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타이트, 점토판 속으로 사라졌던 인류의 역사 타산지석 6
이희철 지음 / 리수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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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신간 <히타이트 제국의 역사>가 읽고 싶어졌다. 그에 앞서 기존 출간된 히타이트 관련 서적을 살펴보니 개설서로는 단 두 권, 그나마 이 책이 최신판이다, 무려 20042월에 발행된 책이. 신간과 비교 차원에서 이 책을 먼저 읽는다.

 

히타이트. 세계사 시간에 배운 토막 내용이 떠오른다. 최초의 철제 무기 사용으로 강력한 군대를 이끌었으며 바빌론 왕국을 무너뜨렸다는 점, 이게 전부다. 그리고 그들은 역사에서 사라진다. 이게 무리가 아니었음을 이 책을 통해 발견하는데, 이집트 등의 기록에 남은 단편적 내용을 제외하면 그들의 모든 역사는 전해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19세기 후반부터 점토판 발굴을 통해 조금씩 부분적으로 잃어버린 역사를 짜맞추고 있는 과정이라고 한다. 이 책의 부제 점토판 속으로 사라졌던 인류의 역사는 절대 터무니없지 않다.

 

이 책에서 소개된 내용을 토대로 히타이트 역사를 간략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기원전 2500년경부터 1700년경까지 아나톨리아 지역에 하티라는 문명국가가 있었다. 쿠사라 왕족 출신이 피타나와 아니타가 하티를 정복하고 히타이트를 건국하였다. 기원전 1700년경 시작하여 1200년경까지 존속하였다. 히타이트 제국이 멸망한 후에도 그의 후손들이 흩어져 명맥을 유지했는데 후기 히타이트 시대는 기원전 1200년경에서 700년경까지를 말한다. 하티에서 시작하면 1800년간 존립하였던 서아시아에서 강력한 영역을 구축하였던 장구한 세력인데 우리는 히타이트를 거의 알지 못한다.

 

히타이트라는 말은 구약에 나오는 헷족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생기게 된 말이었다.

사실, 히타이트인들은 자신들이 살았던 고향의 이름을 따서 자신들을 하티인이라고 불렀다. (P.37)

 

히타이트인들의 유연성은 굉장하다. 나라 이름도 선주지에서 따오고, 문자와 종교도 자기의 것을 고집하지 않고 피정복 국가의 것을 그대로 수용한다. 신화와 전설 등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그들의 실용성은 법률에서도 드러나는데, 흔히 함무라비 법전이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보복 방식을 천명하는 반면, 히타이트인들은 중죄를 제외하고는 금전적 보상을 기본 원칙으로 삼는다고 한다.

 

저자는 히타이트의 철기를 높이 평가하지 않는다. 약간의 철기가 있지만 제국 간 전쟁에서 우위를 점할 정도로 대량의, 고품질의 철기는 아니었다고 본다. 오히려 히타이트 전차의 우수성을 강조한다. 이집트, 아시리아를 비롯한 중동 지역의 국가는 군대 주력이 전차 부대인데 유독 히타이트가 압도적인 것은 전차를 개량하여 탁월한 기동성을 확보한 덕분이라고 하니 여기서도 그네들의 실용적 사고를 엿볼 수 있다.

 

수필룰리우마 시기에 영토를 시리아까지 확장함으로써 제국으로 발전하였고, 제국 최전성기인 무와탈리 시기에 이집트의 람세스 2세와 벌인 전쟁은 기원전 13세기 당시로서는 세계 전쟁에 해당하는 거대한 규모이다. 이로써 이집트의 시리아 팽창을 저지하고 아나톨리아와 시리아 일대에 해당하는 영역을 확보할 수 있었다. 후대 하투실리 3세 시대에 이집트와 평화 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양국 간에는 평화가 도래하였음도 특기할 만하다. 이처럼 히타이트는 세계 최초라는 수식어가 달린 행위가 많다. 세계 최초의 철기 무기, 국가 간 조약, 세계 대전, 평화 조약 등.

 

[하투실리]의 외교 가운데 최대의 성과는 기원전 1259년에 이집트와 맺은 평화 조약이었다. 중근동의 최강대국 간에 맺은 조약으로 세계 최초의 평화 협정이었다. 이 조약은 어떤 면에서는 카데쉬 전투에서 히타이트가 승리하였음을 이집트가 간접적으로 승인하는 한편, 아시리아를 놓고 생긴 양 강대국 간의 긴장 관계가 종식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P.116)

 

강성하던 히타이트가 갑자기 멸망한 까닭은 정확히 알 수 없다. 이집트의 기록에 따르면 북방에서 내려온 해상 민족이 원인이었다고 하는데, 이집트가 물리친 그들을 히타이트가 못 이긴 까닭은 단순히 그네들의 세력이 강대하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히타이트의 원주지 아나톨리아는 역사적으로 끊임없이 타 세력의 공격을 받았다. 북쪽과 동쪽으로는 유목민의 세력이 접근하기 좋았으며, 서쪽으로는 해상 세력이 남쪽으로는 메소포타미아와 경계를 이루고 있었다. 이집트와 달리 주변 세력과 끊임없는 다툼은 국력을 소멸시켰고, 여기에 내홍이 겹쳐 일순간에 몰락한 게 아닐까 싶다.

 

막강한 바빌론 왕국을 정벌한 무르실리 왕 이후 히타이트가 혼란에 빠진 까닭도 인간의 변하지 않는 속성이 권력욕 아니었던가. 왕좌를 차지하기 위한 무법적 살인극은 결코 역사의 후배들에게 뒤지지 않는다. 오죽하면 훗날 왕위 계승 순서를 법으로 정해 놓았겠지만 세상사가 어디 법대로만 되는가. 그런 면에서 창궐하는 전염병에 인간적 약점을 그대로 노출하는 무르실리 2세의 기도문은 오늘날에도 여전한 호소력을 지닌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탐험가의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토록 히타이트의 모든 것은 너무나 낯설고 신기한 경험을 안겨주었다. 점토판의 문자를 하나하나 해독하여 불완전하나마 이렇게 한 거대 제국의 영욕을 윤곽이나마 그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다. 앞으로 계속되는 발굴의 성과에 따라 히타이트의 참모습은 더욱 달라질 수 있다는 기대감도 존재한다.

 

아직 가보지 못한 튀르키예에 가게 된다면, 히타이트 역사를 찾아볼 수 있는 보아즈칼레(하투샤), 야즐르카야, 아나톨리아 문명 박물관, 알라자회윅, 퀼테페 등 이 책에서 소개된 주요 명소를 꼭 방문하고 싶다. 우선 당장은 신간 <히타이트 제국의 역사>과 비교하여 읽는 재미를 누리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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