괭이부리말 아이들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양장본
김중미 지음, 송진헌 그림 / 창비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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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TV 프로그램에 소개되어 유명세를 탄 창작동화다. 언젠가 한 번 읽어볼까 생각만 하다가 우연히 손에 들어오게 되었다. 표제에 이끌려 처음엔 어느 시골 마을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그린 전원적, 낭만적 작품으로 생각하였다. 착각이 깨지는 데는 첫 쪽 첫 줄의 단 한 문장으로 충분하였다.

 

괭이부리말은 인천에서도 가장 오래된 빈민 지역이다. (P.9)

 

괭이부리말은 인천 만석동 달동네의 별칭이다. 매립되어 육지가 된 고양이 섬(묘도)에서 이름이 나왔다고 한다. 동네 이름을 확인한 순간 예상했던 줄거리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가 흘러갈 것으로 생각하였다. 한편으로는 우려도 들었다. 모름지기 동화라면 고정관념이 있다. 세계와 삶의 아름다움과 올바름이라는 긍정적 일깨움을 통해 사회의 일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교훈을 주어야 한다는. 이것이 이 작품에서 어떻게 조화될 수 있을 것인가.

 

확실히 작품의 전반적 기조는 어둡고 우울하고 슬프다. 등장하는 동네 가족들은 대체로 온전하지 못하고 불행하다. 숙자네 가족은 생활고와 아버지의 주취 폭력으로 엄마가 가출한다. 졸지에 어린 숙자가 살림을 꾸려나가는 처지가 되었다. 동준이네는 수년 전 어머니가 가출하였고, 최근에 아버지마저 돈을 벌러 나간다며 집을 떠났다. 동준과 형 동수는 아버지가 남겨둔 얼마 안 되는 돈으로 근근이 버틸 뿐이다. 동수는 패거리들과 어울리고 본드 흡입에 의존하는 등 상황은 악화된다.

 

동네 친구들 중에는 그렇게 어머니가 떠난 아이들이 많았다. 그리고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다. 숙자는 친구들처럼 어머니를 지워 가는 연습을 하기로 마음 먹고 있었다. (P.62)

 

오죽하면 다시 돌아온 어머니의 귀가 사유가 임신이라는 사실을 알고 숙자는 안심하고 기뻐한다. 어머니가 다시 가출하지 않으리라는 기대감으로. 숙자 자매와 동준의 천진한 일상으로 겨우 한줄기 길을 헤쳐나가던 작가는 돌연 영호를 등장시킨다. 괭이부리말의 주저앉은 사람들 가운데 현실에 굴복하지 않고 앞길을 성공적으로 개척한 대표적 인물이 바로 영호와 김명희 선생님이다. 이 두 사람이 시간의 순서는 다를지언정 숙자네와 동준이네의 구세주 역할을 하며, 명환이와 훗날 호용이마저 보듬게 된다.

 

나두 고마워. 그리고 명희야, 꼭 고백하고 싶은 게 있는데, 아이들한테 내가 필요한 게 아니라 나한테 아이들이 필요해.” (P.179)

 

영호는 어쩌면 이 동네에 가장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다. 개인적 이익보다 타인에 대한 동정심이 더 강하고, 피붙이가 아닌 아이들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온정과 사랑을 베풀 수 있는. 우여곡절은 있지만 그를 중심으로 두 가족이 함께 삶을 단단하게 여밀 수 있게 되었음은 순전히 영호의 내재적 힘 덕분이다. 물론 영호도 홀어머니의 죽음 후 천애 고아 처지에서 새로운 가족을 얻게 되었으니 일방적 시혜라고 할 수 없다.

 

어쩌면 단단한 빗장으로 마음의 문을 닫아걸고 있던 것은 동수가 아니라 명희 자신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P.165)

 

동화의 한계는 김명희 선생님의 역할과 영호와의 관계에서 불가피하게 드러남을 알 수 있다. 괭이부리말 출신이면서 동네와 동네의 불량한 아이들에 호의를 갖고 있지 않은 명희야말로 어쩌면 자연스러운 반응일 것이다. 그의 삶은 지긋지긋한 동네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한 치열한 분투로 점철되었고 마침내 떠나는 데 성공하였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명희가 괭이부리말 출신으로서 자신의 태도를 되돌아보고 교사로서 비교육적 인식을 갖는 자신을 부끄러워하는 것은 괜찮다. 나아가 상처받은 아이들을 보듬고 숙자네와 영호네 식구들과 교류를 맺는 것까지도 인정한다. 그렇더라도 숙자네 집 다락방으로 이사 오는 설정은 개인적으로 과도하다는 생각이다.

 

작중 인물 가운데 숙자와 동준이가 초지일관 가장 긍정적이고 굳센 마음가짐을 지녔다고 평가하고 싶다. 두 아이가 없었다면 두 가족은 일찌감치 파탄에 맞닥뜨렸을 것이며, 영호나 명희는 아예 개입할 기회도 없었을 테니. 실은 동수는 동준이보다 마음이 여리다. 동수는 어려운 현실을 인정하고 버텨나갈 자신이 없어서 방황하였다.

 

작가는 이들의 삶이 녹록지 않을 것을 예고라도 하듯이 개심한 숙자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아넣음으로써 숙자네 식구를 한층 힘겹게 만든다. 동수의 회개와, 동수와 명환의 진로 설계로 드디어 어둠이 사라지고 밝은 새해를 맞이하려는 기대감도 잠시 성탄절 이브에 버림받은 호용이가 영호네 집에 들어온다. 비록 밑바닥에서 벗어났다고 하지만 그들이 더 낫고 행복한 삶에 이르게 될지 아니면 재차 나락으로 굴러떨어질지 작가는 섣부르게 보여주지 않는다.

 

안개는 쉽게 걷힐 것 같지 않았다. (P.191)

 

동수와 공원 노숙자가 만나는 장면의 마지막 문장이다. 물리적 현상으로서의 안개만을 뜻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동수와 우리는 좀 더 밝은 앞날을 기대하고 싶다. 그래도 세상이 아직은 살만하다고 하려면 이들이 계속 불행해서는 안 될 것이므로. 마침 민들레 새싹도 움텄고, 눈부신 햇살이 동수가 다니기 시작한 공장을 비추는 가운데 노래를 흥얼거리는 동수가 이 작품의 대미를 장식하게 됨은 의미심장하다.

 

, , , , 봄이 왔어요......” (P.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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