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간 사이에 일어난 일 - 최면 / 아내의 편지 / 라일락 / 데지레의 아기 / 바이유 너머 얼리퍼플오키드 1
케이트 쇼팽 지음, 이리나 옮김 / 책읽는고양이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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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작>

한 시간 사이에 일어난 일

최면

아내의 편지

라일락

데지레의 아기

바이유 너머

 

케이트 쇼팽은 장편 <각성>과 몇몇 단편을 읽었지만, 그다지 애호하는 작가는 아니다. <실크 스타킹 한 켤레>, <아카디아 무도회>, <폭풍우>를 보면 제재의 참신성과 반전의 결말이 두드러진 특징을 보이는 가운데, 외관상의 포용성과는 다른 왠지 모를 냉소감이 느껴진다면 지나친 판단일까.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지만, 단순한 여성주의로 치부하기에는 애매한 뭔가가 작품 속에 확실히 들어 있다.

 

결혼한 남녀 관계, 즉 부부는 모든 사회와 국가를 물론 하고 바람직한 전형으로 찬미하는 인간관계다. 두 사람의 인연이 사랑, 즉 자의에 의해 이루어졌다면 죽을 때까지 지극히 아름답고 굳건한 애정과 믿음으로 이어져야 할 테지만, 이런저런 연유로 수많은 불협화음과 파국으로 점철되는 사례가 빈번하다. <한 시간 사이에 일어난 일>, <아내의 편지>, <데지레의 아기>가 바로 이러한 제재를 다룬다. 결혼을 자유의 상실, 속박으로 받아들인다면 온전한 관계는 형성되지 못한다. 각자는 자유의 회복을 꿈꾸며, 결혼의 종결을 상상한다. <한 시간 사이에 일어난 일>의 맬라드 부인처럼.

 

이제 앞으로 다가올 시간에는 누군가를 위해 살지 않아도 된다. 오직 자신을 위해 살 것이다. 같은 인간이면서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의지를 강요해도 된다고 믿는 이의 아집으로 인해 감정이 상처받지 않아도 되었다. (P.10)

 

그녀의 죽음은 일견 슬프지만, 차라리 다행이기도 하다. 그녀의 남은 결혼 생활은 아마도 지옥에 가까울 테니까. 맬라드 부인 같은 결혼에 대한 인식을 갖도록 권하는 결혼 생활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아내의 편지>의 남편 처지는 맬라드 부인과 흡사하다. 그는 아내와 관계가 비교적 원만했다고 생각하는데, 아내의 편지 뭉치가 이를 근본적으로 뒤흔들어 놓는다. 남편은 아내의 겉껍데기만 차지했을 뿐, 아내의 속마음은 기실 다른 남자에게로 향하였던 것이다. 자신의 손으로 편지 뭉치를 없애면 될 터인데, 이것을 남편에게 떠맡긴 아내의 잔인성이여. 편지 꾸러미를 강물 속에 빠뜨려 없앤 것과 별개로 남편의 마음속에는 묵직한 의혹이 자리 잡는다. 차라리 편지가 없었다면 남편의 마음은 슬픔 속에 평온함과 추억을 가지고 아내를 기릴 수 있었을 텐데, 더 이상 그의 삶에서 평안은 없다.

 

심신이 피폐한 가운데 엄청난 위해가 가해져 존재 자체가 산산이 조각나버린 느낌이었다. 이제 남편에게는 자신이 손수 강에 던져버린 수수께끼를 풀고 싶은 간절한 소망뿐이었다. (P.52)

 

결혼과 출산은 부부 사이의 상호 신뢰를 전제로 한다. 서로 간에 한 남자, 한 여자와 법적, 성적 관계를 오로지 유지한다는 것. 따라서 사랑의 결실인 아기는 부부의 유전자를 공유함으로써 개체로서의 생명체는 사멸하더라도 종으로서의 생명체는 영원히 지속할 수 있는 의미를 지니는 만큼 어느 사회를 막론하더라도 중시하게 마련이다. 이 과정에 문제가 발생하면 결혼 생활은 파탄에 이르게 된다. <데지레의 아기>처럼.

 

어릴 적 입양된 데지레는 아르망과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고 곧 아기를 낳는다. 누가 봐도 앞날이 행복으로 창창한 데지레이지만, 그녀의 행복은 삽시간에 어둠에 드리워진다. 남편은 그녀에게 냉담하게 대하고, 주변에서는 작은 소리로 그녀를 향해 수군거린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그녀는 자신의 아기와 혼혈 소년을 나란히 바라보면서 신음을 내뱉게 된다.

 

백인 부부 사이에 태어난 아기가 순수 백인이 아니라면 아기에게 유전자를 전해 준 생부와 생모 어딘가에 문제가 있음을 가리킨다. 그러면 누구인가, 아르망인가 데지레인가. 아르망은 냉정하다.

 

쟤는 백인이 아니야. , 당신이 백인이 아니란 뜻이지.” (P.90)

 

출신이 분명치 않은 데지레인 만큼 완전한 부인은 불가능하다. 데지레의 항변은 비웃음으로 스러질 뿐. 데지레는 아기를 안고 강물 속으로 사라진다. 그리고 데지레의 물건을 불태우는 과정에 발견된 아르망 엄마의 편지 다발은 충격적인 진실을 아르망에게 전달한다. 사실 작품 중간에 모종의 암시를 작가는 깔아놓았다. 이를 눈여겨본 독자는 그다지 놀라지 않을 것이다.

 

이 작품의 결말은 여러모로 안타깝다. 독자는 아르망을 일방적으로 비난하기 어렵다. 당대 사회 현실을 고려하면 그가 이를 너그럽게 수용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므로. 남편에게 버림받음과, 아기의 피부색을 이유로 한 데지레의 극단적 선택도 아쉬울 수 있다. 우리 모두는 제삼자의 시각에서 아르망과 데지레 이야기를 말하기는 쉬워도 요즘 시절에도 친자 여부를 둘러싼 시시비비가 적지 않다고 하니 남의 말 하듯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최면>은 부부 이야기지만, 앞의 작품들과는 전혀 다르다. 장기 부재중에 자신의 여자친구를 잘 돌보도록, 여자친구를 혐오하는 친구에게 최면을 건 그레이엄. 최면에 걸려 싫어하는 여성과 사랑을 하고 결혼하게 된 패버햄. 자신을 싫어하는 줄 알았던 남자친구의 친구의 다정함과 매력에 빠져 진정한 사랑을 느끼고 결혼을 하게 된 폴린. 언뜻 보면 끝장 드라마의 설정이다.

 

이 작품이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건 최면이라는 외부적 요인으로 촉발되었지만 끝내 최면의 작용을 거부한 사랑의 힘에 대한 모두의 공감이다. 그레이엄은 여자친구를 되찾는 데 실패했지만 그다지 불행하지 않을 것이다. 최면의 효과와 한계를 생생하게 목도하였으며, 사랑의 힘이 갖는 진정한 위력을 깨달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친구와 여자친구를 잃은 게 아니라 행복한 한 쌍의 친구를 얻은 것이다.

 

두 사람의 에너지, 사랑 그리고 위엄 있는 주문이 남자의 잠재의식 안에서 짧고 강렬하게 갈등하고 투쟁한 결과 사랑이 승리한 듯했다. 그레이엄은 이를 의심 없이 믿었다. (P.35)

 

<바이유 넘어>는 극한 상황에서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은 라 폴의 이야기다. 바이유 늪지대에서 홀로 살아가는 흑인 여성 소작농 미친 여자. 어린 시절 겪은 무시무시한 공포로 그녀는 늪지대 밖으로 벗어나지 못한다. 그녀가 사랑하는 농장주의 어린 아들의 사고. 다른 사람의 도움을 기대하기 어렵고, 자신이 아이를 안은 채 늪지대를 건너거나 아니면 아이의 죽음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 행동은 시작하기 어렵지만 일단 시작하면 아무것도 아니며, 한계는 한번 뛰어넘으면 다음부터 더는 한계가 아니다. 이제 그녀는 바이유 너머를 성큼성큼 건널 수 있게 되었고, 그것이 비단 걸음 이상임을 독자와 라 폴 모두 알고 있다.

 

난생처음 바이유 너머의 새롭고 아름다운 세상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는 라 폴의 얼굴에 경이와 만족감이 조금씩 자리하기 시작했다. (P.109)

 

<라일락>은 묘한 작품이다. 라일락이 필 무렵이면 수녀원을 방문하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히는 귀부인 에드리언. 그녀는 속세의 부산함을 떠나 수습 수녀 시절의 경건하고 순수했던 내면을 회복하고 싶었을 것이다. 아가스 수녀는 다른 수녀보다 조금 더 에드리언을 향한 기쁨과 행복이 클 뿐이 아니겠는가. 설혹 그녀가 에드리언을 사랑하는 마음이 크더라도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 경계할 정도로 신중하고 차분하다.

 

고통받는 자들에게 위로와 안식을 주고, 사랑하고 공감해줄 준비가 된 하늘에 계신 우리 성모 마리아께 드리는 마음과 이 마음이 혹시 다르지는 않을까 걱정돼요.” (P.62)

 

원장 수녀가 에드리언의 방문을 금지한 까닭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에드리언을 향한 아가스 수녀의 사랑이 순수하지 못하였음을 감지한 것일까. 에드리언이 매년 몰고 오는 세속의 바람과 물욕이 수녀들에게 좋지 못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감내할 수 없기 때문일까. 아가스 수녀의 사랑은 마음속에만 있었다. 그렇다면 에드리언이 차마 부당하다고 말하지 못했”(P.72)던 것은 나중의 까닭을 염두에 두었을 가능성은 전혀 없는가.

 

해설에서는 이 작품을 동성애 코드로 풀이하고 있는데, 작중에는 동성애 관련한 직간접적인 묘사와 기술이 일체 언급되지 않는다. 과거 수습 수녀였던 에드리언의 수녀원 정례 방문과, 그녀를 환영하는 수녀들, 특히 아가스 수녀의 기쁨과 행복을 동성애라는 한 마디 정의와 해석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는 오로지 독자의 몫이다.

 

이 책에는 실린 여섯 편의 단편은 케이트 쇼팽의 작품세계를 좀 더 알아보기에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다. 책을 다 읽은 느낌을 먼저 언급하면, 여전한 반전의 미학이 인상적이다. 독자는 어지간하면 작품의 결말을 섣불리 예측할 수 없다. 게다가 그 반전의 결과는 여성의 차원을 넘어 인간으로 이어진다. 신뢰, 사랑, 부부, 의지 등 보편적 인간성과 연결되어 있고 그것이 여성성의 맥락에서 어떤 형태를 보이는가를 명확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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