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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트루초 카스트라카니의 생애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우현주 옮김, 김상근 해제 / 살림 / 2014년 4월
평점 :
<카스트루초 카스트라카니의 생애>는 비교적 짤막한 작품이다. 이 책에서도 본문은 90면이 미처 되지 않는다. 김상근 교수의 해제가 50면을 차지하니 깊이 있는 해제를 기대할 만하다. 시중에 나와 있는 유이한 번역본 중 유일한 이탈리아어 원전 번역이다.
카스트루초는 14세기 피사와 루카의 영웅 군주다. 마키아벨리보다 2백 년 전의 인물이며, 게다가 조국 피렌체의 적국 출신을 마키아벨리는 무슨 까닭으로 주인공 삼아 글을 썼을까? 이 작품은 그가 루카로 협상 갔던 시절에 썼다고 하는데, 이미 그에 대해 알고 있었는지 아니면 체류하던 시절 비로소 그의 존재를 발견했는지 모르겠다.
나는 카스트루초의 생애를 다시 생각해 볼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삶 속에서 비르투와 포르투나에 관한 훌륭한 본보기들을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P.11, 들어가는 말)
비르투와 포르투나라면 <군주론>에서 자주 접했던 용어다. 거기서 마키아벨리는 전형적인 인물로 체사레 보르자의 사례를 들었다. 자신의 비르투로 영광과 성공의 절정기에 오르려는 찰나 포르투나의 시샘으로 물거품이 되고만. 카스트루초 역시 체사레와 비슷한 본보기라고 마키아벨리는 제시한다. 미천한 출신, 자신의 역량만으로 루카와 피사의 군주가 되고, 토스카나 지역의 패권을 놓고 피렌체와 자웅을 겨루었던 인물. 피렌체 연합군을 대파하고 필생의 꿈을 목전에 둔 찰나. 어이없게 병마로 쓰러진 영웅.
카스트루초의 극적인 삶은 자체라도 매우 감동적이며 흥미진진하다. 마키아벨리는 길지 않은 글을 통해서도 독자에게 카스트루초라는 인물의 존재감을 확연히 각인시킨다. 그 역시 카스트루초의 역량을 높이 평가하고 있음은 그의 조국이 루카임을 아쉬워하는 대목에서 알 수 있다. 이 작품의 압권은 카스트루초의 유언에 있다. 해제의 김상근교수 말마따나 이는 마키아벨리 자신의 유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간의 모든 것을 지배하고자 하는 포르투나는, 내가 먼저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충분한 판단력을 주기는커녕,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시간조차 주지 않았다. (P.71)
그러므로 너는 너의 지략과 내가 행했던 비르투에 대한 기억, 그리고 현재의 승리가 너에게 가져다주는 명성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것에도 희망을 두지 말거라. (P.73-74)
여기서 카스트루초는 포르투나의 무정함을 한탄하면서도, 비르투에 대한 믿음을 거두지 말 것을 당부한다. 포르투나는 예측할 수 없기에 말 그대로 운명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자신의 삶을 개척하는데 포르투나에 기대서는 안 되고 철저하게 비르투를 통해 쟁취하라는 것을. 카스트루초의 삶의 역정이 그러하였듯이.
이 책의 특색은 본문 못지않은 해제의 비중이다. 해제가 없었다면 이 책의 가치는 상당히 줄어들었을 것이다. 작품 전개를 같이 따라가면서 그 속에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꺼내놓는 솜씨는 확실히 전문가답다. 김상근 교수는 특히 ‘인간 일반’을 강조한다. ‘인간 일반’이란 보편적인 인간성을 뜻하는 걸로 이해된다. 거기서 제아무리 뛰어난 비르투를 지닌 인물도 결국은 포르투나의 변덕에 스러질 수밖에 없다.
마키아벨리는 새 시대에 적합한 새 인간형을 제시한 것이 아니라, ‘옛 시대’와 ‘새 시대’를 초월해서, 항상 존재하고 있는 ‘인간 일반’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다. (P.104-105)
너무 비관적으로 보이지 않는가. 나는 <군주론>에서 인간성의 보편성을 주장하는 문장을 찾지 못하였다. 마키아벨리는 인생철학에는 관심 없다. 그는 현실 정치가다. 그는 당면한 이탈리아 정치 체제의 해법을 제시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자신의 주장이 부정적으로 보이는 것은 현실 정치와 사회가 부정적이어서이다. 그는 세상 사람이 모두 선하다면 그는 자신의 주장이 잘못이라고 단서를 덧붙이지 않았던가.
‘들어가는 글’과 ‘카스트루초의 유언’을 통해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건 결국 마키아벨리의 진의다. 인간은 포르투나의 한계가 있음에도 비르투에 의지하여 인생을 영위해 나가야 발전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은 특히 영웅과 군주들에게 더욱 요구되는 자질이다. 카스트루초의 죽음이 단순히 비극으로 비치지 않고 장엄함을 풍기는 까닭이 그러하다.
<카스트루초 카스트라카니의 생애>에 나오는 많은 이야기는 조작되었거나 역사적 사실과 다르게 기술되었다. 카스트루초의 신비로운 출생 이야기부터 조작된 것이다. (P.127)
이 작품은 전기물이 아니라 전기소설이다. 마키아벨리는 사료에 충실하지 않다. 사실과 허구, 조작, 날조를 꺼리지 않고 과감하게 손대어서 이 작품을 썼다. 그는 무슨 이유로 무리수를 두었던가. 자기가 필요한 인물과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서 그리하였을 것이다. 그의 행위로 우리는 미지의 잊혀진 영웅 카스트루초 카스트라카니의 실상을 눈앞에서 더욱 생생하게 알게 되었고 체사레 보르자처럼 카스트루초도 역시 불멸의 인물로 거듭 태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