 하나만 가져갈 수 있다면 무엇을 선택하겠느냐는 질문이다. 많은 애호가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반들을 이것 저것 선택한다. 누구는 모차르트, 베토벤, 트렌드에 민감한 이는 말러, 쇼스타코비치, 브루크너 등.
나라면 단연 바흐다. 여기서 약간은 고민이 된다. 평균율곡집, 골드베르크 변주곡과 푸가의 기법 중에서 무얼 골라야 되나. 하지만 잠시의 망설임 끝에 난 골드베르크에 한표 던진다. 다만 글렌 굴드의 1981년 연주라는 단서를 달고.
데뷔 녹음을 골드베르크로 시작한 그의 최만년(?)의 녹음이 또한 골드베르크 임은 의미심장하다. 워낙 개성적이라 '굴드베르크 변주곡'이라는 애칭마저 있을 정도이니. 그의 집안이 성을 바꾸지 않았다면 그대로 골드베르크에 부합되었을 것이다.
그의 일생 자체가 하나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이다. 아리아와 변주들, 그리고 다시 아리아로 돌아오는 방황과 탐색의 삶. 그의 음반에서 들려오는 흥얼거림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 이들도 있지만 그 자체가 장식음으로 음악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고 생각하면 이조차 흥미진진하게 들린다.
나는 글렌 굴드를 통해 바흐 음악의 위대성과 재미를 처음 알게 되었다. 그의 바흐가 개성적이라서 초심자에게는 위험할 수 있다고 하지만 입문자에게 태산과 같은 바흐의 비경을 가장 친절하게 들려주는 이는 오직 굴드 뿐이다.
작곡동기가 불면증 치료음악이지만 오늘 나는 아침 기상음악으로 듣는다. 그만큼 정과 동의 대비가 참으로 멋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