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2세 아침이슬 셰익스피어 전집 15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김정환 옮김 / 아침이슬 / 201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역사적으로 리처드 2세는 플랜타저넷 왕가의 마지막 왕으로 랭커스터 왕가의 헨리 4세에게 왕위를 뺏기는 비운의 군주다. 이 희곡에서도 리처드 왕은 귀족, 평민들에게 모두 미움을 받는 폭정의 임금으로 지칭된다. 작품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극중에서 리처드 왕의 악정은 등장인물들의 전언에 의존한다. 왕 자신의 말과 행동에서는 별달리 폭군의 징조를 발견할 수 없다. 극중에서 유일하고 가장 큰 잘못은 삼촌 고온트의 존의 사망에 따른 상속권을 추방당한 볼링브루크에 넘기지 않고 몰수하려고 한 행동이다. 이것이 결국 그의 몰락의 계기가 되는데, 깊이 생각해볼 여지가 많다.

 

셰익스피어 자신도 헨리 4세의 왕권 찬탈이 그렇게 정당하지 못하다고 판단한 듯하다. 헨리 5세는 훗날 리처드 왕의 무덤에서 부왕의 잘못을 눈물을 흘리며 사죄한다. 솔즈베리 백작, 스크로우프 경, 칼라일 주교가 리처드 왕의 편을 든 것은 그가 단순히 왕이어서가 아니라 왕으로서의 정당성과 정통성을 보유하고 있음을 인정해서이다. 역으로 볼링브루크는 이 두 가지가 부족하다는 뜻이다. 볼링브루크는 전적으로 노섬벌랜드를 비롯한 타 귀족들의 도움으로 왕권을 차지할 수 있었고, 자신이 충성을 서약한 왕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왕좌를 차지하였다. 더욱이 엑스터 경을 사주하여 리처드 왕을 살해한다.

 

(칼라일 주교) 여기 고귀한 분들 중 누구든 / 고귀한 리처드를 올바르게 심판하실 만큼/ 참으로 고귀하시다면 좋겠죠. 계시더라도 그분은 스스로의 고귀함으로 / 깨달으실 것이오, 이렇게 더러운 범죄를 저지르면 안 된다는 것을. / 어떤 신하가 자신의 왕에게 언도를 내릴 수 있답니까? / 그리고 여기 앉아 계신 분 중 리처드의 신하 아닌 사람 그 누굽니까? (P.118, 41)

 

리처드 왕은 귀족들간 세력다툼의 희생양이다. 작품 서두는 모브레이와 볼링브루크의 상호 반역 고발로 시작한다. 누가 진정한 반역자인지 리처드 왕은 판정을 내려야 한다. 당대의 관습대로 양자 간 결투를 통해 승자의 정의를 인정할 수 있겠지만, 리처드 왕은 두 사람의 추방으로 처리한다. 모브레이는 영구 추방을, 볼링브루크는 6년 추방을 명한 것을 보면 사촌에 대한 상당한 배려라고 볼 수 있다. 12장 고온트의 존 대사를 통해 이들의 갈등 배경에는 리처드 왕의 또 다른 삼촌 글로스터의 죽음이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누가 글로스터를 죽였는가, 그리고 무엇 때문에? 리처드 왕은 왜 고온트의 존의 재산을 몰수하였는가, 단지 전쟁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서?

 

(리처드 왕) 마치 짐의 잉글랜드가 계약 만료되면 자기[볼링브루크] 것이고, / 자기가 짐의 백성들이 생각하는 왕위 계승자라는 듯이. (P.40, 14)

 

다시 역사를 찾아보면 리처드 왕과 삼촌 간 사이가 좋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다. 고온트의 존, 글로스터는 어린 조카를 꼭두각시로 삼고 자신들을 포함한 귀족층의 지위와 세력을 확대하려고 하며, 성인이 된 리처드는 왕권 강화를 시도한다. 이런 해묵은 갈등이 고온트의 존이 죽기 직전에 리처드에게 폭언을 퍼부은 배경인 동시에 리처드가 무리해서라도 볼링브루크의 상속권을 박탈한 이유일 것이다. 볼링브루크가 반기를 들자마자 거의 모든 귀족이 그에게 합류한 까닭을 알 수 있으며, 비교적 중립적인 삼촌 요크 공작조차 후반에는 볼링브루크 편에 은근슬쩍 마지못한 듯 합세한다.

 

이렇게 볼 때 모브레이와 볼링브루크의 갈등은 재해석할 여지가 있다. 모브레이가 충신이었음과 볼링브루크의 정체를 꿰뚫어 본 혜안을. 모브레이는 영구 추방이라는 차별적 조치의 치욕과 불명예를 군말 없이 감수한다. 외국에서 왕을 원망하고 반란을 획책하기는커녕 이교도와의 성스러운 전쟁에 자신의 목숨을 바쳤다.

 

(모브레이) 만에 하나 내가 반역자였다면, / 영생의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도 좋다, / 여기서 그렇듯 하늘에서 추방되어도 좋고. / 그러나 너의 정체는, 정말, 네가, 그리고 내가 잘 알지, / 너무도 이르게 왕께서 후회하실까 봐 걱정이다. (P.33, 13)

 

여기서 볼링브루크가 왕의 추방령을 어기며 군대를 이끌고 잉글랜드에 상륙한 상황을 살펴본다. 자신의 상속권이 박탈되었으니 그로서는 당연히 화가 날 것이고 자신의 권리를 회복해야겠다는 동기도 충분히 인정할만하다. 공식적인 거병 사유도 자신의 권리 회복에 있다고 반복해서 주창한다. 23장과 33장에서 자신과 노섬벌랜드의 입을 통해. 이후 리처드 왕에게 확실한 세력적 우위를 확보하게 되자 그 자신과 추종세력의 태도는 완전히 바뀐다. 노섬벌랜드는 실수인 척 리처드 왕의 왕 호칭을 생략하고 말한다. 볼링브루크는 요크 공작이 리처드의 양위 의사를 전달하자마자 일말의 사양도 없이 기다렸다는 듯이 덥석 수용 의사를 밝힌다. 그리고 양위 의사가 리처드 왕의 자발성에서 나온 것이 아님을 알고 있으면서도 뻔뻔스럽게 반문한다.

 

(볼링브루크) 하나님의 이름으로 내가 왕의 권좌에 오르겠소. (P.117, 41)

 

(볼링브루크) 자진하여 물려주는 걸로 알고 있었습니다만. (P.121, 41)

 

독자는 볼링브루크의 일련의 언행을 통해 상속권 회복은 표면적 주장에 불과할 뿐 리처드를 무너뜨리고 왕권을 쟁취할 의도를 처음부터 품고 있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헨리 왕의 이중성과 위선적 면모는 엑스턴을 교사하여 리처드를 살인하도록 한 행위를 통해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엑스턴의 입장에서는 당혹스러우리라. 왕의 명령을 좇아 리처드를 죽였건만 돌아온 건 온통 비난뿐. 살인 지시는 했지만 그렇더라도 살인자는 인정할 수 없다는 논리는 무엇인가? 토사구팽인가.

 

(엑스턴) 폐하 자신의 구두 지시를 받고 저는, 폐하, 이 일을 감행한 것입니다.

(헨리 왕) 독약이 필요한 것이지 독약을 사랑하는 것은 아닌 것, / 내가 그대를 좋아하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다. 내 비록 그가 죽기를 바랐지만, / 난 살인자를 증오하고, 살해된 그를 사랑한다. (P.162, 56)

 

작가는 귀족들, 리처드 왕의 부하들, 그리고 정원사 같은 평범한 인물들의 대사를 통해 리처드 왕이 학정과 실정을 자행하고 있음을 계속하여 상기시킨다. 정원사의 말대로 리처드가 자신의 나라를 다듬고 재배하지 않은”(P.107, 34) 잘못을 부정하지는 못할 것이다. 이것을 리처드 혼자만의 잘못으로 치부하는 건 곤란하다. 그는 실권을 틀어쥔 자신의 반대세력, 잉글랜드와 왕보다는 사욕에 더 매진하는 그들과의 싸움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이런 잘못이 헨리 볼링브루크의 찬역을 정당화하지 못한다.

 

랭커스터 왕가에 장밋빛 미래가 약속되지 않음을 셰익스피어는 리처드 왕과 칼라일 주교의 예언을 통해 똑똑히 보여준다. 헨리 왕의 특등공신인 노섬벌랜드가 고분고분 볼링브루크에게 복종하지 않고 반역을 꾀할 것을, 칼라일 주교는 왕권을 노리는 귀족들의 잇따른 배신과 분열이 훗날 장미전쟁을 초래할 것을 각각 암시한다.

 

(칼라일 주교) 여기 있는 해러포드 경은, 당신들이 왕이라 부르지만, / 더러운 반역자요, 해러포드의 위풍당당한 왕께. / [......] / , 만일 당신들이 이 가문을 키워 이 가문에 맞세우면 / 그건 이 저주받은 대지에 내린 / 가장 비통한 분열로 드러날 거요! (P.119, 41)

 

5막은 요크 공작과 공작부인, 그들의 아들인 오멀 공작의 촌극으로 점철한다. 작가는 굳이 여기서 요크 공작 가족의 일화를 끼워 넣었을까? 요크는 리처드 왕의 신임을 받고 섭정이 되었지만 헨리에게 돌아서고 그에게 충성을 맹세한다. 오멀은 시종일관 리처드에게 충성하고자 노력한다. 리처드 왕 복위 시도를 알아차린 요크가 아들을 반역자라고 퍼붓는 대목은 23장에서 볼링브루크와 귀족 일당을 반역자라고 매도하는 장면과 역설적으로 대비된다. 오멀은 자신의 목숨과 가문을 위해 헨리에게 굴복하지만, 반역의 기준이 무엇이고 참다운 정의가 무엇인지 새삼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1년여 전 <햄릿>으로 시작한 셰익스피어 희곡 전 작품 읽기를 이제 마친다. 일생에 한 번은 시간을 들여 셰익스피어 전집을 읽어볼 가치가 있다는 문구를 떠올리며 시작했는데 확실히 그럴만하다고 동의한다. 대중적인 비극과 희극을 새롭게 음미하는 시간이었으며, 무엇보다 생소한 작품을 통해 셰익스피어의 미처 알지 못한 세계를 보는 기쁨도 컸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리처드 2>로 대단원을 끝내는 것도 훨씬 의미가 깊다. 집필 시기적, 연대기적으로 그의 최후 역사극은 <헨리 8>이지만, 강요된 인위적 화해와 밝음의 분위기는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헨리 볼링브루크의 찬탈이 야기시킨 장미전쟁의 여파를 감안하면 <리처드 2>의 어둡고 비극적 분위기가 더욱 그럴듯하다.

 

작품해설에서 중대한 오류 하나만 지적하고 끝낸다.

 

헨리 3세의 세 아들 모두 왕에 오르니, 에드워드 1(치세 1272~1307), 에드워드 2(치세 1307~27), 에드워드 3(치세 1327~77)가 그들이고 에드워드 3세는 아들 일곱을 두게 되는데, (P.171-172)

 

헨리 3세의 아들은 에드워드 1세다. 에드워드 2세는 에드워드 1세의 아들이고, 에드워드 3세는 에드워드 2세의 아들이다. 즉 에드워드 3세는 헨리 3세의 증손자이다. 리처드 2세는 다시 에드워드 3세의 장손이다. 혹시나 하여 바로잡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