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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요정 파데트
조르주 상드 지음, 이혜은 옮김 / 파롤앤(PAROLE&) / 2022년 5월
평점 :
원제에 충실하자면 <꼬마 파데트> 정도이며, 이재희 번역본은 <소녀 파데트>라는 표제를 달고 있다. 앞에 ‘사랑의 요정’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까닭은 처음에 동화책으로 번역 출간하면서 접근성과 흥미를 높이기 위한 것이 너무나 친숙해져서 고착된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 이 책은 사정이 낫다, ‘파데트’라는 주인공 이름을 살리고 있으므로. 다른 책들은 통상 <사랑의 요정>이라고만 표제를 붙인다.
이 작품을 단순히 파데트와 랑드르 간의 사랑 이야기라고 간주한다면 참모습을 놓치는 것이다. 랑드르와 실비네 쌍둥이 형제 이야기가 소설 전반부를 주도하고 있으며, 형제간 감정의 엇갈림과 갈등이 소설 말미에 이르기까지 내내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구실을 하고 있다. 즉 프랑스 농촌 지역을 배경으로 쌍둥이 형제간 사랑과 랑드르와 파데트 간 사랑이라는 두 축을 지닌 작품을 봐야 한다.
실비네는 몸도 마음도 동생보다 훨씬 더 어렸으며, 생각하는 것은 랑드리만을 사랑하는 것, 그리고 랑드리로부터 똑같은 사랑을 받는 것, 그것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실비네는 둘이 재미있게 놀았던 외진 곳이나 숨겨진 장소인 둘만의 장소에 랑드리와 가고 싶어 했다. 그곳에서 지금 나이에는 어울리지 않은 예전에 하던 놀이를 하고 싶어 했다. (P.46)
아마 많은 독자는 쌍둥이 형제의 깊은 우의와 애정에 감탄하면서도 동시에 실비네의 과도한 집착에 탄식을 하게 될 것이다. 일란성 쌍둥이의 운명이라고들 하는 부정적 전망이 소설 초반에 나오는데 그래서일까 독자의 뇌리에 형제의 유전적 우열이 계속 떠오른다. 쌍둥이 상대방에게만 애정을 느끼며 가족 이외에 주변과 사회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실비네. 나약하고 소심하기에 더더욱 감싸고 보호하는 조치와 맞물려 사회화를 성취하지 못하는 실비네.
심리학적으로 바라보았을 때, 실비네의 성격과 행동에 대해 다양한 분석이 가능하리라. 형제간 단순 애정을 넘어서 상대방이 자신을 제외한 타인에게 애정을 쏟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마음 상태. 성인이 되어서도 둘만의 어린 시절의 사랑과 추억에 머물고자 하는 심리 상태. 동성 형제의 이성을 향한 사랑에 질투와 분개를 품는 태도. 이런 것을 누구도 정상적인 성장 과정의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실비네가 바로 그러하다. 파데트가 랑드리를 떠났다는 소식에 기뻐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실비네에게 파데트는 사랑의 경쟁자이다.
파데트가 떠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실비네는 우선은 자기한테 유리하게 되었다는 생각에 기뻤다. 이제부터는 랑드리가 자기하고만 사이좋게 지낼 것이고,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을 버리는 일도 없을 것이라고 은근히 기대했다. (P.185)
실비네에게 파데트는 랑드리의 애정을 두고 싸우는 연적이었기 때문이다. (P.203)
작가도 바로 이렇게 단언한다. 사실 이러한 설정은 조심스러운 측면이 있다. 형제간 사랑과 남녀 간 사랑은 다른 현상이며 마땅히 달라야만 한다. 양자를 혼동하면 인간과 사회 윤리의 토대가 위태롭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는 극단으로 치닫지 않고, 파데트의 대화로 현명하게 마무리되지만, 결말도 자못 산뜻하게 떨어지지 않는 찝찝함을 지닌다. 실비네는 쌍둥이 동생에 대한 애정을 단념하고, 파데트를 향한 새로운 감정을 억누른 채 일생을 독신과 전장에서 살아간다. 실비네의 삶은 과연 행복할까.
랑드리와 파데트 간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면, 이 작품은 한없이 아름답고 긍정적이고 바람직한 전원 소설이다. 게다가 세속적 신분 차이를 뛰어넘어 사랑을 쟁취하는 파데트에게는 누구나 애정을 품지 않을 수 없다. 파데트와 마을 사람들 간 오해와 불화는 누구 한 편의 잘잘못이 아니고, 양자 모두의 잘못이다. 사람은 일반적인 범주를 벗어난 타인의 언행, 복장, 행동 등에 불편함을 느낀다. 이는 곧잘 비정상으로 간주되기 마련이며, 비난과 놀림의 대상이 되기 쉽다. 옳고 그름을 떠나 인간 성향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설사 대놓고 표현하지 않더라도 마음 한구석에는 자신들과 경계선을 명확히 설정한다. 개인적 친밀감 또는 애정을 품은 사람만이 장벽을 뛰어넘을 수 있다. 파데트의 참된 모습을 알게 되는 랑드리처럼.
“내가 네 얼굴 본 적이 없니?” 참을성이 바닥난 랑드리는 말했다.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는 거야? 자, 네 얼굴이 잘 보이게 달빛 쪽으로 와봐. 네가 못생겼는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난 네 얼굴이 좋아. 너를 좋아하니까. 나한텐 그게 중요해.” (P.128)
나중에 파데트가 자신의 말투나 태도, 옷차림 등을 조신하게 바꾸자 사람들의 태도도 달라진다. 파데트나 동생 메뚜기의 파르르 한 반응이 없어지자 더는 갈등과 다툼의 여지가 사라짐은 자연스럽다. 게다가 파데트는 다년간 축적된 자신에 대한 편견과 인식을 바꾸기 위해 마을을 떠나 타향에서 좋은 평판을 얻고자 실행한다.
초반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훗날 사랑의 결실을 거둔다는 설정은 자못 동화적이다. 가난한 여주인공이 부잣집 아들과 결혼한다는 신분 상승의 이야기는 말할 나위도 없다. 세속적인 시각에서 파데트는 형편없는 출신에, 못난 외모에 형편없는 태도의 여자아이에 불과하다. 이 모든 것이 완전히 뒤집히는 데서 독자는 통쾌함을 느낀다. 원래 탁월한 지혜와 현명함을 가진 바탕에, 사실은 누구 못지않게 빼어난 외모를 지녔으며, 갑자기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아 부에서도 꿀릴 이유가 없다는 점. 이렇게 보면 조건에서 오히려 랑드리가 밀릴 지경이다. 만약 반전이 없었다면, 즉 외모도, 재산도 처음 설정과 마찬가지였다면 바르보 씨의 결혼 승낙이 어찌 되었을까 매우 궁금하다. 오로지 곧은 심성과 현명함만이 가진 게 전부인 파데트 말이다.
“그럼 넌 이게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야?” 파데트가 말했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
랑드리를 계속 바라보던 파데트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가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동시에 그녀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아 신이시여! 신이시여!” 랑드리가 파데트를 끌어안으며 외쳤다. “내가 착각한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P.178)
의젓하고 성실하며 진실한 랑드리와 어린아이 같았지만 현명함과 의지력을 갖춘 파데트 간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는 독자를 흐뭇하게 만든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실비네의 애정과 아픔을 인식할 수 있다면 이 작품이 ‘사랑의 요정’ 따위로 치부되어서는 적절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