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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들의 도시를 위한 교향곡 - 쇼스타코비치와 레닌그라드 전투
M. T. 앤더슨 지음, 장호연 옮김 / 돌베개 / 2018년 4월
평점 :
클래식 음악의 교향곡 매니아 사이에는 BMS라는 작곡가 약칭이 있다. 브루크너, 말러, 쇼스타코비치가 그것이다. 중후장대하고 강렬하며 극적인 대편성 교향곡의 묘미를 한껏 누릴 수 있는 작품들을 이 세 사람은 남겼다. 저자가 이 책에서 천착하는 것은 바로 쇼스타코비치다.
쇼스타코비치의 삶은 서양 현대사의 굴곡과 맥을 같이한다. 볼셰비키 혁명과 스탈린의 공포정치, 제2차 세계대전과 전후의 냉전 시대까지. 게다가 그는 당대의 가장 저명한 작곡가로서 언제나 당국의 예의주시 대상이었다. 정권은 자신의 입맛에 맞도록 찬양과 비판을 번갈아 하며 그를 본보기로 삼아 예술계를 통제하려고 하였다.
표면적인 쇼스타코비치의 태도는 공산주의에 순응하는 전형적인 소비에트인의 모습이었다. 그것이 뒤바뀌게 된 계기는 볼코프의 <증언>이 발표된 이후로 스탈린 정권에 반항적이고 냉소적인 쇼스타코비치를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이 책에서도 언급했듯이 과연 증언이 ‘쇼스타코비치의 목소리’가 맞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여전하다.
이 책이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은 그의 7번 교향곡, 일명 <레닌그라드 교향곡>이다. 이 곡은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소전쟁에서 독일에 의한 레닌그라드 포위전 와중에 쓴 작품이다. 70분에 육박하는 장대함, 전쟁을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기에 나타나는 강렬함과 심각함 등이 어우러져 압권을 이루는 그의 대표작 중 하나다. 무엇보다 이 교향곡은 작품 전후, 그리고 서방 초연을 위한 소련과 미국의 협업 등의 음악 이외 요소로 더욱 대중의 흥미를 끈다.
이 책은 20세기 전반기 소비에트 사회와 예술을 다룬 역사서이자 제2차 세계대전 이야기이면서 쇼스타코비치의 간략한 전기이기도 하다. 물론 그 중심에는 전쟁 한복판에서 이 교향곡이 만들어지고 전달되고 연주되고 사람들에게 힘을 준 이야기가 있다. (P.498, 옮긴이의 말)
예술작품은 작가와 시대와 동떨어져 난데없이 뚝 떨어지지 않는다. 이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선 작곡가 쇼스타코비치의 삶과 작품세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레닌그라드 전투의 성격을 알려면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 배경, 나아가 나치와 볼셰비키 정권의 탄생과 본질에 대해서도 다가갈 필요가 있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음악 이야기이지만, 음악을 둘러싼 인간과 사회, 역사를 다룬 다큐에 더 가깝다.
쇼스타코비치 애호가라면 그가 스탈린 정권에 의해 박해받은 사실을 알고 있다. 5번 교향곡의 성공으로 1930년대의 ‘대공포 시대’라는 1차 위기를 넘겼고, 7번 교향곡으로 스탈린 정권의 생명 연장에 기여하였지만, 전후인 1948년 형식주의 비판은 통과하지 못하였다.
1948년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이 금지되었다. 그해 가을에 그는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 음악원 교수직에서 쫓겨났다. 모아둔 돈이 떨어지자 그는 스탈린을 칭송하는 영화들의 음악을 작곡하며 돈을 벌었다. (P.477)
당대를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저 그러려니 생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책은 스탈린의 공포주의가 얼마나 무시무시한가를 생생하게 기술하고 있다. 그들은 몇백만 사람의 목숨을 깃털처럼 가볍게 여겼다. 반체제라고 의심하면 저명한 지식인, 예술가들은 하루아침에 사라지거나 유형에 처해졌다. 개인뿐만 아니라 일가족 모두가. 오늘은 무사하더라도 내일의 안전을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쇼스타코비치는 살아가야 했다. 제아무리 세계적으로 유명한 음악가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혹자는 그가 더 당당하게 정권에 맞섰기를 기대했을 수도 있다.
쇼스타코비치는 전설적 영웅이 아니다. 그는 보통의, 평범한 소시민이다. 축구에 열광하고, 친구들과 예술에 대하여 교류하며 우정을 나누는 그. 게다가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 부모와 친척들을 지켜야 할 의무와 본분이 있다. 이 책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쇼스타코비치는 예술세계에 가려 오히려 드러나지 않은 그의 인간적 면모다.
아쉽게도 우리는 쇼스타코비치 자신의 목소리를 확인할 수 없다. 그의 공식적인 발언은 시대의 압력을 감안해야 하며, 볼코프의 증언은 진의를 알 수 없고, 후대 친척과 지인의 회상은 오염과 과장을 감내해야 한다. 그는 자신에 대해서는 일체의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 그건 어쩌면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행위였으리라. 그렇기에 그의 작품을 통해 그의 생각과 감정을 추정하려는 시도가 나오게 된 것이다.
쇼스타코비치는 이 시기에 자신의 감정에 대해 어떤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
그럴 만도 했다. 일기 때문에 누군가가 투옥되고, 편지 때문에 누군가가 총살되는 시대였다. (P.151)
그의 삶은 스탈린과 떼어놓을 수 없다. 작곡가로서 그의 주활동기는 스탈린 집권 시대와 정확히 맞물린다. 아니 그의 삶 전체는 공산주의 혁명의 발발로부터 시작하여 냉전과 데탕트, 신냉전에 이르기까지 철저히 소비에트와 함께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제아무리 속마음은 다를 수 있다 하더라도 어린 시절 체득한 분위기까지 고려한다면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이 그의 작품 바탕에 깔려있음을 외면하기 어렵다.
이 책에서 보여주는 레닌그라드 전투의 배경과 발발, 전개 과정을 통해 비로소 제2차 세계대전에서 히틀러와 스탈린의 관계, 독소전쟁이 불가피하였고 레닌그라드의 처절한 비극이 생긴 까닭은 알 수 있었다. 저자가 반복해서 말했듯이 레닌그라드는 스탈린에 의해 이미 짓밟혀졌고, 나치는 이를 마무리하려고 덤벼든 것에 불과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탈린은 전쟁에 앞서 레닌그라드, 나아가 소련 전체의 국방력을 불구로 만들었고, 나치 침공을 자초하였으니.
“레닌그라드는 포위되었다.” 한 여성이 일기에 썼다. “우리는 쥐덫에 걸렸다.”
역사상 가장 긴 포위전으로 기록되는 900일간의 레닌그라드 포위전이 시작되었다.
쇼스타코비치 가족은 다른 250만 명과 함께 덫에 걸려들었다. (P.274)
나치의 전략이 잔인하지만 지능적이며 효율적임을 인정해야 한다. 그들은 전투를 피하고 포위한 채 인명과 물자 유통을 끊어버림으로써 아사시키는 작전을 썼다. 레닌그라드는 스스로 포위를 풀 역량이 없었고, 스탈린은 외부에서 독일군을 무너뜨릴 힘이 없었다. 딱한 것은 레닌그라드 주민들뿐. 이 책은 포위된 채 굶어 죽어가는 도시의 모습을 자세히 묘사한다. 전쟁 자체가 비인간적이지만 아무런 희망도 없이 서서히 죽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더없이 비인간적이다. 그 극치는 바로 인육을 먹는 사람들과, 그러한 목적으로 살아있는 사람을 사냥하는 무리들이다. 하지만 이 책은 반대로 극한상황에서도 인간성의 마지막 끈을 놓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도 감동적으로 묘사한다.
“우리는 노래를 부르고 독일군에게 침을 뱉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저들은 땅에서 썩을 겁니다. 수십만, 수백만이 이미 썩고 있어요. 그에 반해 우리의 도시는 굳건하게 버티며, 우리는 여전히 살아가고 일하고 시를 쓰고 러시아 노래를 부를 겁니다.” (P.392)
‘레닌그라드 교향곡’이 이 책의 내용처럼 영미와 소련 간 동맹을 맺는데 정말 결정적인 기여를 했는지는 역사적 검토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서양에서의 연주를 위해 마이크로필름에 담긴 악보가 세계 방방곡곡을 여행하면서 간신히 전달되는 역경은 자체로서도 극적이다.
이 책의 압권은 포위된 채 굶주림에 연주자들이 쓰러져 죽어가면서도 레닌그라드 초연을 감행하는 오케스트라와 그 연주를 듣기 위해 참석하는 시민들의 태도다. 그들에게 이는 단순한 교향곡과 연주회가 아니다. 생사를 넘나들며 살아남은 자와 죽은 자 모두에게, 바로 자신들의 음악이기 때문이다. 이 교향곡을 듣고 열광한 다른 나라 사람들, 소련의 다른 지역 사람들과 차별되는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는 그와 같은 감정으로 음악을 들었습니다. 이 음악을 와서 들으려고 이 순간까지 살아남은 것이니까요.” 그날 밤 공연장에 있었던 한 여성의 말이다. “이것은 우리가 함께 겪은 진짜 교향곡이었습니다. 우리의 교향곡, 레닌그라드 주민들의 교향곡입니다.” (P.450)
쇼스타코비치의 5번 교향곡처럼 7번도 시기적으로, 지역적으로 해석의 차가 분분하다. 공산주의의 승리, 나치의 패배 같은 전통적 해석에서 폭압적인 전체주의 일체에 대한 냉소로 보는 해석까지. 거기에 순음악적 접근도 가능하다. 단일한 정답은 없다. 문자적 언어가 아닌 음표로 표현된 음악은 폭넓은 의미를 포용한다.
이 책에서 결국 저자가 주목하는 것도 음악과 인간의 관계, 좀 더 명확히 한다면 극단적 상황에서도 용기를 부여하는 음악의 힘과 그것이 실증해 보이는 역사의 실례다. 음악이란 무엇인가? 인간을 죽음에 이르게 하거나 파괴하는 음악은 참다운 음악이 아니다. 음악은 인간에게 기쁨과 위안과 용기를 주어서 세상을 살아갈 힘을 주어야 한다. 저자가 스탈린과 쇼스타코비치, 레닌그라드를 제재로 삼아 장대한 다큐를 쓴 의도 또한 마찬가지다.
궁극적으로는 음악의 힘과 의미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은밀한 메시지들과 에두르는 말의 이야기, 암호로 작동하는 음악의 이야기,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는 비극을 견디도록 힘을 주고, 큰 소리로 말하지 못할 때 감옥 창살 사이로 속삭이게 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여 위안을 주는 음악의 이야기이다. “당신에게 어떤 일이 닥치든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P.1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