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코의 미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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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작>

쇼코의 미소

씬짜오, 씬짜오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한지와 영주

먼 곳에서 온 노래

미카엘라

비밀

 

2024년 서울대 학생들이 가장 많이 빌린 책 중 두 편이 들어 있고, 고려대 학생들이 가장 많이 빌린 책 중 다른 한 편이 포함된 작가. 최은영. 나로서는 전혀 처음 듣는 이름인데, 혹시 뛰어난 신진 작가를 놓치는 게 아닌가 싶어 서둘러 이 책을 읽는다. 작가의 첫 작품집이다.

 

수록 작품 일곱 편을 관통하는 공통적 특징이 우선적으로 두드러진다. 각 작품을 개별로 분절하다 보면 중복되고 반복될 우려가 있기에 하나의 큰 맥락에서 일관된 특성을 다루어 보고 싶다. 분명한 것은 작가는 여성주의를 지향하는 양태를 나타낸다는 점이다. 그 점을 논외로 하자면 독서는 흥미로운 경험이기에 후속작도 기대된다.

 

첫째, 과연 글로벌 시대다. 작품의 지리적 배경은 물론 등장인물의 인종적 배경까지 다채롭다. 일본(<쇼코의 미소>), 독일과 베트남인(<씬짜오, 씬짜오>), 프랑스와 케냐인(<한지와 영주>), 러시아와 폴란드인(<먼 곳에서 온 노래>). 우리 문학의 지평이 그만큼 확대되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이것이 새로움에 대한 손쉬운 접근에서 비롯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둘째, 사회 부조리에 대한 강한 의식이다. 순애 언니의 남편은 빨갱이로 몰려 감옥 생활을 하고 출소 후에도 심신이 온전치 못하다. 미카엘라의 아빠는 노동운동에 투신한다, 덕분에 가정생활은 평탄하지 못하다. 학생운동 전통에 치열한 노래패의 선배는 권위적이고 성차별 문화에 젖어 있다. 우리는 월남전을 미국과 베트남 간 전쟁으로 생각할 뿐 월남에서 우리가 저지른 행위는 무심하다. 작가는 인물의 입을 빌려 주저 없이 비판한다.

 

전쟁요? 그건 그저 구역질나는 학살일 뿐이었어요.” 응웬 아줌마가 말했다. 어떤 감정도 담기지 않은 사무적인 말투였다. (P.81, <씬짜오, 씬짜오>)

 

셋째, 세월호 사건. 작가가 작품들을 공들여 쓰고 있을 당시 세월호 사건의 사회적 파장이 거세었다. 작가도 여기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으니, 이 사건을 배경으로 삼은 작품이 여럿 있다. <미카엘라>, <비밀>이 그러하다. 전자는 동명의 세례명을 가진 서로 다른 두 딸의 엇갈린 운명을 미카엘라 엄마가 하나로 품어내는 인식을 통해 세월호 사건이 빚어내는 참사의 실체를 분명히 한다. 후자는 가족의 슬픔과 고통의 원인을 알지 못한 채 연락이 끊긴 손녀딸을 그리워하는 할머니의 순진한 자술이 비극을 한층 배가한다. 작품해설을 통해서 모호한 암시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아이는 저만의 숨으로, 빛으로 여자를 지켰다. 이 세상의 어둠이 그녀에게 속삭이지 못하도록 그녀를 지켜주었다. 아이들은 누구나 저들 부모의 삶을 지키는 천사라고 여자는 생각했다. 누구도 그 천사들을 부모의 품으로부터 가로채갈 수는 없다. 누구도. (P.241, <미카엘라>)

 

넷째, 여성의 세계. 여성작가이다 보니 비중이 높을 수 있겠지만, 작중 주요 인물과 능동적 행위자는 죄다 여성이다. <쇼코의 미소>의 할아버지, <한지와 영주>의 한지를 제외하면 남편, 아빠는 어떤 이유로도 작중에서 왜소한 모습이다. 영주의 남자친구는 쪼잔한 모습이다. 순애 언니의 남편은 어찌 되었든 그 모든 불행의 단초가 된다. 미카엘라의 아빠 또한 노동운동에 매진하면서 정작 가정을 빈곤 상태로 빠뜨리지 않는가. 특히 <씬짜오, 신짜오>의 아빠는 소통과 인정을 거부하는 부정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다섯째, 작품의 형식이 대체로 회상적이다. 고등학교 교류 학생으로 알게 된 쇼코와 소유의 인연은 할아버지와 주고받은 편지를 전달하러 온 쇼코의 출국으로 이어지기까지 과거를 내내 회상한다. 베를린에서 이웃한 응웬 아줌마 일가와의 추억도 훗날 화자가 회상하며 다시 아줌마와 재회하는 장면으로 끝맺는다. 화자 엄마의 눈으로 바라본 자신과 순애 이모의 가슴 아프고 슬픈 삶의 여정은 사후 화해로 이어지기에 안타까움과 애틋함이 교차한다. 화자 영주가 프랑스 수도원에서 만난 케냐 청년 한지와의 만남은 자체로 막막한 추억이다. 서울과 페테르부르크를 넘나드는 화자와 미진 선배의 인연, 화자와 율랴의 회상은 망자에 대한 사랑과 공감 아니겠는가. 할머니 말자는 치명적인 병으로 살날이 많이 남지 않은 상황에서 손녀 지민을 그리워한다. 중국에서 연락이 끊긴 손녀의 진실을 모른 채.

 

여섯째, 소통과 단절. 수록작 모두는 가족, 이웃, 사회, 인종 간 소통이 어떻게 형성되고 깨어지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가족이라고 늘 돈독하고 화목하지 않다. 가까운 관계일수록 오히려 걱정을 끼치지 않으려는 배려심이 소통의 단절을 가져온다. 미스터 김과 쇼코가 서슴없이 속내를 교환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소유보다 가까워서가 아니다. 영주는 부끄럽고 창피하고 잘못한 일을 유독 한지에게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는가. 화자의 엄마는 그토록 순애 이모를 사랑하면서도 저버릴 수밖에 없었는지. 화자의 엄마와 응웬 아줌마가 순수하게 나누었던 유대는 역사적 사건에 얼마나 취약했던가. 소통과 유대가 원활히 작동할 때 인물 간 관계가 따뜻하며 긍정적으로 작용함을 작가는 보여준다.

 

서로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했던 그런 태도가 서서히 그들의 사이를 멀게 했고, 함께 살았던 시간 동안 쌓아왔던 마음들도 더 이상 그 관계를 지탱해주지 못했다. (P.114, <한지와 영주>)

 

일곱째, 순수한 서사의 미덕. 작가는 문장에 별다른 문학적 기교와 꾸밈을 덧붙이지 않는다. 오로지 이야기 자체가 주는 힘으로 작품을 이끌어 나간다. <쇼코의 미소>가 주는 아련한 슬픔, <한지와 영주>가 들려주는 막막한 애정의 느낌은 오로지 인물들의 고유한 삶과 행동, 그들이 주고받는 관계가 빚어내는 다양한 스펙트럼에 있다. 그것의 결과가 비록 이별과 죽음으로 이어지고 인물들이 행복하게 나아가지 못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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