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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피를 입은 비너스 ㅣ 펭귄클래식 61
레오폴트 폰 자허마조흐 지음, 김재혁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9년 12월
평점 :
생소한 작가의 낯선 작품이다. 이 소설은 작품 자체보다 이후 작가의 이름에서 파생된 한 심리학적, 병리학적 용어로 대중에게 더 낯익다. 마조히즘, 즉 피학성애라는 변태성욕에 빠진 남성과 그의 주인으로 군림하는 여성의 이야기다. 작품을 읽다 보면 어쨌거나 적절한 명칭을 붙였다는 데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작가로서는 기분 나쁘고 불만을 품겠지만 말이다.
“그래, 그렇게 해줘요. 아주 거만한 모습을 보여 줘요. 폭군이 되어줘요.” 나는 극히 격앙되어 소리쳤다. (P.54)
“그렇게 오만해져 봐요.” 나는 소리쳤다. “발로 나를 밟아줘요.” (P.77)
“나를 때려줘요.” 나는 애원했다. “무자비하게 때려줘요.” (P.81)
제베린이라는 한 신사가 반다라는 젊은 여인을 알게 되었는데, 친분을 나누다 보니 그의 독특한 성적 취향을 반다가 거부하지 않는다. 두 사람은 서로를 사랑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이른바 정상적인 방향으로 흐르지 않는다. 제베린의 되풀이되는 피학 욕구는 그녀에게 잠재된 가학적 본능을 일깨우고 양자는 채찍의 휘두름과, 자발적 노예 학대 행위를 통해 그들만의 사랑을 지속해 간다.
“나는 당신을 더욱더 깊이 사랑할 겁니다. 당신이 나를 학대하면 학대할수록 나는 더욱더 미친 듯이 당신을 사모하고 숭배할 겁니다. 지금까지 내게 한 당신의 행동은 나의 피에 불을 붙여 주고 온 감각을 도취하게 만들었습니다.” (P.130)
이것이 마조히즘의 본질이다. 인간의 본성에 내재한 동물성 또는 야수성으로 인해 가학성애, 즉 사디즘은 어느 정도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반면 고통과 학대에서 쾌감을 얻는 심리상태는 쉽사리 동감하기 어렵지만, 순전한 상상으로 치부하기 어려움도 알고 있다. 세상은 넓고 사람은 다양하므로. 사실 이 소설에서 작가는 제베린을 다분히 일반적 사람과는 다르게 묘사하고 있다. 실제 여인이 아니라 돌로 된 비너스상에 애정을 품는다든가, 사춘기 시절 친척 아주머니에게 호되게 매질을 당해 남자다운 태도를 포기한 전례가 있다. 무엇보다 제베린은 남달리 예민한 감각의 소유자이다.
“당신도 알겠지만 나는 ‘아주 예민한 사람’입니다. 내 경우엔 모든 것이 상상력에 기반하고 있으며 모든 것이 거기서 자양분을 섭취하지요. 나는 조숙했으며 극히 민감했어요.” (P.69)
이런 요인들이 한데 섞여 그의 성적 취향을 형성하였지만 이를 실현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피학은 가학을 전제로 하는데, 자신에게 기꺼이 학대를 가할 여성을 찾는다는 건 너무나 어려운 과제다. 여기서의 반다처럼. 더구나 비정상적인 애정 관계에 보수적인 유럽 문화도 한몫하였으리라. 두 사람이 만나고 마조히즘 행위를 실현하는 무대가 “카르파티아 산속의 조그만 휴양지”(P.22)로 유럽 본류와는 지리적, 문화적으로 다른 곳이라는 점이 주목된다.
마조히즘과 사디즘의 동전의 양면이다. 한 쌍이 상반되는 성애 감각을 지녀야 행위로 성립 가능하다. 그런 면에서 제베린에 호응하는 반다도 흥미롭다. 미모의 젊고 부유한 과부인 그녀는 제베린의 구혼에 유보적 태도다. 자신이 진정으로 내키지 않는데 굳이 한 남자에게 성적으로 종속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다. 그녀의 애정관은 보면 볼수록 파격적이면서 독자적이다. 당대로서는 이상하고 마뜩잖게 여겨질 의견을 반다는 서슴지 않는다. 아마 이런 점에서 그녀가 쉽게 제베린의 바람을 실현시켜 줄 수 있었으리라.
물론 그녀도 처음에는 주저하였음을 작가는 보여준다. 그녀는 거듭해서 제베린에게 경고한다. 그의 피학 욕구가 점차 그녀의 피를 끓어오르게 만들고 있으며, 그녀 또한 억제하지 못할 가학 욕구가 강해지고 있음을 말이다. 전통적 모럴과 배치되는 욕망이므로.
“오! 당신은 정말이지 여자를 철저하게 타락시킬 남자군요!” (P.67)
“너는 내 기질 속에 잠들어 있던 위험한 성향을 일깨운 거야.” (P.84)
“난 너 따위 인간을 조소하고 경멸해. 나같이 돼먹지 못하고 변덕스러운 여자한테 눈이 멀어 자신을 노리갯감으로 내놓다니! 넌 이제 내 애인이 아니야. 생사가 내 기분 여하에 달린, 노예일 뿐이야.” (P.146)
반다를 향한 제베린의 애정은 한결같지만, 반다의 태도는 조금씩 달라진다. 제베린은 애정이지만, 반다는 스스로를 노예로 만드는 남자에게 애정을 잃는다. 그녀가 진정 바라는 남성상은 제베린 유형이 아니라 나중에 나오는 젊은 그리스 남자다. 여성을 압도하고 지배할 수 있는 거친 수컷으로서의 남성. 자신을 지배할 수 있고 그에게 소유 당하고 싶은 남성. 이른바 나쁜 남자 또는 B형 남자에게 이끌리는 여성의 일면이리라.
나는 그 사람을 반드시 소유하고 싶어요.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죠? 그가 나를 원한다면 나는 그의 아내가 되고 싶어요.” (P.197)
여자란 무릇 우러러볼 만한 남자를 원하거든.“ (P.209)
제베린에 대한 반다의 감정은 처음엔 분명 진정이었다. 처음엔 부탁을 들어주려는 마음과 일종의 호기심으로 시작하여 일시적 쾌감을 느꼈겠지만, 계속해서 자신에게 무릎 꿇고 노예 취급당하며 채찍 맞기를 소망하는 남자에게 지속 가능한 애정을 품기는 힘들었으리라. 그리스 남자와 합작하여 제베린에게 처절할 정도로 매질을 가한 행위는 훈육적 의도가 아예 없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주안점이 아님을 쉽사리 알아차릴 수 있다.
돌연 나는 끔찍할 정도로 분명하게 홀로페르네스와 아가멤논 이후로 눈먼 열정과 욕망이 남자들을 어디로 이끌었는지 깨달았다. 그것은 바로 배반하는 여자의 덫, 그물 속이고, 고난과 예속과 죽음이다.
나는 꼭 꿈에서 깨어난 것 같았다. (P.224)
우리는 흔히 사디즘과 마조히즘을 변태 성애라 지칭한다. 변태는 올바르고 바람직한 정상적인 성애를 암묵적으로 전제하고 있다. 사랑의 감정과 행위에 있어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기준이 무엇일까. 단순히 개인적, 사회적 도덕 감정에 저촉하는지 여부를 적용하면 괜찮은가. 이의 위배는 교정과 훈육의 대상으로 간주해야 하는가.
사랑은 미덕이나 이익 같은 것을 따지지 않는다. 사랑은 사랑하고 용서하고 모든 것을 참는다. 그것은 그렇게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우리를 이끄는 것은 달콤하고 멜랑콜리하고 신비로운 힘이다. 그때 우리는 생각하고 느끼고 원하기를 그친다. 우리는 그저 그 신비로운 힘에 이끌려 떠돌지만 어디로 가는지는 묻지 않는다. (P.104)
작가는 사랑의 맹목성을 인정한다. 이성과 도덕률로 사랑을 제어할 수 있었다면 인류 역사는 전혀 다른 길을 걸었을 것이며, 문학과 예술은 무미건조한 장르로 낙후되었으리라. 그렇기에 채찍질에도 황홀감을 느끼며 더 많은 학대를 갈구하는 제베린을 섣불리 비판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녀의 초상화를 그린 독일 화가는 반다를 마녀로 부르는데, 비난보다는 경외와 찬탄, 그리고 저항할 수 없는 매혹을 압축한 표현으로 봐야 한다.
19세기 후반에 이런 내용의 소설을 썼으니 확실히 센세이셔널하다. 요즘이야 워낙 자극적인 내용이 각종 매체에서 난무하는 시절이지만, 작가의 표현은 전혀 시대에 뒤처지지 않는다. 사드 후작과 달리 자허마조흐는 이 작품 하나로 불후의 명성을 얻었다. 비록 자신으로서는 사디즘과 나란히 불리는 것에 불만스럽겠지만 값어치는 충분하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