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스트, 1665년 런던을 휩쓸다
다니엘 디포 지음, 정명진 옮김 / 부글북스 / 2020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국내에 몇 권의 번역본이 나와 있다. 표제는 각각 <전염병 일지>, <전염병 연대기>인데, 원제를 염두에 둔다면, 오히려 그쪽이 직역에 가깝지만 건조함은 피할 수 없다. 이 책은 책 내용을 쉽게 유추할 수 있도록 의역하는 방식을 택하였다. 이 번역본이 출간된 해는 한창 코로나19가 극성을 부리기 시작하던 시기다. 우연의 일치인지 당초 기획 의도인지 모르겠지만, 책 내용을 보면 자연스레 코로나19 시절을 떠올리게 됨은 우리에게 페스트만큼 온 사회에 유사한 충격을 안겨준 경험이 그것 뿐이기에 그러할 것이다.

 

이 작품을 소설로 보고 싶지 않다. 그러기에는 작가의 창작과 허구는 별로 드러나지 않는다. 차라리 수기(手記)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 작품의 맨 끝에 작중 화자는 스스로를 H. F.로 밝히는데, 연대 상으로 봐도 디포 자신보다는 그의 삼촌이 남긴 기록을 바탕으로 디포가 정리했다고 보는 게 맞으리라.

 

왜 하필 디포는 발표 시점에서 60년 가까이 오래된 옛 사건을 기억에서 끄집어냈을까. 작중 화자는 자신의 기록이 훗날 유사한 상황에서 교훈과 참고 역할을 하기를 기대하고 있지만, 1665년 이후 영국에서 페스트의 창궐은 더는 없기에 당대 유사한 상황은 재연될 수 없었기에 그것만 가지고는 불충분하다.

 

코로나19도 팬데믹을 유발했지만, 치명적인 정도에서 보자면 페스트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이 책에서 기록된 내용을 글자 그대로 신뢰한다면 그야말로 속수무책이고, 생과 사는 오로지 운명에 따를 뿐이다. 게다가 증세 발현 후 곧바로 쓰러져 사망하는 예도 비일비재하다니 원인도 모르고, 백신도 치료약도 없는 상황에서 끔찍한 재난일 수밖에 없다.

 

그 어떤 것도 먹히지 않았다. 전염병은 더욱 기승을 부렸고, 사람들은 이제 경악하며 공포에 떨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을 포기했으며,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절망 속으로 깊이 빠져들었다. (P.265)

 

평화로운 시기에 대다수 사람은 선량하고, 도덕과 체면을 중시한다. 사회는 선량한 개인들이 모여서 윤리와 법질서에 순응하며 개인 못지않게 사회 전체도 고려하는 이상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이것이 튼튼한 기초에 기반한 것인지 여부는 극한상황에 맞닥뜨리면 확인할 수 있다. 바로 페스트의 압도적 창궐 같은 재난 상황 말이다.

 

그토록 이성적이던 사람들은 삽시간에 비이성과 광기에 휩쓸려 어찌할 바를 모르고 갈팡질팡하며, 나의 생존을 위해 타인의 생명과 재산을 서슴없이 노린다. 대의를 보자면 자신과 가족이 페스트에 걸렸다면 곧바로 당국에 신고하고 조치에 따라야 하겠지만, 인간이란 어떻게든 현실을 부정하게 마련이고, 당장의 수치와 봉쇄를 피하려고 온갖 애를 쓴다. 그것이 장차 어떤 파장을 불러올지라도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않게 마련이다.

 

혹심한 시기에는 하룻밤에도 수백 명씩 시체가 되어버리는 상황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기대하긴 어렵다. 평시라면 가족과 친지들의 애도 속에 정중하게 치러졌을 고인의 시신은 이제 수레에 어지러이 쌓여 커다란 구덩이에 아무렇게나 쏟아져 매장되는 실정이다. 코로나19 극성기에 외신을 통해 이런 사례를 우리도 목도하지 않았던가.

 

그런 면에서 작가는 극한상황에 처한 개인과 사회가 어떻게든 사태를 모면하고 관리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다. 방황과 좌절과 일탈을 하는 군상과 대비하여, 생사의 위기 속에서도 자신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는 치안 판사를 비롯한 관리와 경찰, 의사들의 모습을 작가는 과장 없이, 비록 그들의 최대한도의 헌신에도 불구하고 페스트의 파도를 잠재울 수는 없었다 하더라도 그들의 고군분투가 없었다면 런던은 페스트의 직접 피해가 아닌 다른 요인에 의해 진작 무너졌을 것임을 보여준다. 어쩌면 작가가 이 작품을 통해 드러내고 알려주고 싶었던 게 이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페스트의 감쇠와 함께 사람들은 기쁨에 겨워 그네들의 역할과 노력을 쉽게 망각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사그라들자 일선에서 침식을 잊고 과로에 허덕이면서도 확산과 치료에 헌신했던 보건당국을 우리네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화자는 모두가 좀 더 신중하고 분별 있으며 적절한 조치와 대비를 하였더라면 페스트의 대발발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한다. 별도 성과 없는 가택 봉쇄 조치로 오히려 사람들의 두려움을 촉발하고 질병의 전파를 유도하였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잠시 페스트가 수그러들자 섣불리 축배를 들다가 고난의 시기를 잘 견디었던 수많은 시민이 목숨을 잃게 된 성급함에 탄식한다. 이 모든 것들은 차라리 만시지탄이다. 어떤 사회라도 팬데믹에 원활하게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사전에 완비하는 건 불가능하다. 1665년의 가택 봉쇄는 화자의 질타를 받았지만 2020년의 자가 격리는 불가피한 조치로 인정받았다.

 

사람들이 절망에 빠져 낙담하고 있을 때, 그러니까 런던이 너무나 비참한 상황에 처해 있던 바로 그때, 신이 은총을 베풀었다. 말하자면, 신이 손을 뻗어 그 무시무시한 적을 무장해제 시켰다는 뜻이다. (P.369)

 

페스트의 쇠잔은 인간의 노력에 의한 게 아니다. 절정의 시기에 화자를 포함한 누구도 자신은 역병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하지 못하였다. 당시의 절망감과 공포감은 이루 형언할 수 없을 것이다. 화자는 여기서 신의 은총을 언급한다. 신의 징벌로 간주되었던 전염병에서 다시금 은총을 찾다니 모순되지만 그만큼 이성의 경계를 뛰어넘는 현상으로 생각되었을 것이다. 화자의 견해처럼 페스트가 북서쪽에서 동남쪽으로 단계별로 점진적으로 진행하지 않고, 일시에 런던 전역에서 발발했다면 과연 사람들이 숨 쉴 여지가 있었을까.

 

읽기 전에 일지 또는 연대기라고 해서 단순한 사실의 나열로 지루할 것이라고 예견하여 망설였는데, 과거와 현재의 대비로 그리고 화자의 관찰과 전언 내용으로 독서 자체는 무척 흥미로웠다. 특히 세 남자 이야기’(P.194-232)는 전염병을 피해 런던 근교를 방랑하는 사람들의 자취를 따라 당시의 사회 풍속과 사람들의 대응 양식을 사실적으로 들여다보게 해준다.

 

코로나19 시기에 만약 이 책을 읽었다면 대단한 동질감과 연대감을 느끼게 해주었을 테지만, 지금 읽더라도 페스트가 불러일으킨 어마어마한 파장은 역시 잊기 어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