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버 트위스트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29
찰스 디킨스 지음, 유수아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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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에 읽은 책을 이제야 겨우 끄적거린다. 나태의 만연은 이토록 무섭다. 솔직히 찰스 디킨스를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 <크리스마스 캐럴>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여겼다. 무엇보다 그의 소설은 개개가 방대하다. 천 페이지를 넘기는 작품도 있으며, 당장 이 책만 해도 빽빽한 조판으로 6백 면을 넘긴다. 보통은 두 권으로 분책하는 게 일반적이다.

 

한 가난한 고아가 비참한 생활을 겪다가 마지막에 행복을 찾는다는 줄거리는 너무 진부하고 상투적이지 않은가. 도중에 다소간 행복을 찾으려다 작가의 변덕으로 이내 불행의 구렁텅이로 빠지길 여러 차례. 독자의 입장에서는 비상과 나락을 반복하는 흥미진진한 전개에 흠뻑 빠져들 수 있지만, 비현실적일 정도로 반복되는 올리버 트위스트의 불행에 차라리 황당함을 품기조차 할 수 있다.

 

내가 보기에는 그러한 범죄 공모자들의 고리를 실제 있는 그대로 그려내는 것, 즉 그들의 뒤틀린 모습과 비참함과 그들의 불결하고 궁핍한 생활상을 현실 그대로 보여주고, 한결같이 삶의 가장 더러운 길을 불안스럽게 숨어다니다가 마침내 저 거대하고 어둡고 끔찍한 교수대에서 생을 마감하게 될 전망을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매우 필요하고 또 사회에 이바지하는 시도라고 여겨졌다. 그래서 나는 그 일을 시도했고,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P.11, 저자 서문)

 

근묵자흑(近墨者黑)라는 성어처럼 사람은 환경에 큰 영향을 받는다. 올리버가 자신을 둘러싼 어둡고 비참한 환경에도 굴하지 않고 순수하고 선한 마음을 유지하였음은 참으로 감사하지만 실제적 가능성은 얼마나 그러할지 의문이 들 정도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은 것처럼 주인공의 비참과 비극의 정도가 심할수록 그의 순결함은 더욱 빛난다. 따라서 작가는 런던의 어두운 뒷골목 사회를 시종일관 집요하게 묘사한다. 그들은 음지의 사람들이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피카레스크 소설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페이긴, 사익스, 멍크스로 대변되는 악인- 범블 씨도 잊지 말자 -은 올리버의 앞날을 가로막는 인물이므로 그들의 말과 행동, 사건은 철저하게 악에 기울어져 있다.

 

올리버를 괴롭히는 존재가 단지 악인에만 있지 않다. 그가 고통을 겪고 뒷골목 생활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적 요인이 이를 부추기고 가능케 한다. 당대의 형편없는 구빈원 제도는 오히려 희극적이기에 한층 생생하다. 교육 제도, 산업 구조, 물질 만능주의 등 19세기 산업혁명과 자본주의 발흥으로 경제적 부가 축적되던 시기에 영국 서민의 삶이 어떠했을지 디킨스는 냉철하고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이 소설은 사회 고발 소설이기도 하다.

 

올리버는 말단 교구관의 지시에 따라 꾸벅 감사인사를 올린 다음, 서둘러 커다란 보호소 건물로 끌려가서 거칠고 딱딱한 침대 위에서 훌쩍거리다가 잠이 들었다. 이 축복 받은 나라의 자상한 법률에 따른 사례를 어디에서 이토록 고귀하게 보여줄 수 있겠는가! 가난한 자들에게 잠자리를 제공해주다니! (P.32)

 

이 광경을, 배 속에서는 고기와 술이 썩어나고 얼음 같은 피와 강철 같은 심장을 가진 철학자들이 좀 보았으면 싶다. 올리버 트위스트가 개도 거들떠보지 않을 진수성찬에 달라붙어 게걸스럽게 먹는 모습을 말이다. (P.59)

 

올리버가 악의 소굴에서 벗어나 빛의 삶으로 들어올 수 있게 된 계기는 브라운로와 메일리, 로스번의 덕택이다. 인간에 대한 선의를 절대로 포기하지 않은 그들의 인내와 용기는 올리버에게는 필수적이지만 비현실적일 정도로 지극하다. 그가 자신들과 아무런 관련성이 없는 일개 아이에게 관심을 쏟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작가가 그들의 활동을 상세하게 기술하는 까닭은? 그건 사회가 무너지지 않고 정상적으로 존속하기 위해서는 개인주의와 배금주의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겠는가. 중요한 건 어려울수록 더욱 드러나는 인본주의.

 

아가씨, 우리를 가엾게 생각해줘요. 가엾게도 우리에게는 여자로서의 감정 중에 단 하나만이 남아서, 위안과 행복이 아니라 폭력과 고통의 원천이 되어버렸거든요. (P.455)

 

세상 사람이 모두 양극단에 놓여 있는 건 아니다. 낸시를 보자. 일찍이 페이긴에게 붙잡혀서 어두운 삶을 살고 있지만 그녀는 올리버에게 동정적이다. 올리버를 타락시키려는 페이긴에게 낸시가 퍼붓는 대목은 인상적이다. 그녀로서는 이미 자신의 삶은 회복 불가능하지만 올리버만큼은 더러워지길 원치 않았던 것이다. 낸시와 로즈의 만남 장면은 구원을 거부하는 낸시의 비극적 운명을 예감하기에 처연하기조차 하다. 그녀는 작품 전체에서 가장 비극적인 삶을 살다간 인물이다.

 

! [......] 우리가 단 한순간이라도 상상 속에서 어떤 권력이나 자만심으로도 없앨 수 없는 망자들의 깊은 증언을 듣는다면, 과연 나날이 이어지는 우리 일상에 상처와 불의, 고통과 비참함, 잔인함과 잘못이 비집고 들어설 자리가 있으랴! (P.330)

 

이 소설은 문학사적으로 유명하지만 동시에 여러 비판을 받는 작품이다. 인물들의 변치 않는 전형성, 올리버와 로즈가 남매지간이라는 설정, 올리버의 일생에 대한 작가의 과도한 감정이입, 무엇보다도 우연의 반복 등. 하지만 온갖 고초에도 올리버가 선심을 유지하는 것, 당대 런던 하류 사회의 현실을 정확하게 드러내고 잘못된 제도를 고발하는 점이 높은 평가를 받는다. 게다가 가장 중요한, 작품 자체가 상당히 재밌다는 요소. 끝내 권선징악이 실현되는 대리만족도 빠뜨릴 수 없다.

 

어쩔 수 없이 디킨스에게 발을 담갔으니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천천히라도 그의 작품을 하나씩 펼쳐보련다. 아주 장기 프로젝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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