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체리새우 : 비밀글입니다 - 제9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ㅣ 문학동네 청소년 42
황영미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1월
평점 :
“야! 그러다 왕따 되면 어쩌려고?”
“왕따? 왕따 되면 되는 거지. 난 왕따는 겁 안 나.” (P.114)
은따든 왕따든, 따를 겁내지 않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대개는 다수에서 따돌림당할까 소외당할까 두려워 어떻게든 발버둥 치며 무리에 끼려고 애쓴다. 내키지 않아도 웃고 떠들고 하고 싶지 않은 행동도 함께하면서 말이다. 하물며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 시절에는 어떻겠는가. 그런 면에서 은유는 성숙하고 대범하다. 아니 체념과 달관의 경지인가.
표제만 보고서는 왕따를 제재로 삼는 작품인 줄 짐작 못 했다. 다현의 생각과 행동은 친구들과 잘 지내기 위한 양보와 배려로 해석하였다. 다른 애들보다는 좀 정도가 더하지만. 친구들이 싫어할까 봐 특별한 감정이 없는 노은유와 말을 섞거나 어울리지 않으려고 무지 노력하는 다현. 친구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심부름도, 선물 공세도 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주변을 뱅뱅 돌며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그러면서도 스스로를 다독이며 위안하는 다현을 보면서 점점 이상하게 여기게 되었다.
온갖 이모티콘과 함께 문자를 보냈다. 답문은 없었다. 당연한 일인데 조금 서운했다. 뭐, 괜찮다. 어차피 마지막 문자는 늘 내 몫이니까. (P.19)
내가 하는 말은 아람이한테 잘 스며들지 않는다. 내 말은 탁구공처럼 튕겨져 나오고, 공중에서 부서진다. 그게 내 탓인지 아람이 탓인지 잘 모르겠다. (P.104)
일찍이 왕따를 겪은 다현으로서는 어떻게 어울리게 된 이 무리, 다섯 손가락을 결코 떠나고 싶지 않다. 그에게 소중한 친구들과 함께 있기 위해 영혼을 집에 두고 올 정도로 최선을 다하는, 때로는 비굴할 정도로 다현의 안간힘에 안쓰럽고 딱한 마음이다. 오죽했으면 그렇게 했을까.
한편 다현을 대하는 아람을 포함한 나머지 네 명에 대해서는 반감이 일어난다. 그들의 눈에 다현이는 어떤 존재로 비칠까. 어리숙하게 부려 먹고 심부름시키기 좋은 멤버. 필요할 땐 함께 하다가 결정적 순간에는 은근슬쩍 떼어놓아도 부담 없는 멤버. 우리는 다현에 대한 그들의 태도를 결정적으로 설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은유와 모둠이 되어 어쩔 수 없이 어울리게 된 것에 불만스러운 친구들은 다현을 은따시키고, 유독 다현에게 살가웠던 설아의 속내. 은따로 빌빌거리던 다현을 구제했다는 발언. 그런 다현이 자신들의 요구, 차라리 명령을 따르지 않은 괘씸함.
다현은 다섯 손가락으로 있을 때 갖지 못했던 마음의 평화와 자유로움을 동네신문 모둠 애들을 통해 느낀다. 은유, 시후, 해강. 그들은 상대에게 가식 없이 솔직하였고 이기적으로 계산하지 않는 순수함을 여전히 갖고 있다. 자신의 처지와 향후 진로에 대한 불안을 품으면서도.
세상을 향한 다현의 태도는 블로그를 통해 드러난다. 왕따가 되어 주변과 단절된 그가 유일하게 세상과 소통하는 공간, 체리새우. 그 속에서 다현은 이해타산적 태도를 버리고 온전히 자신에게 솔직하다. 다시금 다섯 손가락에서 따가 된 다현은 재차 블로그를 다잡는데, 과거와 다른 점은 한 뼘만큼 자란 마음의 키뿐만 아니라 그가 완전한 혼자가 아니라는 것. 그것이 체리새우 블로그를 비공개에서 공개로 전환한 용기를 주었으니, 구멍에 움츠려 숨지 않고 세상에 당당하게 고개를 들겠다는 전환이다.
친구는 동등한 관계여야 한다. 그런데 나는 자주 무시당했다. 지금 생각하니 내가 자초한 듯. 나는 친구를 잃을까 봐 늘 전전긍긍이었다. 선물 주는 버릇, 눈치 보기, 거절 못 하는 것. 스스로를 업신여기면 다른 사람들이 나를 존중하기 어렸다. 당당해지자! (P.170)
은유와 다현 엄마의 말처럼 사는 게 바람직하지만 현실은 쉽지 않다. 남들의 시선과 편견에 휘둘리지 않기, 이렇게 되려면 내 속이 꽉 차 있고 꼿꼿하게 서 있을 수 있어야 한다. 대다수는 그렇지 못하기에 쭈뼛거리면 사방을 둘러보고 무리가 있는 쪽으로 뛰어가 안도의 숨을 돌리는 게 아니겠는가. 비로소 외톨이를 모면했으며, 무리에 어울리게 되었다면서 말이다.
다현의 새로운 날이 뜻깊게 시작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모두가 똑같겠지만, 나아간다면 은유에게 더욱 관심을 보일 수 있으면 좋겠다. 제 나이에 비해서 너무 커버린 그가 다현이와 상생의 관계를 통해 다시 되돌릴 길 없는 학창 시절을 보낼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