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암동 블루스
고형진 지음 / 고려대학교출판문화원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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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고려대학교에서 정년퇴임을 하면서 펴낸, 일종의 정년퇴임 기념 문집이다. 다만 일반적인 문집과는 구성이 사뭇 다르다.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어는 저자 자신이 아니라 고려대학교다. 평생을 봉직하면서 저자가 지녔던 고려대를 향한 사랑을 고려대의 문학적 유산을 되돌아보며, 자신이 겪었던 고려대와 고려대인의 추억을 회고한다.

 

1부는 고려대학교를 제재로 삼은 여러 작가의 시, 수필, 단편소설을 한데 묶은 것이다. 조지훈, 오탁번, 이희중, 강연호, 심재휘 등 여러 고대 출신 문인들이 등장하여 각자의 시각에서 고려대를 표현한다. 동시대에 학교를 다니거나 학교에 대한 추억을 지닌 독자라면 작가들이 그리는 당시 고려대의 모습에서 맞아, 그랬지 하고 저도 모르게 회상에 빠질지 모른다. 훨씬 후대의 독자라면 당대 고려대의 풍물이 그러했구나 하고 새삼 신기하게 여길 수도 있다.

 

현대사의 굵직한 고비마다 시대와 함께 풍운을 겪었던 대학이니만큼 수록 작품에서도 이를 담고 있어 가슴이 뜨거워진다. <늬들 마음을 우리가 안다>의 울분과 답답함, 미안함은 여전하며 <80년대라는 이름의 강의실>(심재휘), <오월의 숲>(이희중)에서 대학의 대학다움이 무엇일지 새삼 생각해 본다. “고려대학교 정문에는 문패가 없다”(P.34)라며 도발적으로 시작하는 오탁번의 <고려대학교>는 당당한 자긍심이며, 문과대 옆 스팀목련은 올해도 때아니게 꽃을 피움에 공감을 품는다.

 

늬들 마음을 우리가 안다 늬들의 공을 온 겨레가 안다.

하늘도 경건히 고개 숙일 너희 빛나는 죽음 앞에

해마다 해마다 더 많은 꽃이 피리라. (P.23, 조지훈 늬들 마음을 우리가 안다’)

 

<굴뚝과 천장>(오탁번)은 본관 건물에서 발견된 오래된 사체를 작가의 상상력이 풍선처럼 부풀려 한 편의 인간 드라마를 만들어낸다. 작중의 화자는 죽은 그와 친소를 반복하는 라이벌의 삶을 사는데, 그는 민주화의 투쟁으로 화자는 안정된 개인적 삶의 투쟁으로 길을 달리한다. 어딘가로의 실종 또는 잠적으로 그는 화자가 도저히 넘볼 수 없는 머나먼 존재로 승격시키는데 난데없는 사체의 발견으로 그 신비로움이 깨졌음을 화자는 애석해한다. 독자는 화자의 어조가 속이려 하지만 자신에게 일말의 부끄러움이, 겉보기에 보잘것없는 삶을 선택한 그에게 존경과 동경의 마음이 서려 있음을 깨닫게 될 뿐이다.

 

끝까지 끝까지 그는 내가 도달할 수 없는 차원에 존재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자 나는 미칠 것 같았다. 이런 나의 감정이 그에 대한 그리움 때문인지 증오 때문인지 대결 의식 때문인지 그 당시는 물론 지금까지도 알 수가 없는 일이다. (P.142)

 

2부는 저자 자신의 글로 오롯이 담고 있다. 본인이 학생 시절 만났던 은사인 정한숙과 오탁번에 대한 회상록이다. 이미 유명을 달리한 원로 교수의 인간미 물씬 풍기는 일화를 접하는 재미가 있다. 쏠쏠한 지적 자극을 주는 글도 들어 있는데, <고려대학교 교가의 문학성과 음악성>은 교가의 가사와 악곡을 진지하게 분석하고 있어 고대인조차 미처 생각지 못한 교가의 아름다움을 새삼 일깨워준다. 조지훈 작사, 윤이상 작곡의 조합이 이루어낸 교가에 대해 저자는 교가로서 최고의 작품이라고 극찬한다. 당시 신진 작곡가였던 윤이상에게 작곡 의뢰한 당시 사람들의 안목도 대단하다고 할밖에.

 

장엄하고 아름다운 선율이 부르기 쉽고 오래 기억되기까지 하기에 학교의 많은 구성원이 집단으로 부르는 교가로선 최고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P.208, 고려대학교 교가의 문학성과 음악성)

 

건축학적 분석과 예찬으로 이어지는 <고려대학교 도서관과 나의 백석 연구>는 박동진 건축가가 설계한 도서관이 근대 건축의 뛰어난 작품임을 설명하고, 자신이 시인 백석을 연구함에 있어 도서관 소장 희귀 도서에서 큰 도움을 받아 성과를 올릴 수 있었음을 밝히고 있다. 백석 시집 원본을 찾기 위한 노력 등과 같은 연구 비화는 무척이나 흥미롭다.

 

저자는 사범대학장과 교육대학원장을 맡았는데, 그때 사범대 건물인 운초우선교육관 미화를 위해 애쓰던 활동과, 미당 서정주의 시 <동천>에서 영감을 얻어 조명등을 설치한 일을 마지막으로 기술한다. 이러한 모든 일들은 당시에는 다들 알고 있는 평범한 사실이지만 시간이 흘러 기억에서 사라지면 아무도 당시 일을 알지 못하게 된다. 기록의 중요성이 여기서 비롯된다.

 

이 책은 고려대 학생이었던 저자가 고려대 교수가 되어 평생을 바쳐온 고려대를 정년퇴임을 하면서 고려대에게 바친 헌서다. 어찌 보면 진부할 수 있고, 특정된 단편적 추억에 지나지 않다고 깎아내릴 수 있을 수 있다. 달리 보면 좁게는 고려대 일개 대학의 대학 생활의 잡사이면서 넓게는 국내 대학의 전반적 모습을 유추할 수 있는 개인과 대학, 나아가 사회 전반의 풍물 변천을 조망할 수 있는 통사로 이해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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