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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타의 유대인 ㅣ 지만지 희곡선집
크리스토퍼 말로 지음, 이희원 옮김 / 지만지드라마 / 2019년 8월
평점 :
서막에 난데없이 마키아벨리가 등장해서 놀랐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출판된 지 50년 정도 지났을까 대중을 상대로 하는 연극 무대에서 거리낌 없이 그가 등장한다니 새삼 마키아벨리즘의 전파력이 대단하다.
이 작품은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과 어쩔 수 없이 비교된다. 유대인 상인, 그들의 탐욕과 파멸, 기독교인의 유대인 박해 등에서 여러 공통점을 지닌다. 셰익스피어가 말로에게서 영향을 받았음을 인정해야 하리라.
돈을 위해서라면 딸도 죽일 수 있는 탐욕의 화신 바라바스는 무한한 정복욕의 소유자 탬벌레인이나 무한한 지식을 추구하는 파우스터스와 같은 말로의 다른 비극적 주인공들과 함께 인간적인 욕망을 극한으로 추구하다가 파멸을 맞이하는 새로운 비극적 인물이며, 르네상스적 인간의 전형이다. (P.208-209)
몰타의 유대인 바라바스를 해석하는 관점이 여럿 있다. 통상적으로 그를 물욕의 화신으로 르네상스적 비극의 전형으로 이해한다. 이 책의 작품해설도 이러한 시각에서 바라본다. 여기서 바라바스의 파행을 단순히 재물을 향한 탐욕으로 평가해야 하는지 의구심이 있다. 몰타 총독의 재산 몰수 행위를 전후한 그는 전혀 다른 인물이다. 이후의 그는 철저한 복수에 모든 관심과 역량을 기울인다.
(마키아벨리) 내가 간절히 바라는 것은 이것뿐, 즉 그 유대인에게 / 합당한 호의를 베풀어 달라는 것뿐이다. / 그리고 그가 나를 지지한다는 이유로 / 더 나쁜 대우를 받지 않게 해 주시길. (P.8, 서막)
마키아벨리의 변호를 의례적이라고 치부하고 싶지 않다. 바라바스는 몰타에서 성실한 상인으로 무역을 통해 많은 부를 모았다. 적어도 그에게 고리대금업은 주된 사업이 아니다. 그런 그를 벼랑으로 밀어낸 것은 몰타 총독 페르네즈다. 터키인에게 바치는 공물을 무조건 유대인에게서 그것도 재산의 절반을 빼앗는 만행에 기독교인은 아무런 반대가 없다. 그들의 눈에 유대인은 예수를 죽음으로 몰아놓은 최초의 저주를 받은 족속일 뿐이다. 바라바스의 항변은 이런 대답으로 돌아온다.
(페르네즈) 진정하라, 바라바스. 너에게 정의가 행해진 것뿐이다.
(바라바스) 각하의 지나친 정의가 제게 지나치게 부당한 일을 저질렀습니다. (P.35, 1막 2장)
역지사지라고 바라바스 같은 억울하고 부당한 처지- 총독의 결정에 항의하였다고 전 재산을 빼앗긴다 -에 놓이면 누군들 복수를 맹세하지 않겠는가. 이런 그에게 도덕과 윤리를 고려하고 수단 방법의 정당성을 요구한다면 가당키나 하겠는가. 착한 아비게일조차 아버지의 복수 행위는 정당하다고 생각할 정도이다. 그의 행위를 판단하는 데 여기에 인종 차별과 종교 갈등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이렇게 그는 스스로 악당으로 변모한다.
이 희곡에는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가 모두 등장한다. 다만 신도이든 종교인이든 올바른 신앙을 지닌 인물은 찾기 어렵다. 기독교인은 유대인을 박해하고 탄압하는 걸 정당하게 여긴다. 유대교인 바라바스와 이슬람교인 이타모아는 악인을 자처한다. 자코모 수사와 베르나딘 수사는 바라바스의 재산을 노리고 서로 다투는 치졸함을 보인다. 바라바스가 아비게일을 죽인 행위는 흔히 비난받기 쉽지만, 처자식보다 종교와 가문을 더 우위에 두는 사례를 봉건시대에서는 생각보다 자주 볼 수 있다. 그로서는 도저히 배교와 배신한 아비게일을 용납할 수 없다.
(바라바스) (아비게일에게 방백) 기독교인을 속이는 것은 죄가 아니란다. / 그들 자신이 속임수를 신념으로 삼고 있는데다가, / 이단자들과의 약속은 지키지 않아도 되니까 말이다. (P.90-91, 2막 3장)
어딘가 익숙한 대사가 아닌가. 바로 <탬벌레인 대왕 제2부>에서 헝가리 왕이 신 앞에서의 맹세를 어기고 나톨리아의 왕의 배후를 공격하는 논리도 위와 유사하다. 이처럼 부도덕하다는 점에서 모든 종교가 동일하다.
(페르네즈) 저주받은 바라바스, 천한 바라바스, 내가 / 너나 너의 불행에 측은함을 느껴야 하느냐? / 아니, 나는 이렇게 너의 반역의 대가를 지켜볼 것이다. / 넌 그런 짓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P.200, 5막 5장)
이 작품의 주요 등장인물은 하나같이 모두 죽음을 맞이한다. 주인공인 바라바스는 물론이고 딸 아비게일, 로도윅과 마티아스, 두 명의 수사, 이타모어, 벨라미라와 필리아-보르자가 비참하게 목숨을 잃는다. 수녀원의 수녀들, 많은 터키 병사들도 몽땅 죽는다. 유일하게 생존하는 인물이 몰타 총독 페르네즈다. 그의 생명 부지는 천행인데, 단지 그가 바라바스 못지않은, 차라리 그보다 더 간교한 인물인 탓이다. 그는 자만심에 빠진 바라바스의 뒤통수를 친다. 결국 생사와 성패는 선악이 아니라 언제든 타인을 배신할 수 있는 교활함의 미덕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말로는 오직 바라바스만 비판의 대상으로 삼지 않고 작품 속 모든 인물을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이 극의 대다수 인물들은 계급, 인종, 종교와 관계없이 마키아벨리즘을 자신들의 삶의 방식으로 채택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말로는 탐욕적인 인간들의 위선을 가차 없이 풍자한다. (P.208, 작품해설)
작품의 대단원은 생뚱맞다. 몰타 총독은 터키 왕자 칼리마스를 포로로 잡고 선언한다. 터키가 다시 쳐들어와도 당당하게 맞서 물리치겠다고. 전반부의 굴종적 자세와는 천양지차다. 실제로 몰타를 방어한 기독교 세계의 자신감을 반영하는 장면이리라.
(페르네즈) 온 세계가 당신을 구하러 오겠다면 오라 하시오. 우린 우리를 지켜 낼 테니. / 몰타를 정복해 우리를 위험에 빠트리는 것보다 / 바닷물을 마셔 마르게 하는 것이 더 빠를 것이오. (P.203, 5막 5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