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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스 박사의 비극 ㅣ 영국 르네상스 극문학선 9
크리스토퍼 말로 지음, 이성일 옮김 / 소명출판 / 2015년 6월
평점 :
품절
괴테의 <파우스트>가 원체 유명하다 보니 그의 순전한 창작이라고 오해하기 쉽지만, 엄연히 독일의 민간 설화가 원전이다. 문학 작품화로 따지면 말로의 이 작품이 괴테를 2백 년이나 앞선다. 괴테도 분명 이 작품의 존재를 알았고 의식했을 것이다. 둘 다 시곡 형태를 취한다. 괴테의 작품을 먼저 읽은 독자가 이 희곡을 접하면 성근 느낌을 갖는데, 그만큼 괴테가 설화를 정교하고 치밀하게 엮고 확대하였음이며 오히려 이 작품이 원전에 가까운 고졸한 맛이 있다.
줄거리는 대동소이하다. 지식의 극한을 추구한 포스터스 박사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영역을 추구하고자 한다. 인력으로 불가능한 일이기에 악마와 거래를 하는데, 자신의 영혼을 대가로 신의 권능을 획득하려는 것. 이후 온갖 모험 후에 그의 영혼은 지옥으로 떨어진다.
희곡 전반을 흐르는 기조는 지극히 기독교적이다. 인간으로서 한계를 받아들이지 않고 악마에게 영혼을 파는 행위는 신과 기독교 관점에서 용서받을 수 없는 행위다. 작품 내내 ‘선한 정령’과 ‘악한 정령’이 등장하여 포스터스의 행동과 결정에 대해서 촌평과 조언을 하는데 물론 그는 이를 알 수 없다. 외적인 존재로 보자면 천사와 악마일 것이고, 내적인 존재로 치면 양심, 도덕 vs 비양심, 비도덕이라고 하겠다.
(선한 정령) 정다운 포스터스, 천국과 천상의 것들을 생각하게.
(악한 정령) 아니야, 포스터스, 영예와 부를 생각해. (P.44, 5장)
말로는 루시퍼와의 거래 후 포스터스의 행적을 좇는다. 누가 우주를 창조했는가를 묻거나 세상과 만물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명성을 누리기도 하지만, 벨제버브의 ‘일곱 가지 죄악’을 보고, 교황의 따귀를 때리거나 말 장수를 저급한 마법으로 속이는 등 온당치 않은 행동도 자행한다. 무엇보다 트로이의 헬렌을 욕망하여 그녀, 실은 그녀로 분한 마녀와 동침하는 죄악을 범한다. 이로써 포스터는 되돌릴 길 없는 타락의 길 끝에 다다른다.
(노인) 아, 저주받은 포스터스, 비참한 것, / 네 영혼으로부터 하늘의 은총을 몰아내고, / 하느님의 심판 자리의 왕좌를 피하는구나! (P.110, 13장)
이쯤에서 상기해야 할 대목은 포스터스와 악마 간 계약은 누구의 강요도 없는 자발적 행위였다는 점이다. 메피스토필리스를 불러내서 루시퍼와 영혼 거래 계약을 제안한 건 어디까지나 포스터스이다. 선한 정령의 속삭임 또는 양심의 발로에 의해서든 포스터스는 신에게 과오를 빌고 회개의 길로 돌아올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를 선택하지 않는다.
(포스터스) 아, 포스터스, 너는 무엇이란 말이냐? / 결국에는 죽을 운명인 인간일밖에- / 네 운명의 순간이 시시각각 다가오고, / 절망은 내 상념을 불신으로 채우는구나. (P.94, 11장)
참회하면 용서받을 줄 알지만 결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을 포스터스 자신도, 악한 정령도 모두 알고 있다. 그것을 포스터스의 무지와 교만이라고 칭해도 좋다. 따라서 그의 지옥행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그 자신에게 있음이다. 그가 메피스토필리스를 탓하는 건 온당치 못하다. 마지막 순간에 후회와 갈등으로 번민하는 포스터스를 메피스토필리스가 악마의 권세로 위협하자 그는 즉시 사죄하고 악마에게 충성을 다짐한다. 이 장면만 보더라도 그에게 신과 악마의 권능 격차는 명확하다.
파우스트 설화는 성경의 에덴동산 이야기와 유사성을 지닌다. 지극히 순수하고 깨끗한 존재인 아담과 이브를 타락시킨 뱀의 유혹은 인간에게 내재한 악의 속성에 다름없다. 선악과는 영어로는 지식 나무의 열매라고 하니 그 열매를 먹으면 선악을 판단할 수 있고 모든 지식을 깨우칠 수 있다고 한다. 사람이 전지적 존재가 되면 신은 설 자리가 없게 된다. 그렇다면 세상 모든 지식을 추구하는 파우스트는 독일 민간 버전 화한 에덴동산 전설이다.
(포스터스) 정령들로 하여금 내가 원하는 것을 가져오게 만들고, / 아리송한 의문에 대해 속 시원히 대답해 주도록 하고, / 내가 바라는 기막힌 위업을 이룩하도록 할 것인가? (P.20, 1장)
말로가 포스터스 박사의 비극을 극화한 배경은 무엇일까. 우선적으로 기독교적 가치관에 근거하여 르네상스 정신이 가져온 인간 중심 관점은 파국으로 끝날 수밖에 없음에 대한 경고로 독해할 수 있다. 또는 인간의 본성 자체는 제아무리 신이 가로막고 지옥에 떨어질지라도 앎에의 욕구를 막을 수 없음을 형상화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포스터스는 종교적 양심과 구원 상실에 대한 두려움에도 자신이 선택한 길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 그 길이 비록 일신의 비극과 사회적 매장으로 이어질지라도 우주와 세상을 알고자 하는 욕망을 억누를 수 없다. 이렇게 볼 때 르네상스 정신이 지향하는 인간 본위 사고의 근간을 다루는 동시에 나아가 먼 훗날 무한한 지식욕이 가져오는 현대 사회의 윤리적 문제점마저 예지한다고 볼 수 있다.
프롤로그와 15개의 장, 그리고 에필로그로 구성된 작품이다. 주제 자체가 워낙 무겁다 보니 작가는 4장과 8장에 가벼운 소극(笑劇)을 삽입하고 있다. 분위기 전환 목적과 함께 포스터스가 어렵게 쟁취한 마법이 하찮은 의미밖에 지니지 못함을 풍자한다. 이는 11장에서 포스터스와 말 장수 간 일화도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