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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날의 꿈 외
욘 포세 지음, 정민영 옮김 / 지만지드라마 / 2019년 8월
평점 :
욘 포세의 희곡 작품집이다. 수록된 세 편의 공통점은 표제에 계절을 나타내고 있다는 점이다. 개인적으로는 계절이 작품의 성격을 대변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른 희곡집 <이름/기타맨>과는 달리 이 책의 수록작은 ‘사랑’을 공통 요소로 한다. 언제나 따뜻하고 아름다우며 서로에게 보탬이 되는 게 사랑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면 작가는 여기서 궤를 달리한다. 사랑의 합이 맞는다면야 물론 좋겠지만 현실의 사랑은 엇갈리고 변화무쌍하다. 역사상 수많은 불화와 다툼, 웃음과 울음, 분노의 원인이 바로 사랑이 아니었던가.
<어느 여름날>
소설 <저 사람은 알레스>의 희곡판이자 상호 보완적인 작품이다. 사라진 남편의 이름이 어슬레라는 데서 소설과 연결된다. 소설은 어슬레의 떠남을 그의 조상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시원적으로 파악하고 있다. 어슬레와 아내의 거리두기는 작중에서 항상 노출되지만 직접 언급되지는 않는데, 이 점은 희곡에서도 마찬가지다. 희곡은 중년에 이른 어슬레의 아내가 젊은 시절을 회상하는 구성이며, 중년 여자가 젊은 여자와 한 공간에서 서로 교차한다. 여기에 아내의 친구와 남편이 조역으로 등장한다.
어슬레 부부는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한적하고 조용한 시골 마을로 왔다. 어슬레는 여전히 정착하지 못하고 불안해하며 틈만 나면 바다로 나간다. 소설과 달리 여기서 그는 아내에게 한마디 아쉬움을 토로한다. 그녀가 자신을 이해하고 동참해주지 않는다는데. 무엇보다도 아내는 남편과 함께 물에 나가려 하지 않는다. 매번은 아니더라도 어쩌다 한번은 같이 나가기를 남편은 희망하였다.
(젊은 여자) 왜 그래? / 도대체 무슨 일이야? / 항상 불안해하고 / 안정도 못 찾고 / 늘 물에만 나가려 하고
(어슬레) 그런데 당신은 / 함께 물에 나가려 하지 않잖아 (P.37-38)
작품 전체에서 특이한 점은 남편의 부재를 바라보는 아내의 태도다. 남편이 바다에 나가서 돌아오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아내는 걱정하면서도 집안 창가에서 서서 오로지 밖을 내다볼 뿐이다. 소설에서는 나가볼까 하는 의사라도 비치지만, 희곡에서는 단지 바라볼 뿐이다. 그녀의 태도는 친구조차도 의아해할 정도다.
(젊은 여자 친구) 어쨌든 / 이상한 일이야 / 그리고 쟤도 / (현관 쪽을 향해 턱짓을 한다) / 아무 말 안 하고 / 그냥 앉아 있거나 / 아니면 저기 / 창가에 서서 / 열린 창문으로 / 내다보기만 하고 (P.95-96)
아내의 태도와 사고는 초월적, 운명 순응에 가깝다. 남편의 사고는 어쩔 수 없는 것, 어차피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예정된 일, 연연해하고 노심초사한들 무의미하다. 우주와 운명의 커다란 이치와 본질로 바라볼 때 생명은 스러지고 마는 존재. 어둠 속에 고요함을 유지한 채 희극도 비극도 담담하고 초연하게 받아들이리라.
(중년 여자) 이제 난 더 이상 불안하지 않았어 / 이제 난 텅 빈 커다란 고요였어 / 이제 난 어둠이었어 / 검은 어둠이었어 / 이제 난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니었어 / 그리고 동시에 내가 / 내 내면 깊은 곳을 밝게 비추고 있음을 느꼈지 / 텅 빈 어둠 속을 / 그리고 텅 빈 어둠이 / 조용히 빛나고 있음을 느꼈지 (P.84-85)
<가을날의 꿈>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 결혼이란 남녀가 상대방을 자신과 어울리는 최고의 이성이라고 믿는 데서 출발한다. 상투적 주례사는 두 사람의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해로하기를 축원한다. 만약 운명적 이성이 자신의 배우자가 아님을 불현듯 깨달았다면 그 사람의 결혼 생활은 어찌 될 것인가.
이 희곡의 남자와 여자는 아마도 옛 연인이었을 텐데 우연히 묘지에서 마주친다. 서로가 묘지의 고요하고 적적한 분위기를 좋아하였음을 마음에 새기고 이따금 와보았다는 데서 그들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다. 오랜만에 만나서 감정이 일렁인 탓일까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한 사랑의 감정을 숨기지 않고 드러낸다.
(여자) 하지만 우린 이미 / 사랑 / 그것이 존재한다는 걸 느끼고 있어 / 우리가 여기 / 단둘이 / 함께 있는 것처럼 / 우린 사랑 속에 있어 / 우리 둘은 그걸 알아 / 우린 그걸 알아 / 어쩌면 그게 사랑일지 몰라 / 어쩌면 죽은 이들까지 / 구원해 주는 (P.150)
남자는 이미 결혼하여 아이까지 있는 처지다. 여자에게 끌리는 마음을 억제하려고 하지만 끝내 그는 여자를 포옹하고 행복한 모습으로 나란히 퇴장한다. 생명을 마감하는 장소인 묘지에서 생명의 시작을 기약하는 사랑이 이루어진다니 아이러니하지만 그렇다고 생뚱맞지는 않다. 문제는 그 사랑은 희생자를 전제로 하고 있으니 남자의 아내와 아이, 그리고 남자의 부모다.
이 작품은 묘지를 배경으로 남자와 여자의 재회와 이후의 삶이 한 축을 이루고, 아버지와 어머니, 전처가 다른 축을 이룬 채 시간의 흐름과 함께 양자가 교차하면서 삶과 죽음의 진행을 보여준다. 남자와 여자의 결합은 가족들, 그리고 친구들의 축복을 받지 못한다. 어머니는 노골적으로 남자와 여자를 비난한다. 할머니의 장례식, 그리고 아버지의 장례식, 아이의 죽음이 연달아 이어지는데, 동시에 두 사람의 사랑도 시간의 경과와 더불어 부침이 생긴다. 그들은 사랑으로 많은 것을 얻었지만 더불어 다른 많은 것을 잃었다. 이제는 서로 간 사랑 못지않게 증오도 생기지 않았는가.
(어머니) (불안해하며) / 그 앤 죽을 거예요 / 난 알아요 / 그 애가 죽는다고요 / 그 애가 가 버렸어요 / 난 그 애가 죽음으로 들어간 걸 알아요 / 그 애, 그리고 저기 그 여자 / 그건 죽음이에요 / 그 여자는 죽음이에요 (P.233-234)
여자를 향한 어머니의 불안과 부정적 인식의 근원이 무엇일지 궁금하다. 어머니는 무슨 연유로 여자가 아들을 죽음으로 이끌 거라고 단언하는가. 우리가 보기에 여자는 평범한 여자에 불과하다. 유부남을 유혹하였으니 선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더라도 유달리 나쁜 여자라고 비난할 정도는 아니다. 사랑은 맹목적이기에 도덕적 가치 기준으로 섣불리 재단하기 어렵다.
갑작스럽게 남자가 숨을 거둔다. 작품의 결말은 매우 상징적이다. 어머니, 전처, 여자. 껄끄럽고 적대적이기조차 했던 그들은 나란히 팔짱을 낀 채 퇴장한다. 그들의 공통점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는 것이다, 아버지, 아이, 남자. 모두가 사랑의 대상을 잃었기에 그네들끼리 더는 다투어야 할 이유가 사라졌다. 그네들은 동병상련의 처지이므로.
<겨울>
이 희곡은 등장인물이 남자와 여자, 단 두 명이다. 배경도 1장과 3장은 공원, 2장과 4장은 호텔로 단순하다. 주제는 남녀 사이의 사랑. 예상과는 달리 의외로 흥미롭다. 남녀 관계는 우열을 가리기 어렵고 복잡미묘하다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워주는 듯이 전반부와 후반부에서 두 사람의 관계는 뒤바뀐다.
아마도 과거 연인사이었던 듯, 하지만 남자는 이미 결혼하였고 출장차 이 도시에 들렀다가 여자와 우연히 마주치게 된 설정이다. 이 작품에서 가장 당황스럽고 난감한 대목은 여자의 지나친 성적 솔직성이다. 성적인 표현을 매우 걸게 내뱉는 여자를 보면 교양 수준이 그다지 높지 않으리라 추정하게 된다. 그리고 남자를 향해 적극적으로 유혹한다. 두 번 다시는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마뜩잖아하던 남자는 서서히 여자에게 이끌리고 힘주어 끌어안는다.
3장은 1장과 반대로 남자가 공원에서 헤매다가 여자와 조우한다. 이번에는 여자가 남자와의 만남을 피하려다 어쩔 수 없이 마주한다. 여자에게 빠진 남자는 극단적이다. 아내와 헤어지고, 직장에는 사표를 내버렸다. 완전히 여자 하나에 올인한 형국이고 이런 남자를 여자는 꺼리지만 2장에서의 남자와 마찬가지로 매정하게 내치지 못한다.
남자와 여자, 아주 남남이라면 모를까 한때 연인이었고 미련을 가슴 속에 품고 있는 사이였다면 칼로 무 베듯 관계를 정리하기 쉽지 않다. 사랑의 열정은 차디찬 재 속에 스러진 듯 보이나 조금의 틈만 보이면 이 희곡의 남자처럼 활활 타오르게 된다. 제아무리 이성과 상식을 가지고 잠재우려 해도 소용이 없으니 이것은 본능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4장의 마지막 대화는 의미하는 바가 깊다. 사랑이란 원래 그러하니까.
(여자) (그의 옆에 눕는다. 남자가 여자를 껴안는다. 여자가 남자를 껴안는다) / 이건 아냐
(남자) 모든 건 다 그런 거야 (P.379, 4장)
이 책은 부록이 충실하다. 작품해설은 말할 것도 없고 특히 작가소개(<지은이에 대해>)와 인터뷰 자료는 욘 포세의 문학적 특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의 희곡 등장인물은 별다른 이름을 지니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는 작가의 진지한 의도를 반영한 결과인데, 작품 주제와 인물, 사건의 특수성보다는 보편성을 강조하고 싶어서라고 한다.
인물들은 항상 단순한 일반인들이며, 그들의 관계는 한눈에 파악된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작품은 평범함과 보편성을 통해 우리의 삶을 다시 한번 성찰하게 만든다. 포세가 만들어 내는 인간관계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상황이지만 그는 그 관계를 철저하게 관찰하고 파악해 낸다. (P.395)
인간이란 존재와 그 삶의 본원적 질문을 성찰하고 여기에 천착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를 보면 확실히 설득력 있는 해석이다.
또 하나 그의 희곡 대사의 간결성과 압축성, 대사와 사이의 침묵, 그리고 번역본에서는 잘 나타나지 않지만 원문의 리듬감은 실제 무대 상연을 염두에 두는 연출자와 배우에게는 커다란 도전이라는 점도. 고전 희곡처럼 상세한 무대 설정, 행동 지문, 구체적이고 충분한 대사는 오히려 작가의 지시에 충실히 따르기만 해도 기본은 하기에 어찌 보면 안정적이다. 반면 포세의 희곡은 최소한의 것만 제시하기에 나머지는 모두 연출자와 배우가 형상화해야 한다. 매우 어렵고 도전적인 과제지만 그만큼 문학과 다른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길을 터놓고 있다는 점에서 자유로운 공연예술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그런 점에서 무대에서 실제로 욘 포세의 희곡을 볼 수 있다면 굉장히 흥미로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