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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그리고 저녁
욘 포세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7월
평점 :
130면 정도의 길지 않은 소설인데, 짧은 1부와 긴 2부의 구성이다. 1부는 요한네스의 탄생을, 2부는 요한네스의 죽음을 다룬다. 표제는 탄생을 아침, 죽음을 저녁에 비유한 것으로 이해하고 싶다. 탄생이 짧고 죽음이 길다는 것은 인생이란 어차피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흘러가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듯. 삶은 죽음에의 전주곡이다.
모든 것이 지나가, 그의 때가 되면, 스러져 다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왔던 곳으로 돌아갈 것이다, 무에서 무로, 그것이 살아가는 과정이다, (P.15)
이 작품에서도 포세의 문학적 스타일은 여전하다. 짧고 압축적 문장, 반복적 문구, 마침표 대신 마침표의 생략 또는 쉼표의 사용 등. 그의 작품을 읽어나가면 자연스레 리듬감을 느낀다. 문장은 완결되지 않고 계속 이어져 나가는데 인생이란 원래 그런 거야라고 말하는 듯하다.
아 아 저기 저기 아 아 아 저기 아 그리고 아 우 그렇게 아 에 아에 에 아 쏴쏴 아 윙윙 [......] (P.18-19)
우우 오 희고 우 그리고 부드러운 오 단단하고 오 오 희고 거의 뜨거운 그리고 오 오 고요한 아이는 요한네스라고 부를 것이다 (P.20)
이 고요하고 고요한 소리들 쉬쉬 그래그래 쉬 아 쉬 에 쉬쉬 우 오 우 그리고 스스로 느끼며 쉬 그렇지 그리고 그 고요함 (P.25)
어둠, 부드러움, 평온과 적막, 그리고 고요함은 태아의 세계다. 엄마 뱃속의 세상이다. 따뜻함에서 벗어나 혼자 고요히 고요히 앞으로 나아갈 때 세상으로 나오게 된다. 1부에서 특징적인 대목은 의성어의 사용이다. 작품 전체에서 아이의 탄생 장면에만 등장하는 의성어는 생명 탄생의 신비로움을 일반적인 언어로는 형언할 수 없다는 뜻일까.
신생아 요한네스는 2부에서 수십 년의 세월이 흘러 노인이 된다. 사랑하는 아내 에르나도, 서로 머리를 잘라주던 페테르도 이미 죽었다. 자녀와 손주들은 뿔뿔이 흩어져 각자 살고, 막내딸 싱네만 근처에 살아서 가끔 들러준다.
2부는 늙은 요한네스가 환상과 회상 속을 넘나드는 하루의 여정을 담고 있다. 어느 날 하루를 시작한 요한네스는 뭔가 평상시와 다른 점을 느낀다. 몸이 유달리 가뿐하며, 사물도 낯설고 새롭게 보인다. 날마다 아침이면 게우던 것도 오늘은 그렇지 않았다. 페테르와 함께 낚시하는데 루어가 물속 깊이 들어가지 않고 둥둥 떠 있기만 한다.
페테르, 이미 오래전에 죽은 그가 눈앞에 살아있다. 의아해하면서도 요한네스는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단지 그의 몸이 여위고 머리가 희고 덥수룩한 게 마음에 걸릴 뿐이다. 그와 페테르가 자신들의 아내와 처음 만나는 장면의 환상, 집을 향해 가는 길에 죽은 아내 에르나의 발소리와 목소리를 듣고 행복감을 느끼는 요한네스, 무엇보다 막내딸 싱네가 자신과 마주 오면서도 알아보지 못한 것에 이상함과 서운함을 품는다.
자네도 이제 죽었네 요한네스, 페테르가 말한다
그리고 요한네스는 페테르를 바라본다, 그런 말을 하다니, 고약하게도, 내가 죽었다니
내가 죽었다고? 요한네스가 묻는다
자네도 이제 죽은 거라네 요한네스 그래, 페테르가 말한다 (P.128)
죽음이란 무엇인가? 인간이 태어나서 삶을 누리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은 무엇이며 어떤 느낌과 의미를 갖는가? 인류의 영원한 숙제다. 이 소설에서 단테를 인도하는 베르길리우스처럼 페테르는 요한네스를 죽음의 세계로 안내한다. 죽음을 충격으로 받아들이게끔 여기지 않고 자연스럽게 여기게끔 서서히. 그럼에도 요한네스는 여전히 당혹스럽다. 마치 산 사람이 여행 떠나는 것처럼 이것저것 질문하니까, 페테르는 그가 아직 산 사람처럼 말한다고 할 정도로.
작가는 많은 것을 말하지 않는다. 그에게 죽음 또한 일상과 다르지 않다. 영혼이 육체에서 이탈할 때 날개가 돋은 듯 가볍고 자유롭다고 한다. 이날 아침 요한네스의 공기와도 같은 투명한 가벼움은 그래서 비인간적이고 비현실적이다.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본인은 모르지만 예리한 독자라면 벌써 알아차렸을 법하다.
이 소설에서 흥미로운 점은 요한네스가 페테르와 함께 보내는 하루의 나날을 범상하게 여긴다는 데 있다. 그는 분명 오래전 페테르가 죽었음을 알고 있다. 하지만 페테르의 변해버린 외모를 딱하게 여길 뿐 그의 존재 자체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가 노처녀 페테르센을 기다리는 것, 안내 페테르센이 요한네스의 팔짱을 끼는 장면, 일순간 그들이 환복한 채 마르타와 에르나와 첫 만남을 갖는 대목 등. 단순히 젊었던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의 회상이라고 치부하기엔 애매한 부분조차도 그는 일말의 의구심도 품지 않는다. 심지어는 에르나의 출현 자체도.
작품의 결말부는 요한네스와 싱네의 시선이 교차한다. 그들이 길에서 마주 지나치는 순간의 섬찟한 온기와 냉기의 대조. 싱네는 침대에 누운 아버지의 모습을 본다. 그리고 요한네스는 페테르와 함께 길을 떠난다. 목적지도, 어떤 장소도 아니고 이름도 없는 그 어딘가로. 삶이란 원래 그러하다, 무에서 태어나 무로 사라지는 것. 모든 생명의 피할 수 없는 숙명.
페테르와 그는 그 자신이면서 동시에 아니기도 하다, 모든 것이 하나이며 서로 다르고, 하나이면서 정확히 바로, 그 자신이기도 하다, 저마다 다르면서 차이가 없고 모든 것이 고요하다 그리고 요한네스는 몸을 돌려 저멀리 뒤편, 저 아래 멀리, 싱네가 서 있는 모습을 본다, (P.134)
포세의 글은 대체로 모노톤이다. 화자의 목소리는 나직하게 침잠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그는 말수가 적으며 그나마도 눌변이다. 독자는 인물의 말보다도 그의 침묵과, 말과 말 사이에 오히려 주목하게 된다. 그의 독특한 글쓰기 스타일과 더불어 첫인상은 생경하지만, 일단 그의 글에 맛을 들이면 저절로 몰입하게 되는 묘한 맛이 있다. 말할 수 없는 것들에게 목소리를 부여한 작품을 썼다는 노벨문학상 선정 사유는 그런 면에서 타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