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1
치누아 아체베 지음, 조규형 옮김 / 민음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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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개국어로 출간되어 800만 부가 넘게 팔린 아프리카 문학의 고전’. 뒤표지에 쓰인 문구다. 이 작품을 계기로 그동안 외면받았던 아프리카 문학이 세계 무대에 진출하였으니 문학사적으로 매우 의미 있는 소설이다. 아프리카의 처지에서 아프리카인의 시각으로 아프리카를 이해하는 첫 시도다.

 

문학사적 의미와는 별개로 작품 자체에 대해서는 감상이 엇갈릴 수 있다고 본다. 전체적으로 보면 영국의 나이지리아 식민 통치에 대한 고발이라고 하겠는데, 침략 이전 우무오피아를 중심으로 한 토착 부족의 고유한 문화를 알리려는 목적도 분명히 강하다. 다시 말하면 서구 세력은 텅 빈 아프리카를 식민지로 삼은 것이 아니라 고유의 문화와 전통을 지닌 토착민들을 강압적으로 식민화하였음이다. 그런 관점에서 이 두 가지 대비되는 상황을 극적인 긴장감을 가지고 읽는 독자에게는 확 다가오지만, 아프리카 문화 또는 식민 체제 저항과 관련하여 관심이 덜하다면 그리 흥미롭지는 않을 수 있다.

 

3부 구성인데, 절반을 훌쩍 넘는 분량의 1부는 우무오피아의 인류학적 안내와 다름없다. 다른 지역 독자에게는 매우 생소한 그들만의 문화, 관습 및 종교, 운영 체제를 다채롭게 기술하고 있다. 종족 축제인 씨름 경기를 하는 날이라던지 재판 방식, 결혼식과 장례식 등이 이국적인 신기함을 안겨 준다. 작가는 몇몇 주요 용어는 굳이 영어로 번역하지 않고 원어 그대로 사용하고 있어 더욱 그러하다.

 

소설의 주인공은 오콩코로, 우무오피아에서 상당한 지위를 지닌 인물이다. 용맹과 재력을 바탕으로 마을의 최고 자리에 오르려는 욕망을 품고 있는 그는 작중에서 그리 호감 가는 성격은 아니다. 독자는 그에게 여러 단점을 쉽사리 찾을 수 있다. 전통 사회에서 치명적 약점인 남자답지 못하고 명예와 지위, 재산도 남기지 못한 아버지에 대한 극도의 반발심은 오콩코의 성격을 이룬 동력이다. 이런 요인들이 결합하여 과도한 폭력성과, 양아들과 다름없는 이케메푸나를 자기 손으로 죽이는 잔인성으로 표출한다.

 

그 두려움은 외적인 것이 아니라 내면의 것이었다. 그것은 스스로에 대한 두려움, 즉 그가 아버지를 닮은 것같이 보이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었다. (P.22)

 

토착 종족의 나름 전통 깊고 체계적인 문화에도 불구하고, 신의 명령이라고 해서 볼모 신분인 이케메푸나를 끝내 죽이는 의식이라든가 현저한 남녀 차별, 불가촉천민, 쌍둥이 유기, 조상신과 무당 등의 샤머니즘과 인습에 지나치게 얽매인 의례 등으로 일방적으로 긍정화하지 않고 사회적 한계가 분명함을 작가는 보여준다.

 

2부는 실수로 부족 사람을 죽인 징벌로 우무오피아를 떠나 외가 마을에서 생활하는 오콩코 일가를 그린다. 일순간의 행동으로 야심이 저지된 오콩코가 와신상담하면서 귀촌을 기다리는데, 새로운 변화의 물결이 음반타에 밀려오며, 장남인 은워예는 기독교에 입문한다. 여기서 기독교로 대변되는 새로운 서구문화와, 토착 종족의 전통 간 대립이 현저하게 드러난다. 은워예의 기독교 귀의는 자신들의 문화와 신앙이 이케메푸나를 죽인 것처럼 도저히 심정적으로 인정할 수 없기에 자발적 발현이라 할 때 이를 무조건 부정적으로 간주할 수 없다. 한편 오콩코의 작별 잔치에서 한 노인의 웅변처럼 새로운 종교가 부족의 전통과 가치, 친척 간의 유대를 급속도로 깨뜨리고 와해하는 현상 또한 바람직하다고만은 볼 수 없다.

 

그때 가슴속에서 뭔가가 무너졌다. 그의 아버지가 그날 밤 이케메푸나를 죽인 다음 들어왔을 때, 그것이, 그 느낌이 다시 그를 엄습해 왔다. (P.77)

 

3부에서 드디어 7년 만에 귀향한 오콩코는 백인 식민 체제가 안착하는 현실을 마주한다. 교회와 시장, 치안판사가 실질적 영향력을 미치는 상황. 오콩코는 다른 부족민들처럼 다소간 유연하게 바라보지 못한다. 전통에 충실한 남자답게 그는 서구 세력에 맞설 것을 주장하지만 대세는 이미 물 건너갔다. 마을의 우두머리들을 불러놓고 체포해버린 치안판사, 죄수처럼 그들의 머리카락을 깎아 버린 전령들, 몸값을 지불하고 겨우 풀려났음에도 보복을 대응하지 못하는 부족민들.

 

오콩코가 보기에 부족의 미래는 두 갈래 길에 놓였다. 서구의 식민 치하를 감내하고 종족의 전통을 서서히 포기하는 것과, 죽음을 각오하고 투쟁을 하는 것. 자신들에게 삭발의 치욕을 안겨준 전령 우두머리를 과감하게 처단하는 오콩코, 하지만 그는 이것이 마지막임을 알기에 자결하고 만다. 그가 의식적으로 행한 유일한 전통 위반 행동이다. 금기에 사로잡혀 나무에서 그의 시신을 끌어내기 꺼리는 부족민들의 모습과 대비로 작가는 끝맺는다.

 

오콩코를 부족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영웅이라고 간주할 수 있는 동시에 시대를 읽지 못하고 불가피한 변화를 거부하다가 몰락하고 마는 수구 반동의 인물로 바라볼 수 있다. 그의 개인적 흠을 확대하여 그의 판단과 선택을 옹호하지 않고 정당성을 거부하는 시각도 뭐라고 할 수 없다.

 

시대순으로 구성된 우무오피아와 아반티 마을의 변천과, 오콩코의 성공과 몰락은 하나의 서사시이자 연대기에 가깝다. 작가는 은연중 종족의 전통 상실과 서구 식민 지배에 대해 거부감을 갖지만, 나름 한편으로 쏠리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과거와 인습에 사로잡힌 토착 종족이 결국에는 세계사적 흐름을 거부할 수 없다는 것을 작가는 알고 있다. 그것은 오콩코와 같은 개인의 잘못도 아니며, 토착 종족과 서구 세력을 선과 악으로 단순화하여 옹호 또는 비판할 수 없음이다. 물론 후자의 잘못이 훨씬 크다는 것을 전제하지만.

 

치안판사가 그들에게 말했다. “우린 당신들이 행복할 수 있도록 당신들에게 평화로운 통치 체제를 가져왔습니다. [......] 우리는 법정을 세워 위대한 여왕님이 다스리시는 영국에서처럼 사건을 판결하고 정의를 구현합니다.” (P.227-228)

 

서구의 아프리카 식민 경험이 낳은 후폭풍은 지금까지 강력하게 남아 있다. 인위적 국경선 획정, 전통 문화와 체제의 와해, 자율이 아닌 타율성 의존 유발, 무엇보다 독재와 부패에 대한 무감각성. 오늘날 아프리카의 여러 어려움은 기후 문제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식민 유산으로 인한 폐해라고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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