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엄마의 반란 - 갈라 드레스/ 뉴잉글랜드 수녀/ 엇나간 선행 ㅣ 얼리퍼플오키드 3
메리 E. 윌킨스 프리먼 지음, 이리나 옮김 / 책읽는고양이 / 2020년 10월
평점 :
<수록작>
엄마의 반란
갈라 드레스
뉴잉글랜드 수녀
엇나간 선행
이전에는 전혀 알지 못했던 윌킨스 프리먼의 <뉴잉글랜드 수녀>를 읽으면서 이 작가에 대해 호기심이 생겼다. 나의 궁금증이 애호의 단계로 넘어갈 수 있을지 작가의 다른 단편집을 읽으면서 확인해 보고 싶었다.
<엄마의 반란>을 보자. 남편의 전횡을 참다못한 엄마가 일종의 반란을 일으킨다는 유쾌한 설정을 다루고 있다. 남편에 비해 여러모로 엄마가 고매하고 탁월한 인격의 소지자임이 작품 속에 여러 번 되풀이되어 소개된다.
코와 입으로 이어지는 선은 순해 보였지만, 남자에게 고정된 눈에서는 결코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의 의지대로 살려는 기개가 엿보였다. (P.8)
그런 엄마이지만 남편을 위하고 순종적인 삶을 지향한다. 화가 난 상황에서도 남편을 위해 묵묵히 파이를 굽는 엄마의 모습이 눈물겹다. 남편이 아내에게 한 약속, 즉 새집을 지어주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기만 했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남편이 열심히 불필요한 창고를 지어대면서까지 새집을 짓지 않는 건 솔직히 억지에 가까운 설정이다. 그렇다고 아내에게 당당하지도 않으며 그저 언급을 회피하려고만 한다.
“맙소사, 여보. 난 당신이 이 정도로 강한 사람인 줄 몰랐어.” 애덤이 쉰 목소리로 말했다. (P.40)
결말은 허탈할 정도다. 아내의 과감한 시도에 기가 꺾인 남편은 아무런 말도 행동도 하지 못한다. 그저 수동적으로 수용할 뿐이다. 아내를 대등한 존재로 인정하지 않고 깔보던 한심한 남편의 비참함이란.
<갈라 드레스>는 여자들의 이야기다. 중산층 신분으로서 품위를 유지하고 싶지만 형편이 어려워 전전긍긍하는 노처녀 자매. 사교모임에 나갈 때 입을 드레스가 한 벌밖에 없어 둘이 동시에 나가지 못하고 한 명만 교대로 드레스를 수선해 입는 장면은 짠하기조차 하다. 여적여란 말처럼 그녀들의 친구이자 시샘하는 마틸다로 인해 그녀들은 곤경에 처한다. 독자는 주인공을 동정하는 만큼 마틸다를 미워하지만, 마지막 대목에서 그녀를 동정할 수밖에 없다. 낮은 신분의 그녀는 모임에 나갈 드레스조차 갖고 있지 못한 처지이므로. 우연의 도움으로 두 벌의 드레스를 갖게 된 자매가 자신의 헌 드레스를 마틸다에게 주는 장면에서 아마도 여자들만 절절한 감정을 품게 될 것이다.
<엇나간 선행>도 역시 자매가 등장하는데, 둘 다 늙은 데다 해리엇은 귀가 먹고 관절염이 있는 데다, 샬럿은 눈이 먼 처지다. 가난한 살림이지만 자신들의 낡은 집에서 어떻게든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하루하루 생계를 꾸려나가는 그들, 물론 가끔씩 마을주민이 그들에게 이런저런 도움을 주지만 그네들은 결코 그것을 바라거나 의존하지 않는다. 섀턱 자매가 주민들의 선행을 거부하는 이유는 알 수 없다. 무상으로 여건 좋은 양로원에 들어갔지만 그네들은 답답함을 견디지 못해 힘겹게 탈주하고 자신들의 옛집으로 돌아간다. 언뜻 딱하고 무모해 보이는 그네들이지만 샬럿이 자주 하는 말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그것은 또한 주민들의 선행이 자매의 마음을 어루만지지 못한 것임도 알게 해준다.
“오! 해리어, 여기 테이블에 앉아 있을 땐 빛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 배추나, 채소에 싼 돼지고기를 먹으면 빛이 느껴질 텐데!” 샬럿이 자주 하는 말이었다. (P.115)
<뉴잉글랜드 수녀>는 작가의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이니만큼 벌써 세 번째 읽는다. 매번 읽을 때마다 감흥이 남다르다. 루이자와 같은 생각을 품는다면 이 세상에 결혼은 과연 가능할까 의구심이 생길 정도다. 결혼이란 남남의 결합이니만큼 다소간 불편과 양보와 희생은 불가피하다, 그것을 극복하는 게 사랑과 정 아니겠는가. 루이자는 스스로를 수녀처럼 만들었다. 루이자를 향한 작가의 평가가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 나로서는 도저히 판단하기 어렵다.
루이자는 세속과 격리되지는 않았으나 수녀처럼 살아갈 앞으로의 날들을 그리며 기도하듯 창가에 앉아 있었다. (P.97)
이 책에 실린 네 편의 단편소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건 그녀가 확실히 여성주의 작가라는 사실이다. 수록작 모두 여성을 주인공으로 삼으면서 여성들의 주체적 삶을 강조하고 있음은 명백하다. 다만 남성과 여성의 대비에 치중하지 않으면서 <갈라 드레스>와 <엇나간 선행>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여성, 나아가 인간의 보편적 삶의 본질을 드러내고자 하는 점이 여타 여성주의 작가와는 구별된다.
윌킨스 프리먼의 작품집을 읽으면서 작가에 대한 호기심은 더욱 증폭되었다. 그녀의 작품은 전혀 진부하지 않으며 하나하나가 뜻밖의 설정과 결말을 지니고 있어 읽는 재미와 동시에 곱씹을 만한 뒷맛을 남긴다. 천만의외로 그녀의 더 많은 단편이 수록된 작품집이 출간되어 있으니 놓치지 않으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