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지스 할머니 - 평범한 삶의 행복을 그리다
이소영 지음 / 홍익출판미디어그룹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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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는 모지스 할머니가 누군지 전혀 알지 못하였다. 온라인 중고도서를 구입할 때 배송비 절감을 위해 대충 끼워 넣었던 책이다. 이제 찬찬히 책장을 펼쳐나가면서 뜻밖에 좋은 책을 접할 수 있었음을 기쁨과 행운으로 간주한다.

 

그녀는 76세라는 늦은 나이에 처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세상을 떠난 101세의 나이까지 1,600점의 작품을 남겼다. 그중 250점이 100세 이후에 그린 그림일 정도로 삶의 마지막까지 열정이 대단한 화가였다. (P.8-9)

 

모지스 할머니에 대한 소개다. 요즘 인생 이모작 또는 삼모작이니, 백 세 시대라고 일컫는데 그녀는 반세기 이전에 이미 이를 실현한 인물이다. 평범한 여성으로서 아내와 어머니로 살고 남들은 인생 여정의 마지막에 이를 시기에 그녀는 새로운 출발을 하였다. 바로 아마추어 화가의 삶을.

 

이 책은 모지스 할머니의 삶을 소개하고, 그녀의 주요 그림들을 삶의 굽이와 연결하여 풀어놓는다. 여기에 글쓴이의 개인적 감상과 소회를 녹여 넣어서 한 편의 아름다운 미술 에세이로 완성하였다. 무엇보다 그녀의 대표작들을 고화질에 담아내어 그림 감상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한 면, 때로는 양 면에 걸쳐 수록한 그림들은 감상하기에 충분한 품질이다.

 

당대 미국민들에게 큰 반향과 인기를 끌었던 모지스 할머니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은 무엇보다 늦은 나이에 이루어낸 도전과 성취다. 전문적인 미술교육을 받지도 않은 시골 할머니가 심심풀이 삼아 그려내는 그림. 남편도 자식도 이웃들도 하나둘 세상을 떠나고 본인도 건강이 좋지 않아 평생 동반자였던 자수마저 할 수 없게 된 그녀. 남들이라면 우울하고 의기소침하게 마련일 텐데 그녀는 망설임 없이 붓과 캔버스로 전향한다.

 

사람들은 늘 내게 늦었다고 말했어요. 하지만 사실 지금이야말로 가장 고마워해야 할 시간이에요. 진정으로 무언가를 추구하는 사람에겐 바로 지금이 인생에서 가장 젊은 때입니다.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딱 좋은 때이죠.” (P.46)

 

우리는 항상 뭔가를 시작할 때 망설인다. 어떻게 하면 안 해도 좋을까 적당한 핑곗거리를 찾기에 바쁘다. 제일 흔한 게 바쁘다는 이유고, 너무 늦은 게 아닌가 하는 우려다. 모지스 할머니의 사례를 보면 뜨끔하다. 설사 그녀처럼 세상에 이름이 드러나지 않아도 어떠한가. 정작 그녀도 성공과 명예의 의지를 품고 그림을 시작한 건 아니다.

 

그녀의 그림을 보면 대충 훑어보고 넘기기 어렵다. 다채로운 색감으로 표현한 20세기 전후 미국민의 삶을 그대로 그려낸 민속화인 동시에 풍경화다. 빨래하기, 양털 깎기, 결혼식, 단풍시럽 만들기, 썰매 타기, 마을 축제, 핼러윈, 칠면조 잡기 등 당대인들의 소박한 삶과 일상을 한 편의 앨범을 넘기듯 볼 수 있다. 어른들은 추억의 장면을 회상할 것이며, 아이와 청년이라면 옛날 동화책을 감상하듯 신기해할 것이다. 그림마다 화면을 가득 채운 인물들의 다채로운 장면과 활동에 절로 구석구석 눈길을 주지 않을 수 없다.

 

모지스 할머니의 그림은 멀리서 전체를 보게 만들고, 그다음 그 안에 들어가서 걷고 놀고 만지고 싶어지게 만든다. 그녀가 그린 마을은 하나의 생명체 같아서 항상 분주하고 변화한다. (P.176)

 

모지스 할머니를 근현대의 거장 화가와 비교할 수 없다, 착상, 구도, 기법 등 여러 면에서. 그녀는 우리네 같은 평범하며, 단지 그림그리기를 좋아하는 한 일반인이다. 그럼에도 당대 미국이 모지스 할머니의 날을 제정하고, 매년 크리스마스카드와 연하장에 많이 그림을 채택하고, 그녀의 죽음에 전국민이 애도하였던 것은 범상하게 볼 일이 아니다. 그것은 그녀가 보통의 미국인을 대변하는 인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그림으로 추억을 회상하며, 그림을 통해 현재와 대화하고 교감할 수 있기에 많은 사람이 그녀의 작품을 좋아하고 편안함을 느끼게 되는 것 아니겠는가. 거대를 지향하는 세상에서 작지만 소중함을 잊지 않으려는 마음. 빠르고 편한 것만 선호하는 풍조에서 낡고 촌스럽고 불편하지만 그 자체가 잊혀진 정서를 떠올리게 하는 그 무엇. 그것은 현대사회처럼 물질문명이 고도로 발전함에 따라 놓치기 쉽기에 더더욱 소중하게 다가오는 감정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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