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 하나는 거짓말 (니트 에디션) (3종 중 1종 랜덤)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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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란은 한강과 더불어 내가 애정하는 작가다. 근년 들어 잠시 소홀했는데, <이중 하나는 거짓말> 니트 에디션을 구매하면서 다시 관심을 두려고 한다. 내가 고른 파란색 표지는 채운 버전이라고 한다.

 

이 소설은 세 명의 청소년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모두 24장 구성인데, 지우, 소리, 채운이 번갈아 가며 각 장의 화자를 담당한다. 그들이 풀어내는 이야기의 결은 밝거나 따뜻하지 않다. 차분하고 자성적인 그들의 내레이션은 흔히 기대하는 성장소설의 희망적인 성격과는 완연히 다르게 흘러갈 것임을 짐작케 한다. 게다가 작가 김애란도 초기작과는 달리 이후 작품들에서 상당히 다른 변모를 보이지 않았던가.

 

세 명 모두 가정사가 딱하다. 지우는 가정을 버린 아버지를 제외하고 엄마와 함께 엄마 애인 집에서 함께 사는데, 그 엄마가 어느 날 바다에 실족사한다. 채운은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실수로 아버지를 찌르고 엄마가 대신 감옥에 간다. 아버지는 식물인간 상태다. 그나마 소리가 낫다. 중병을 앓던 엄마는 교통사고로 사망하지만 그래도 멀쩡한 아버지가 있으므로. 작가는 이들을 같은 학급으로 몰아넣는다. 그전에는 서로 간에 전혀 알지 못하였던 그들을.

 

세상에 인간은 있되

구원도 없고 기적도 없고 선의도 없다는 걸 잊었습니다. (P.12)

 

아마도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분위기는 위와 같으리라. 대체로 어둡고 고요하게 가라앉고 고개를 들어도 눈앞에 밝은 빛을 찾을 수 없는 듯한. 작가는 자신의 말처럼 삶의 비정함을 전면에 내세우고 싶었던 것일까. 표제와도 같이 거짓 없는 삶은 없다는 것처럼. 단순한 자기소개에서조차 거짓이 개재되어 있듯이 삶 자체에는 얼마나 수많은 거짓이 있게 마련인가. 진실을 부각하기 위해 거짓을 허용하든, 진실을 은폐하기 위해 거짓을 용인하든 진실과 거짓이 혼재된 것이 삶의 실체다.

 

등장인물은 제각기 거짓말을 내뱉는다. 의도가 좋고 나쁨과는 상관없이. 채운의 거짓말은 부작위에 의한 거짓이다. 그는 자신이 아버지를 찔렀음을 자백하지 않으며, 소리에게 아버지의 손을 잡아달라고 부탁할 때 진짜 이유를 밝히지 않는다. 채운 엄마는 자신이 부정을 저질렀음을 채운에게 밝힌다. 소리는 채운에게 그의 아버지의 상태를 솔직히 말하지 않는다, 그것도 완전한 오해에서. 소리 아버지는 소리 엄마의 죽음과 관련하여 아내의 절실한 부탁을 들어주지 못하였음을. 지우와 지우 엄마는 어떠한가. 엄마의 죽음을 지우는 단순 사고로 믿지 않는다. 불치병 진단을 받은 엄마가 자신을 속이고 의도된 죽음을 선택하였을 것으로 확신하고 용서하지 못한다.

 

작가는 주인공들을 깊은 수렁에 빠뜨린 채 방치하지 않는다. 절대적으로 홀로인 그들 곁에는 충직한 동반자가 있다. 지우에게는 용식이, 채운에게는 뭉치가. 용식이를 돌보며 지우는 따돌림 시절을 버텨낼 수 있었고, 만화를 그리면서 비참함을 견뎌낼 수 있었다. 채운에게 뭉치는 가족과 같은 존재다. 세상에 홀로 남아있는 그에게 유일하게 믿음과 애정을 베푼 게 뭉치가 아니던가. 소리는 그런 게 없다고? 아니다, 소리는 용식이가 죽기 전까지 그를 돌볼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아버지가 곁에 있다.

 

삶의 가장 엄혹한 시절을 겪으면서 세 사람은 서서히 자신의 길을 찾아간다. 소리는 무덤에서의 고백으로 엄마와 화해하고, 지우는 피가 섞이지 않은 선호 아저씨를 가족으로 받아들인다. 지우가 사건의 진상을 알고 있을까 전전긍긍하던 채운은 그날 밤 지우의 심적 상태가 무엇이었는지를 알아차리고 오히려 놀라게 된다. 자신은 그토록 처절히 불행하였건만 그 광경을 보면서 동경하던 사람이 있을 줄이야.

 

하지만 삶은 이야기와 다를 테지. 언제고 성큼 다가와 우리의 뺨을 때릴 준비가 돼 있을 테지. 종이는 찢어지고 연필을 빼앗기는 일도 허다하겠지.’ (P.232)

 

채운 엄마의 간절한 소망처럼, 그들은 각자의 삶을 살아야 하고 살게 될 것이다. 자신과 가족을 둘러싼 삶이 제아무리 가혹하게 자신의 뺨을 때릴지언정 어쨌든 살아내는 것이 그들의 몫이므로. 삶의 희로애락을 겪어야 비로소 어른이 될 수 있다. 어른이 된다는 것, 성장한다는 것은 힘들고 고달픈 일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것을 피할 수 없다. 제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그것을 거부할 수 없기에 최선을 다해 그것을 무릅쓰고 나아가야 한다. 삶의 이야기는 이렇게 형성된다.

 

그런데 그런 것도 성장이라 부를 수 있을까? 시간이 무척 오래 걸리는데 거의 표도 안 나는 그 정도의 변화도? 혹은 변화 없음도? 지우는 그렇다고 생각했다. (P.233)

 

구성과 형식, 내용 전개 면에서 작가가 한땀 한땀 공들인 티가 묻어난다. 전혀 무관한 세 사람의 만남과 어울림, 그네들의 일상과 삶이 교묘하게 교차하거나 스쳐 지나가도록 하는 설정. 지우의 만화를 별도로 자세히 다룸으로써 그것 자체로 지우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물론 이를 읽는 채운의 복잡한 내면도 연동되도록 하는 구상. 1인칭 화자의 제한된 시점임에도 독자는 화자의 심정은 물론 자발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다른 인물의 내면도 다소나마 헤아릴 수 있다.

 

<비행운><두근두근 내 인생>에서 변화된 작가의 글쓰기는 여전하다. 어두운 삶의 현장에서도 한 줄기 빛과 웃음을 찾던 작가는 성장소설의 외양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지만, 우리는 이것을 성장소설이라고 인정해야 할 것인가. 작가가 한껏 그려내려 애쓰는 삶의 희망적 측면이 그다지 희망으로 여겨지지 않는다면 어찌할 것인가. 작가도 그들의 미래를 낙관하지 못하는 듯 희망 섞인 바람을 나타낼 뿐이다.

 

채운의 가정을 들여다보면서 새삼 개인의 성장에 있어 가정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이상적 뜻에서 가정은 언제나 찬미의 대상이다. 즐겁고 행복해야 마땅한 그 무엇으로. 현실은 과연 그러한가. 우리가 주변에서 항상 접하게 되는 것은 가정의 위기가 아니던가. 지우가 동경의 눈으로 바라보았지만, 정작 채운은 지긋지긋하게 여겼던. 이상적이고 참다운 가정의 가치와 실현 곤란성에 이율배반성에 탄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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