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이스 닌의 <헨리와 준>을 읽은 후 다른 책을 읽어보려고 알아보았더니 도서관에서 이 책을 빌릴 수 있었다. 알라딘에서는 도서 정보를 찾아볼 수 없고, 다른 곳에서도 몇군데 이런 책이 출간되었다 정도만 확인 가능하다. 이 책은 아나이스 닌의 에로티카 작품집으로서 번역본은 1989년에 간행되었다. 그녀의 에로티카 소설은 1940년대에 쓰인 작품인데 이 책에는 모두 9편의 단편과 중편이 수록되어 있다.
: 기숙학교, 삐에르란 남자, 마리안느, 말로르카, 모래언덕의 여자, 두 자매, 항가리 모험, 마띨드(이상 단편), 엘레나(중편)
아나이스 닌의 에로티카 작품집은 1977년 <비너스의 델타>, 1979년 <작은 새>로 출판되었다. 이 책의 작품 중 ‘모래언덕의 여자’와 ‘두 자매’는 <작은 새>에, 나머지 작품은 <비너스의 델타>에 수록되었으니 일종의 편집본임을 알 수 있다.
이 책과 관련하여 여러 국내 출판 기록이 있다. 옮긴이와 출판사를 통해 판단컨대, 모두 같은 내용을 담고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모두 절판 상태다.
삐에르란 남자 – 김수경 옮김, 열음사 (1989)
에로티카 1 : 마틸드 – 김수경 옮김, 열음사 (1996)
에로티카 2 : 엘레나 - 김수경 옮김, 열음사 (1996)
작은 새 – 김수경 옮김, 열음사 (1997)
<델타 오브 비너스>(정승우/버팀목)라는 표제로 1995년에 출간한 번역본도 있는데, 옮긴이와 출판사가 상이하므로 이 책과는 다른 종류로 생각되는데, 수록 내용은 확인할 수 없다.
책 내용보다는 책 자체에 얽힌 이야기만 주절주절 늘어놓고 있지만, 사실은 이게 핵심이다. 이 책들은 출판 당시에 모두 외설 시비가 있었고, 모두 절판된 이후 발행 기록이 없다. 이 작품집에 실린 에로티카 소설들이 2000년대 이전에는 사회적으로 수용되기 어려웠다는 점이다. 만약 현시점에 제대로 된 번역과 장정으로 다시 나온다면 평가는 달라질 수 있겠지만.
나를 문학적 매춘가의 마담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다. 어떤 수집가에게 팔기 위하여 에로티카를 쓰게 된 배고픈 작가들의 마담이라고 말이다. (P.51, ‘마리안느’)
‘마리안느’의 서두다. 소설 속 문장이지만, 이들 작품을 쓰게 된 까닭을 진솔하게 토로한 것이다. 가난과 굶주림을 모면하기 위해 싼값에 에로틱한 이야기들을 써 재꼈다는 것이다. 여기 이야기들이 다루는 성관계의 제재와 방식은 대단히 폭넓다. 남성 동성애, 여성 동성애, 시간(屍姦), 근친상간, 사디즘, 강간, 윤간(輪姦) 등 온갖 관계가 등장한다. 물속에서, 야외에서, 군중 속에서, 아편을 피우며, 자매의 남자를 가로채기도 하는 등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어서 때로는 역겨울 정도다.
이 소설들을 에로티카라고 부르는데, 포르노 소설 또는 우리말의 야설과는 유사하면서도 결이 다르다. 모두가 섹스를 중점적으로 다루지만 에로티카는 노골적이고 적나라하게 묘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아마 당대의 기준에서는 똑같게 보일 수 있지만 지금 우리의 눈에는 그렇다는 것이다. 이름을 어찌 부르든 간에 충족될 수 없는 성적 환상과 몽상을 글을 통해 누리려는 행위라는 점에서 공통성을 지닌다. 현실 세계에서 소설 속 내용처럼 실행하려다가는 엄청난 파장을 일으킬 것이다.
이 살의 따뜻한 접촉은 그녀에게 인간의 구원을, 그리고 위안을 주는 것이었다. 그녀의 엉덩이 사이에서 전율하는 이 페니스야말로 죽음이 지나가는 이 순간에 부여잡아야 할 생명, 바로 그 생명이었으며 꽉 잡고 매달릴 훌륭한 삶이었던 것이다. (P.84, ‘모래 언덕의 여자’)
성(性)은 인간 존재의 핵심적 요소다. 위 인용문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섹스는 곧 생명이다. 생명체로서 인간은 다른 생물과 마찬가지로 본능이든 유전자의 힘이든 종족 번식을 하고자 한다. 양성생식을 하는 인간은 수컷과 암컷의 합체가 필수적이다. 성적 결합이 고통스러우면 아무래도 결합 자체를 꺼리기 마련이므로 섹스는 쾌락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다른 생물과는 달리 인간은 번식을 위한 발정기가 따로 없으니, 성을 탐닉하는 사람이라면 어찌 보면 연중 내내 발정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체 주제를 섹스에 둔다는 것은 마치 매춘부의 삶과도 같아서 그 매춘부가 오히려 섹스로부터 소외당하고 마는 이상한 행위로 끝나게 된다 작가들은 아마 이 사실을 알았나보다. (P.221, ‘작가의 말’)
여기 이야기들은 인간이 섹스 자체에 함몰되었을 경우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극단적 사례이며, 자체로서 반면교사가 되기도 한다. 누구나 성적 환상에 젖어 들 수 있고 그걸 나쁘다고 평하기 어렵다. 인생에서 유일하게 가치 있는 것이 섹스라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인생의 수많은 소중한 것들을 놓치는 우를 범하게 된다.
많은 페이지 속에서 나는 즉각적으로 여성의 언어를 사용하였고 여성의 관점으
로 성적 경험을 보고 있었다. 나는 결국 이 에로티카를 출판하기로 결심하였다. 왜냐하면 이것이 남성의식의 세계에서 한 여자가 최초로 기울인 노력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P.224, ‘작가의 말’)
오늘날 아나이스 닌의 작품이 재평가받는 가장 큰 이유는 성 담론의 개방성과 함께 페미니즘 관점의 부각이 크다. 남성에 의한 성관계와 기술이 아니라 여성의 주체적 성 인식을 보여준다는 측면에서다.
유일한 중편인 ‘엘레나’는 전체 작품 중 분량 면에서는 물론 내용 면에서도 특기할 만하다. 한 지적인 여성이 에로티시즘에 매혹되어 남성과의 관계든, 여성과의 관계든 전신으로 탐닉하는 모습을 아름다우면서도 관능적으로 다루고 있다. 날마다 섹스 자체만 생각하고 그것에 매진하는 인물의 삶의 모습은 분명 과장되었다. 높은 지성과 섹스의 탐닉은 별개의 차원이라는 것도 엘레나와 작가 자신의 글을 통해서 깨달을 수 있다. 어쨌거나 섹스 자체는 사랑과 결합하였을 때 진실로 아름다운 행위라는 점을 이 중편은 다시금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