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여 잘 있어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9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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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표제도 그렇고, 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남자 주인공이 전투에서 부상을 당하였다든지 자발적으로 탈영하였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이 작품은 반전 소설이다. 전쟁을 반대하고 무의미성을 토로하는 문장이 작중 인물에 의해 반복적으로 표출되는 점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반전 테마가 이 작품의 주제라고 보기도 모호하다.

 

소설 전체를 이끌어가는 서사적 힘은 누가 뭐래도 남녀 주인공 프레더릭과 캐서린의 사랑이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전장에서 가장 긴요하고 절박한 것은 차라리 사랑이 아니겠는가. 가벼운 장난삼아 시작했던 두 사람의 만남은 서서히 진지하게 변하고 불현듯 떨어질 수 없는 사랑으로 자리 잡는다.

 

미국인과 스코틀랜드인이 이탈리아에서 전쟁에 참여한다는 설정은 작가 자신의 체험에서 비롯된 것이니만치 소설 상의 설정이라고 치부하기 곤란하다. 프레더릭이 이탈리아군으로 참전한 까닭은 작중에서 밝혀지지 않지만, 그가 만사에 심드렁한 태도를 보이는 점은 확실히 알 수 있다. 그것은 사랑에 대한 태도에서도 마찬가지다.

 

군종신부와의 대화에서 단호하게 사랑에 무관심함을 드러냈던 프레더릭. 그의 생각은 캐서린과의 관계 진전에 따라 사랑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로 자리매김함을 볼 수 있다. 사랑은 생명과 상통한다. 죽음과 직결되는 전쟁과 상극이다. 사랑과 전쟁, 생명과 죽음이 작중에서 팽팽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고 볼 때 반전사상을 표면에 내세우지 않았기에 오히려 더욱 반전에 대한 독자의 공감대를 형성한다.

 

나는 이미 그 일에서 손을 뗐다. 나는 그들 모두에게 행운을 빌었다. (P.361)

 

전쟁에 대해서는 잊을 작정이었다. 나는 단독 강화조약을 맺은 것이다. (P.376)

 

프레더릭은 원래 이 전쟁에 무심하다. 3국 출신이니만치 그에게 있어 전쟁의 대의명분은 전혀 다가오지 않는다. 그게 본디 프레더릭의 성향인지 아니면 이 전쟁의 공허함을 일찌감치 깨달아서인지 알 수 없으나 그가 명분과 이상보다는 현실과 실질을 더 중시하는 것만은 분명함을 알 수 있다. 오죽하면 승전과 패전 전망보다 수면을 더 믿는다고 할 정도다.

 

신성이니 영광이니 희생이니 하는 공허한 표현을 들으면 언제나 당혹스러웠다. 이따금 우리는 고함 소리만 겨우 들릴 뿐 목소리도 잘 들리지 않는 빗속에서 그런 말을 들었다. 또 오랫동안 다른 포고문 위에 붙여 놓은 포고문에서도 그런 문구를 읽었다. 그러나 나는 신성한 것을 실제로 본 적이 한 번도 없으며, 영광스럽다고 부르는 것에서도 조금도 영광스러움을 느낄 수 없었다. (P.290)

 

프레더릭의 전선 이탈은 그런 공허함의 극치를 퇴각하는 장교를 총살하는 이탈리아 헌병과 맞닥뜨리면서 발생한다. 실제 전투를 치러보지도 않은 자들이 이탈리아군은 결코 후퇴하지 않는다면서 즉결 처단을 하는 참담하고 어처구니없는 상황. 그는 깨끗이 손을 떼버린다.

 

프레더릭은 몰라도 캐서린에게 그는 운명적인 사람이다. 첫 만남 이후 그녀는 프레더릭에게 급속도로 빠져든다. 장난삼듯 가벼운 태도의 그와 달리 그녀는 곧바로 그에게 사랑의 감정을 표현한다. 사실 소설 전체적으로 프레더릭을 향한 캐서린의 사랑은 순종적이고 헌신적인 동시에 지고지순하다. 그녀는 프레더릭과의 사랑에 행복을 느끼고 자신의 것은 요구하지 않는다. 두 사람의 사랑은 지극한 합일에 이른다. 더 무엇을 바랄 것인가.

 

호사다마라고 하지 않는가. 죽음을 무릅쓰고 국경을 넘어가 스위스에서 호젓하지만 단란한 생활을 즐기던 그들. 사랑의 축복이라고 할 출산은 삽시간에 오히려 사랑의 비극으로 이어진다. 이 대목에서 프레더릭은 삶의 의미와 죽음의 필연성을 절실하게 깨닫는다. 그것은 곧 그가 인생의 무게를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미처 알지 못하였고 실감하지 못하였던 그것. 작가는 작품의 서두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반복해서 독자에게 이를 상기시킨다.

 

[군종신부]는 내가 모르는 것, 일단 배워도 늘 잊어버리는 것을 언제나 알고 있었다. 나는 나중에 그것을 깨달았지만 그때는 그것을 알지 못했다. (P.28)

 

인간이라면 언제나 생리적으로 덫에 걸려 있다는 느낌이 들지.” (P.221)

 

인간은 죽는다.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어. 그것에 대해 배울 시간이 없었던 거야. 경기장에 던져 놓은 뒤 몇 가지 규칙을 알려 주고는 베이스를 벗어나는 순간 공을 던져 잡아 버리거든. 아이모처럼 아무 까닭 없이 죽이거나, 또는 리날디처럼 매독에 걸리게 하지. 하지만 결국에는 모두 죽이고 말지. 그것만은 분명해. 결국 살아남는다 해도 종국에는 죽임을 당하는 거야. (P.496)

 

작가에게, 프레더릭에게 그동안 전쟁과 죽음은 추상적이고 비개인적이며 머나먼 현상에 불과하였다. 두 사람의 도망병을 향한 사격, 아이모의 허무한 죽음 목도. 그리고 캐서린과의 사랑, 미래에 대한 희망, 갑작스러운 사별 등 일련의 체험을 통해 프레더릭은 전쟁과 죽음에 대한 추상적 의미의 인식에서 벗어나 보다 직접적이고 구체적 의미를 발견한다. 이처럼 개인적 깨달음에서 사회적 의미 발견에 도달함으로써 이 작품은 가장 뛰어난 반전문학이 된 것이다.

 

간호사들을 내보내고 문을 닫고 전등을 꺼도 소용이 없었다. 마치 조상(彫像)에게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는 것 같았다. 잠시 뒤 나는 병실 밖으로 나와 병원을 뒤로 한 채 비를 맞으며 호텔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P.503)

 

소설의 마지막 단락은 쓸쓸한 동시에 차라리 덤덤하다. 사랑하는 이와 영원한 작별을 고하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마는 현실로 다가오면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제아무리 소리높여 통곡할지언정 떠나간 이가 다시 돌아올 리 없다. 인간은 필멸의 존재가 아니던가. 땅바닥에 주저앉아 울부짖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프레더릭의 마음 깊숙이 캐서린과의 사랑이 커다랗게 차지하고 있음을 독자는 모르지 않는다. 슬픔을 곱씹을지언정 슬픔에 익사할 수 없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남은 사람은 어쨌든 현실을 살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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