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안토니아 - 디오네 세계문학 01
윌라 캐더 지음, 윤명옥 옮김 / 디오네 / 2005년 10월
평점 :
절판


테이블에 두 팔을 디딘 채 창밖을 바라보는 한 젊은 여인. 수수한 옷차림으로 입술을 굳게 다문 채 응시하는 옆얼굴. 그녀는 무언으로 웅변한다. 어떤 고난이 닥치더라도 굴하지 않고 의연하게 버텨나가리라. 표지 한가운데가 네모지게 파여있고 책날개의 안쪽은 온통 빨간 바탕에 몇 글자가 흰색으로 쓰여있다. 책날개가 한번 접히면서 이 글자가 파여있는 네모 사이로 드러난다. <나의 안토니아>, 아름다운 표지다.

 

이상이 201712월에 쓴 문장이다. 거의 7년 가까이 지난 이제 다시금 <나의 안토니아>를 읽었다. 우연한 계기로 촉발된 윌라 캐더 전작 읽기를 미완결된 시작점에 돌아와 마무리하고 싶었다. 예전과 지금, 시간의 경과와 더불어 감상의 관점도 확실히 차이가 있음을 느낀다. 예전에는 오로지 여성 인물 안토니아가 중심적이었다. 낯선 땅에서 풍성한 생명력으로 삶을 긍정하는 여인. 지금은 시골 지역과 도회지에서 살아가는 개척자들의 삶이 안토니아의 삶과 어우러져 그 시절 네브래스카의 향토 속에서 묘한 회고적 추억과 정서를 풍긴다.

 

가장 행복한 날들은.... 가장 빨리 사라진다 - 베르길리우스 (P.5)

 

작가가 소설 첫머리에 인용한 문구다. 짐과 안토니아로 대표되는 네브래스카 시골의 삶이 가장 행복한 날이었다고 작가는 강조하고 싶었나 보다. 이 작품을 전반적으로 지배하는 정서는 분명히 추억과 회고다. 현재는 잃어버린, 그리고 되돌릴 수 없는 아름다움으로 빛나는 과거. ‘안토니아는 추억을 상기시키는 마법의 단어다.

 

그 소녀는 우리가 기억하는 어떤 사람보다도 더 우리에게 그 고장, 그때의 상황들, 모험 어린 우리의 어린 시절 전체를 의미하는 것 같았다. 그녀의 이름은 사람과 장소를 떠올리게 해서 그 이름을 말하면 머릿속에서 한 편의 드라마가 조용히 진행되었다. (P.8-9)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이지만, 엄밀히 살펴보면 최초 이주자인 뉴잉글랜드 주민들과 후에 넘어온 유럽 각국의 개척민들과 구별될 수 있다. 이 작품에는 후자의 집단인 보헤미안, 러시아, 스웨덴, 덴마크인 이주민들이 등장하여 자기 고유의 문화와 언어, 관습을 유지한 채 사는 모습이 그려진다. 쉬머르다 가족에 대한 묘사, 러시아인 파블과 피터 그리고 늑대 이야기 등은 다양한 민족 집단이 뿜어내는 다채로운 문화 다양성을 잘 보여준다. 새로운 땅에서 힘겨운 적응 노력과 동시에 떠나온 고향을 향한 짙은 향수를 지니며 좌절을 겪으면서도 끝내 정착에 성공하는 모습은 미국 역사의 한 장면에 해당한다. 다르노의 피아노 연주 대목도 흑인 차별과 관련한 흥미로운 일화다.

 

짐은 어릴 적부터 안토니아를 비롯한 시골 처녀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면서 훗날 도시처녀들과는 구분되는 눈부신 생명력과 진실한 성실성의 미덕을 그들에게서 찾게 된다. 짐 역시 어린 나이에 동부에서 서부로 멀리 낯선 곳으로 온 동병상련의 처지 아니던가. 그런 짐과 안토니아는 서로를 친구 이상의 관계, 즉 가족과 남매 같은 존재로 받아들인다. 짐이 방황하고 흔들릴 때, 그가 외롭고 우울할 때 안토니아는 그에게 기운과 위안을 주는 존재로서.

 

안토니아의 따뜻하고 아름다운 얼굴, 그녀의 친절한 두 팔, 그녀의 진실한 마음. 그녀는, , 그녀는 여전히 나의 안토니아였다! (P.215)

 

나는 그녀의 얼굴을 열심히 쳐다보았다. 그 얼굴은 내가 항상 간직해야 하고, 모든 여자들의 얼굴이 드리우는 그림자 아래에서 가장 친근하고 가장 생생하게 내 기억 속에 남아 있을 얼굴이었다. (P.303)

 

작가는 안토니아를 완벽하고 이상적인 여인상으로 그리지 않는다. 그녀의 외모와 품성, 태도를 지나칠 정도로 높이 평가하면서도 인간적 약점을 지닌 젊은 처녀임을 상기시킨다. 즉 암브로쉬와 제이크의 싸움에 엉뚱하게 분개하고, 천막 교습소에 가는 걸 금지하자 발끈하여 주인집에서 나와 커터씨 네에서 큰일을 당할 뻔하며, 형편없는 남자에게 사랑에 빠져 미혼으로 사생아를 낳는 수치를 겪기도 한다. 주위 사람들이 안타까운 심정에서 불쌍한 안토니아로 일컬어질 정도로.

 

그럼에도 독자는 그녀를 구원의 여인상처럼 인식할 수밖에 없는데 이 모든 것은 그녀의 건강한 생명력과 낙담할 줄 모르는 긍정적 정신이다. 짐이 맨 처음 안토니아와 만나는 대목에서 어린 그녀의 외모에 대한 묘사, 프랜시스가 짐의 할머니에게 전달하는 처녀 안토니아의 건강한 모습에서부터 오랜 세월이 흘러 중년 여인이 되어 외모는 사그라들었음에도 꺼지지 않는 내면의 불꽃으로 타오르는 안토니아에 이르기까지. 작가가 쿠작네 자녀가 열 명이 넘도록 설정한 것은 그만큼 안토니아의 풍성한 생명력을 가시적으로 보여주고자 함이 아니겠는가.

 

나는 안토니아가 그동안 잃어버린 것들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서도 내면의 불꽃은 사그라져 버린 많은 여자들을 알고 있다. 다른 무엇이 안토니아에게서 사라져버렸다고 해도 그녀는 생명의 불을 잃지 않고 있었다. (P.315)

 

그녀는 마치 초기 종족의 시조 같은, 생명의 풍요로운 광산이었던 것이다. (P.332)

 

이 작품이 더욱 매력적인 것은 배경인 네브래스카를 향한 작가의 깊은 애정이다. 캐더는 짐의 눈을 통해 언뜻 황량한 시골에 불과하게 여겨질 수 있는 그 지역의 길들여지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에 경탄한다. 자연은 사람들에게 항상 우호적이지 않다. 타는 듯 뜨거운 햇볕, 도처에 편재한 방울뱀의 위험, 휘몰아치는 폭설과 매서운 한파는 사람을 위협하고 좌절시키기도 하지만 그 속에서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모습조차도 조화롭고 순수하다. 그것은 일종의 찬가다.

 

바람 부는 봄철과 불타는 여름철이 이어지면서 그 고원지대를 풍성하고 농익게 했다. 그 대지 속으로 흘러들어간 인간의 모든 노력이 이제 결실을 맺어 기름진 밭이 줄지어 뻗어 있었다. 그러한 변화는 내게 아름답고 조화로워 보였다. 그것은 위대한 사람 또는 위대한 사상이 성장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과 같았다. (P.289)

 

캐더는 세월의 흐름과 문명의 발전에 따라 전개되는 야생의 개발과 도시화를 불가피한 것으로 인식하면서도 사라져 버린 당시의 순수함과 소박함에 대한 그리움의 정서도 여전히 가치 있음을 되풀이하여 역설한다. 언뜻 보면 시골 배경 이주민들의 소소한 살아가는 모습을 기술하였기에 윌라 캐더를 지방주의 작가로 간주하기도 하지만, 그녀는 산업화하고 문명화된 도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인간 본연의 순수한 인간성에 대한 천착을 여기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기에 추억과 회고의 감정과 정서가 배어 나오게 된 것이리라.

 

안토니아 못지않게 독자의 관심을 끄는 인물은 타이니 소더볼과 레나 린가르드다. 안토니아에 비해 처녀 시절 품행에 있어 좋지 못한 평가를 받은 그들은 외양적으로는 독보적인 성공 가도를 달린다. 짐과의 애인 관계였던 레나가 더욱 흥미로운데, 부질없는 일이지만 짐과 레나가 결혼했다면 두 사람의 앞날은 어땠을지 궁금하다. 금광 개발로 큰돈을 번 타이니와, 남성 종속적인 결혼 자체에 부정적인 레나는 요즘 관점으로 주체적 삶을 지향하는 여성주의자의 전형에 가깝다.

 

여기에 여러 아이에 둘러싸인 평범한 아줌마가 있다. 그녀는 어릴 때 꽤 고생했고, 평탄하지 못한 삶의 길을 밟아왔지만 꿋꿋이 버텨내고 넉넉하지는 않지만 행복한 가정을 꾸렸다. 그녀와 꼬맹이 시절부터 친한 한 중년 남성이 있다. 변호사로 출세한 인물이지만 현재 행복한지는 확실치 않다. 그의 정신적 토대는 여전히 시골 네브래스카에 두고 있다. 두 사람의 인생은 나란히 때로는 엇갈리고 이따금 멀어져 가기도 했지만 운명의 끈은 영원히 벗어나지 못하도록 단단히 묶고 있다. 작가는 소설의 마지막 단락에서 짐과 안토니아를 다시금 연결한다. 두 사람이 어린 시절부터 겪어 온 갈림길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삶의 모습에서, 그리고 두 사람의 평생 여정을 찬찬히 따라온 독자들에게 상기시키는 듯이.

 

이제 나는 바로 이 길이 우리를 다시 연결시켜주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가 놓쳐버린 것이 무엇이든지 우리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귀중한 과거를 함께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다. (P.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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