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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의 이야기 - 영미 여성 작가 단편 모음집
루이자 메이 올콧 외 지음 / 코호북스(cohobooks) / 2020년 5월
평점 :
품절
<수록 작품>
루이자 메이 올컷 - 내가 하녀가 되었던 경위
제인 오스틴 - 세 자매
윌라 캐더 - 폴의 사례
케이트 쇼팽 - 실크 스타킹 한 켤레
메리 E. 윌킨스 프리먼 - 뉴잉글랜드 수녀
엘리자베스 개스켈 - 이부형제
샬럿 퍼킨스 길먼 - 변심
수전 글래스펠 - 사소한 것들
조라 닐 허스턴 - 땀
에이미 레비 - 현명한 세대
캐서린 맨스필드 - 행복
이디스 워턴 - 다른 두 사람
버지니아 울프 - 새 드레스
좋아하는 작가 윌라 캐더의 <폴의 사례>를 위하여 이 책을 읽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여성주의를 표방하는 작가 또는 작품은 좋아하지 않는다. 삶은 남성 혹은 여성만을 표방해서 이해하고 살아갈 수 없다는 생각에서다. 종래의 관습과 타성에 묻혀 있던 여성성을 발견하고 추구한다면 몰라도 그것을 과장하고 극단화하는 방향성은 내 선호에 부합하지 않는다.
여성주의 논의는 차치하고 이 책에 실린 13편의 단편들은 자체로서 대체로 흥미롭고 재밌기까지 하다. 맨스필드의 <행복>은 재회가 반갑다. 올컷과 오스틴, 개스켈, 허스턴, 울프 등 나름 친숙한 작가의 단편 작품은 처음 접한다. 워턴과 쇼팽의 이름은 들어봤지만 실제 독서는 처음이다. 프리먼, 길먼, 글래스펠과 레비는 완전 생소한 작가인데, 덕택에 존재를 알게 된 것만 해도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단언해도 좋다.
수록된 작품들을 통해 근대 여성의 삶의 공통점을 몇 가지 간추려볼 수 있다. 그녀들에게 결혼은 인생의 거의 전부에 해당한다. 그것은 현대도 마찬가지라고 하겠지만, 결혼에 대한 의존도와 절대적 중요도는 현대와는 비교 불가능하다. <세 자매>에서 볼 수 있듯 사랑과 결혼은 분리할 수 있다. 여자는 신분과 경제적 안정을 위해, 남자는 번듯한 가정을 꾸리려는 행위 자체가 중요하다. <뉴잉글랜드 수녀>에서 루이자는 스스로 수녀와 같은 삶을 선택한다. 무척이나 이색적인 결정이지만, 그녀가 조와 오랜 기간 떨어져 있지 않았다면, 그리고 어쨌든 그녀가 자급자족할 수 있는 기반이 없었다면 그녀의 선택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루이자의 경우는 제한적인 동시에 시사적이다.
<현명한 세대>는 독특하다. 여기는 소위 남녀 사이의 밀당을 둘러싼 심리전이 치열하게 전개된다. 자신에게 호감을 나타낸 남자가 부유한 아가씨와 결혼하자, 필립 앞에서 부자 귀족 가이 경과 다정한 장면을 연출한다. 워릭 양이 가이 경을 실제 좋아하는지는 중요치 않다. 그녀는 필립을 아직 떠나보내지 않았고, 그에게 한 방 먹일 생각을 품고 있다. 사교계 풋내기 아가씨가 노련한 여성이 되어 두 남자를 손에 쥐고 이리저리 흔드는 모습이 흥미롭다. 결론은 모호하다. 가이 경의 청혼을 끌어내는데 성공의 기쁨을 만끽하는 그녀, 그녀는 가이 경을 받아들일까. ‘현명한 세대’답게 현명한 선택을 할 것은 분명하다.
결혼으로 남편을 얻고 가정을 꾸리는 데 성공했다고 해서 모든 것이 행복하지는 않다. 모든 남자가 부자가 아니기에 경제적 요인은 항상 신경 쓸 수밖에 없다. 결혼은 양성의 행복한 결합을 전제로 하지만, 누구 말처럼 사랑은 움직이는 법이다. 여기에 전근대적 남성우월주의가 결부된다면 가정폭력은 일상사가 된다. 많이 개선되었지만 여전히 매맞는 아내의 사례가 남아있다고 하니 과거에는 한층 심하였을 것이다.
<실크 스타킹 한 켤레>는 나쁘게 보면 주부의 덧없는 허영심을 풍자한 소설이지만, 가정생활의 무게에 짓눌린 여성의 억압된 꿈을 드러낸다고 볼 수도 있다. 비록 현실을 되돌릴 수 없음을 알면서도 잠시나마 그 꿈이 계속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소망은 남녀를 불문하고 공통적이다. 여성이 상대적으로 의복에 집착하는 까닭은 그것이 사회적 신분과 경제적 위치, 결혼생활의 안정성을 대외적으로 보여주는 요소라는 점을 <새 드레스>는 알려 준다. 메이블이 스스로 위축되고 비참해하는 까닭은 그녀가 가난해서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자신을 쟁반 중앙에 처박힌 불쌍한 파리와 동일시한다.
<행복>에서 버사는 온몸 가득 행복을 느끼지만 그 순간 그녀의 행복이 위기에 처해 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줄 뿐이다. <다른 두 사람>은 조금 묘하다. 두 남편과 이혼하고, 세 번째 남편과 살고 있는 앨리스. 그녀의 경쟁력은 매혹적인 미모와 우아한 언행이다. 우연찮은 사건으로 웨이손은 그녀의 전전남편, 전남편과 계속 마주치게 되고 점차로 그들의 존재를 불편해하지 않게 된다. 오늘의 앨리스를 만든 건 어쩌면 두 남편 덕택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표제의 ‘다른 두 사람’은 과거와 오늘의 앨리스를 너무나 다른 인물임을 뜻하는 걸까?
허스턴의 <땀>은 여성, 그리고 흑인의 열악한 상황을 더욱 강렬하게 인식하게 만든다. 대표작 <그들의 눈은 신을 보고 있었다>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억압받는 흑인 여성의 실태를 드러내고 저항하고자 하는 의지를 명확히 표출한다. 그녀의 작품에서 흑인 남성은 오히려 여성에 비해 자질 면에서 열등하다. 그것을 만회하는 방식이 바로 폭력인 것이다. 사이크스의 비명에 딜리아가 움직일 수 없었던 건지 움직이지 않았던 것인지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가정생활의 파탄에 처해서 가장 담대한 용기를 보여주는 인물은 <변심>의 매로너 부인이다. 고상한 남편이 어린 하녀에게 마수를 뻗치고 아기를 갖게 했을 때 갈등의 축은 부인 대 하녀가 되기 십상이다. 어쨌든 가정을 깨뜨리기를 원치 않기에 하녀를 쫓아내게 마련이다. 매로너 부인은 달리 생각한다. 게르타 또한 피해자라고 인식의 전환을 하는 순간 모든 게 달라진다. 이제 비난의 대상은 여성에서 남성으로 바뀐다.
“이것은 남성이 여성에게 지은 죄야.” 그녀가 말했다 “이것은 여성성을 상대로 범한 죄야. 모성을 상대로 범한 죄야. 아기-에게 저지른 죄야.” (P.157)
올컷의 <내가 하녀가 되었던 경위>는 목사라는 허울 속에 든 위선에 대한 폭로이자, 하인 또는 하녀에 대한 역할과 처우의 존중 필요성을 유머러스하게-비록 화자에게는 고통의 나날이겠지만-제시하는 글이다. 글래스펠의 <사소한 것들>은 단막극이다. 남편 라이트의 죽음, 정신이 나간 듯 무력하게 앉아있는 라이트 부인. 사망 원인을 조사하는 목격자 해일, 보안관과 경찰, 집안을 둘러보는 해일 부인과 보안관 부인. 두 부인의 대화에서 독자는 이 집의 분위기와 라이트 부부의 현 상황에 대한 단서를 미묘하게나마 유추할 수 있다. 개스켈의 <이부형제>는 계모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질투와 학대의 전반부와, 엄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화자의 생명을 대신하여 바치는 그레고리 형의 장엄한 비극의 후반부를 대비한다. 아버지의 뒤늦은 후회와 자책, 그리고 유언장도 눈시울을 뜨겁게 하지만 무엇보다 그레고리 형의 처지에서 회상했을 때 어린 나이에 그 모든 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였을 그가 너무나 가슴 아프다.
<폴의 사례>는 다소 다른 성격의 작품이다. 소년 폴은 현실 세계보다 꿈과 환상에 젖어 있다. 학교 교사를 절망에 빠뜨릴 정도의 언행을 보이는 그는 극장과 카네기 홀에서 살아있는 존재가 된다. 대개의 사람은 양자를 조화하거나 현실을 위해 환상을 잠시 잊거나 억누르기 마련인데 폴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사람들은 폴의 사례를 나쁜 사례라고 생각한다. 퇴학당하고 극장에서도 쫓겨난 폴에게 우연히 거액의 돈을 횡령할 기회가 생기고, 그는 호텔과 극장을 오가는 화려한 신사의 삶을 마음껏 향유한다. 그것이야말로 자신의 잃어버린 참모습이며 이제야 간신히 되찾았다는 듯이. 어느덧 횡령은 들통나고, 돈은 바닥나고 아버지는 그를 찾으러 올 것이다.
감옥보다 더 끔찍할 것이다. 코델리아 스트리트의 미지근한 물이 마침내 그리고 영원히 그를 삼켜 버릴 것이다. 회색빛 단조로움이 그의 앞에 무미건조하고 희망 없는 세월로 펼쳐졌다. (P.86)
그가 두려운 것은 잡히는 게 아니다. 그는 다시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그가 마지막으로 후회한 것은 멀리 미국을 떠나 지중해로 가고자 하는 생각을 실행에 옮기지 않은 자신의 성급한 실수였다. 우리는 폴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사회도덕과 질서를 깨뜨린 비행소년, 사회 부적응자. 현실과 꿈을 구분하지 못한 몽상가, 망상가. 현실에서 포용하지 못한 자유롭고 열정적인 상상력을 지닌 안타까운 소년의 사례.
여기 소개된 여러 작가는 초면이다. 케이트 쇼팽의 작품은 주인공의 일탈에 저도 모르게 동정과 공감을 품게 되는 묘한 매력이 있다. 그녀의 다른 작품들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엘리자베스 개스켈은 계속 나의 목록에 있는 작가다. 윌킨스 프리먼, 퍼킨스 길먼, 수전 글래스펠의 다른 작품들도 몇 권 국내에 소개되어 있는데 역시나 기회가 되면 한번 읽어보련다. 에이미 레비는 글쓰기 양식이 독특하여 좀 더 경험해 보고 싶은데 다른 작품은 출간되지 않아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