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의 차가운 손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람은 누구나 껍데기를 갖고 산다. 혹자는 그것을 가면이라 칭한다. 껍데기든 가면이든 그것은 외부 세계로부터 나를 보호하거나 가리는 목적이다. 타인의 날카롭거나 호기심 어린 시선을 차단하며, 소심하고 내성적인 사람이 외부와의 접촉을 꺼려 방패막이를 삼기도 한다.

 

우리는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을 위선자라고 일컫는다. 이처럼 겉 다르고 속 다른 사람에 대한 세간의 인식은 부정적이다. 솔직히 말해보자. 안팎이 한결같은 사람이 과연 얼마나 존재하는지, 그들의 세상살이는 평안한지를. 대다수 사람은 위선적인 면모를 지닌 채 살아가기 마련이다. 어린 나이에서 비롯되었든 성인이 된 후 시작하였든 시기의 차이만 있을 뿐이며, 껍데기 또는 가면의 넓이와 두께에서 차이가 날 뿐이다.

 

내가 정성과 지혜를 다해 빚은 탈 속에서 끊임없이 탐색하고 긴장하지 않았다면, 나는 결코 사랑받거나 칭찬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P.68)

 

이 작품 속 화자이자 주인공인 조각가 장운형과, 인테리어 디자이너 E에 대해 낯설고 이질적인 인상을 받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우리와 동류에 속해서이다. 위선적인 집안과 부모 아래서 일찌감치 세상의 속리를 깨우친 화자는 반생을 철저하게 두꺼운 가면을 쓴 채 살아온다. 세상은 진실을 중요시하지 않는다. 진실보다 중요한 것은 세상이 원하고 기대하는 것에 따르고 부응하는 데 있다. 그렇기에 그는 진실을 감출 수 없는 손을 믿으며, 손으로 작업하는 조각을 직업으로 택한다. 화자가 삶에서 마주치는 두 명의 여자와 마주친다. LE.

 

무엇인가 숨겨져 있었다. 끔찍한 무엇인가가. 그 숨겨진 것 위로, 저 아이는 저렇게 이상스러운 아름다움을 가졌다. 순간 나는 그녀에게 애정을 느꼈다. (P.85)

 

L은 연민과 혐오를 동시에 안겨주는 인물이다. L의 아픈 과거에 동정하면서도 그가 폭식과 거식을 반복하며 자신의 삶을 축내는 대목에서는 괴기스러움에 외면하고 싶을 정도다. L은 가면을 쓸 줄 모르거나 아주 얇은 가면 밖에 갖고 있지 못하다. 그녀의 자존감과 가치판단은 전적으로 외부로 향해 있다. 무리한 다이어트를 해서라도 좋아하는 남자와 어울리겠다는 그녀의 사고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망정 요즘 많은 젊은 여성들과 다르지 않다. 그들은 오히려 순진하기에 가면을 쓰고 껍데기를 두를 줄 모르며 세상의 풍파를 오롯이 맨몸으로 마주한다.

 

육손이의 가슴 아픈 굴레를 천형처럼 지닌 E는 어떠한가. 뭇 남성들의 시선과 설렘을 끌어내는 영민하고 당당한 여성의 꺼풀 아래 얇고 흰 속살을 지닌 본모습이 숨어 있을 줄 누가 짐작이나 하겠는가. 호숫가에서 백조가 우아함을 유지하기 위해 수면 아래 맹렬히 발을 젓듯이 그녀의 삶은 긴장과 압박, 노력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녀가 이따금 플러그 빠진 인형처럼 일순간 넋이 나간 듯한 양태를 보이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장운형은 처음에 점토로 사람의 손을 빚는다. 그가 보기에 인체 중 가장 솔직하고 믿을 수 있는 부위가 손이다. 제아무리 얼굴과 몸을 둘둘 말아 감추더라도 손을 통해 그 사람의 실체를 발견할 수 있어서다. 그가 라이프캐스팅으로 전환한 것 역시 같은 맥락에서인데, 껍데기 속 숨겨놓은 본모습의 인간 면모를 드러내고 싶은 것과 함께, 손을 통해 자신의 실체가 공개되는 것을 원치 않아서이다. 그는 진실을 알고 싶으면서도 진실을 가리는데도 진심이었다.

 

E를 만나고 싶었다. 그녀의 몸 어디에선가 미미하게 새어나오곤 하던 구역질과 공허의 감각을 다시 느끼고 싶었다. 자석의 같은 극처럼 나를 밀어내곤 하던 환멸의 냄새를 맡고 싶었다. 그것은 애정이라 할 수도 있고 오히려 반대의 것이랄 수도 있는, 극도로 양가적인 감정이었다. (P.280)

 

L은 그를 떠나고, 그는 E와 세상의 시선에서 사라진다. L의 껍질은 얄팍하므로 외부의 자극에 민감하였지만, 그 때문에 홀로 껍질을 벗어던지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화자와 E가 뒤집어쓴 가면과 껍데기는 튼튼하고 빈틈을 거의 찾을 수 없는 형국이다. 두 사람은 본능적으로 상대방이 뭔가를 숨기고 있음을 깨닫는다. 역겹지만 떨쳐버릴 수 없는 질긴 인연으로 묶인 두 사람. 그들이 자신과 상대를 옭아맨 단단한 껍데기를 마침내 깨뜨릴 수 있게 되었고, 그들은 더는 기존의 인물로 남아있을 필요가 없게 되었다. 마지막 대목에서 H 외에 아무도 달라진 두 사람을 인지하지 못한 것은 상징적이다. 두 사람의 본모습을 아는 사람은 H밖에 없으므로.

 

우리에게서 일체의 껍데기와 가면을 벗겨버리면 어떤 장면이 전개될까. 모르긴 해도 그리 유쾌하거나 바람직한 모습은 아닐 것이다. 피부가 신체와 환경을 경계 짓듯이, 심리적 껍질은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어느 정도 필요하리라. 다만 그것이 굳고 단단한 껍데기로 변질되면 곤란하지 않겠는가. 화자 어머니의 하얀 탈바가지 얼굴. 고상하고 품위 있는 위선적 지성인의 민낯을 보여주는 아버지의 얼굴. 그 점에서는 오히려 두 손가락을 잃은 외삼촌이 더 솔직하고 덜 위선적이다. 그도 없어진 손가락을 가리려 애썼지만, 여기서 실망을 느낀 것은 아마 화자 혼자뿐일 것이다.

 

삶의 껍데기 위에서, 심연의 껍데기 위에서 우리들은 곡예하듯 탈을 쓰고 살아간다. 때로 증오하고 분노하며 사랑하고 울부짖는다. 이 모든 것이 곡예이며, 우리는 다만 병들어가고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잊은 채. (P.313)

 

다만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비좁고 단단한 껍데기에 갇혀 있을 때 우리네 생명은 위축되고 말 것임을. L의 거대한 비만일 때 손과, 다이어트 후 온기감을 상실한 손을 비교해 보자. L의 육체의 풍요로움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날씬한 E의 차가운 몸과 입술, 그리고 메마른 육체와 현저한 대조를 이룬다. 가면은, 껍데기는 결국 사물에 불과하다. 그것의 본질은 다만 텅 비어있음이다.

 

이 소설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갖추고, 장운형의 원고가 본문으로 중간에 들어가 있는 액자 구조를 취하고 있다. H는 작가의 분신이자 서사 전개와 마무리를 담당한다. 그는 또한 작중 인물의 여정에 대한 치밀한 관찰자이자, 장운형과 E의 탈태를 유일하게 알아차리는 인물이기도 하다.

 

펴낸날이 2002118일이다. 보유한 한강 책 중 유일한 1쇄본이다. 신기하여 적어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