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4세 2부 아침이슬 셰익스피어 전집 17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김정환 옮김 / 아침이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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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에서 핫스퍼 일당에 승리를 거두었지만, 헨리 4세가 아직 반란세력을 완전히 제거한 것은 아니다. 여기 2부에서 헨리 왕과 왕자들, 즉 헨리 왕세자와 존 왕자는 각기 반란세력을 물리치기 위해 전장에 나선다. 그리고 존 폴스타프다. 1부에서 헨리 왕세자와 존 경의 관계는 매우 돈독하다. 물론 왕세자는 자신의 행위가 개선될 여지가 있음을 암시하지만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2부의 주요 관전 포인트는 양자 사이의 관계가 어떤 식으로 전개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퍼시 부인) 핫스퍼의 이름 소리 말고는 아무것도 / 방어력이 없던 곳에서, 그렇게 아버님은 그를 버렸습니다. (P.59, 23)

 

핫스퍼의 패배가 불러일으킨 파장은 반란세력의 성패에 큰 영향을 끼친다. 그의 아버지 노섬벌랜드 백작과, 요크 대주교, 헤이스팅스 경이 핫스퍼에 합류하지 않은 까닭은 극중에서 분명치 않다. 제아무리 용맹하더라도 중과부적은 당할 수 없는 법, 모튼과 퍼시 부인이 비난 조로 말했듯 반란세력 최고의 전사를 방치한 셈이나 다를 바 없었다. 노섬벌랜드 백작은 후에 요크 대주교와 헤이스팅스 경에게도 마찬가지로 합류하지 않는다. 반란세력의 내부분열은 결국 헨리 왕이 각개격파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제공해 준 것이니 마찬가지. 요크 대주교와 헤이스팅스 경은 세력의 열세를 절감하고 자신들의 사면과 요구 사항의 수용을 조건으로 항복한다. 마뜩잖아하는 모브레이 경을 다독인 결과, 그들에게 체포와 처형이 눈앞에서 기다린다. 웨스트모얼랜드 경과 존 왕자를 기만술을 썼다는 연유로 비난할 수 있겠지만, 전쟁은 선악과 시비로 판단할 수 없는 현상이다.

 

존 폴스타프 경의 광기 어린 난잡한 행동은 2부에서 한층 심하다. 폴스타프에게 해리 왕세자는 친구라기보다 가치 있는 어수룩한 이용대상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왕세자가 없는 곳에서 그에 대한 무시와 험담을 아무렇지 않게 뱉는다. 폴스타프의 위선은 미세스 퀴클리와의 허위 결혼 약속에서도 드러나며, 원초적 욕망을 본능적으로 좇는 모습은 창녀 티어시트와의 관계에서 확인할 수 있다. 뇌물을 받고 징집 대상자를 바꾸는 장면이라든가, 어리숙한 섈로우에게 돈을 뜯어대는 행위 등 1부와 마찬가지로 2부에서도 그의 부도덕성과 위법성은 더욱 강화된다. 작가는 이런 폴스타프와 어울리는 왕세자의 행동이 본질에 있어서 전혀 다르다는 것을 워릭 백작의 옹호를 통해 독자에게 보여준다.

 

(워릭) 왕세자께서는 아주 적당한 시기 / 내팽개치실 겁니다 그 추종자들을, 그리고 그들의 기억은 / 살아 있는 표본 혹은 잣대로 되는 겁니다. / 그것으로 왕세자께서 다른 이들의 삶을 평가하시는, / 전화위복이 따로 없을 겁니다. (P.129, 43)

 

어쨌든 우리는 2부의 존 폴스타프에게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1부에서 참신하게 다가왔던 그의 악행과 파격적 면모에 비해 2부의 그는 특별함 없는 망나니에 불과하다. 사람은 자극에 익숙해지기 쉬운 탓인가, 존 경은 달라진 게 없건만 폴스타프를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은 초심과 같지 않다.

 

(해리 왕세자) 내가 이 쥐젖 같은 자[폴스타프]한테 곁을 허락한 건 맞는데, 애견처럼 친하게 굴게 해 주었단 말이지, 그랬더니 이자가 아예 그 자리를 뭉개고 드는군, 뭐라고 썼나 한번 보게. (P.53, 22)

 

2부에서 존 폴스타프를 향한 해리 왕세자의 감정 변화가 두드러지게 감지된다. 폴스타프 못지않게 해리 왕세자 역시 그를 향한 자신의 행위가 다분히 의도적이었음을 표출한다. 왕세자 또한 폴스타프를 이용해 먹은 셈이다. 자신의 욕망 실현과 훗날 개과천선의 극적인 기대효과를 염두에 두면서. 내심을 이미 전환한 2부에서 존 경을 향한 왕세자의 인식은 차갑기 그지없다. 특히 왕이 된 해리에게 출세를 기대하고 열렬히 달려온 폴스타프를 향한 해리 왕의 대응은 존 경의 입장에서는 당황스럽고 모멸감마저 느낄 정도다.

 

(해리 왕) 난 당신을 모른다, 늙은이. 기도나 하거라. / 정말 꼴불견이구나, 백발의 바보 광대라니! / 오랫동안 꿈을 꾸었지, 이런 따위 인간, / 이토록 과잉 팽창한, 이토록 늙고, 이토록 불경한 인간 꿈을, / 하지만 잠에서 깨어난 나는, 정말 경멸한다 나의 꿈을. (P.168, 55)

 

해리 왕세자와의 관계에 있어 폴스타프와 대조적인 인물이 있으니 수석 재판관이다. 그는 시종 폴스타프와 왕세자를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그의 법률 시행에 있어 왕세자는 특별 대상이 아니다. 솔직히 수석 재판관의 판단과 태도는 전적으로 옳다. 따라서 해리 왕세자가 해리 왕으로 즉위한 시점에서 가장 안타까움과 동정의 대상이 되는 인물은 수석 재판관이다. 해리 왕의 동생인 존 왕자와 클래런스 공작은 수석 재판관에 동정을 표한다. 그럼에도 수석 재판관은 의연하다. 자신의 행동은 사적인 감정이 아니라 직위에 충실하고 왕의 제도를 준수하기 위한 것이라고 언명한다. 이쯤에서 극적인 흐름과 대중의 기호에 부응하려면 해리 왕세자의 대승적 포용이 필요하다.

 

(해리 왕세자) 그 보답으로 나는 진정 맡기겠소 경의 손에 / 때 묻지 않은 칼, 경께서 익히 지니셨던 그것을, / 이 점을 상기시키며, 경께서 바로 그것을, / 나에게 겨눴던 바로 그 용감하고, 정의롭고, / 불편부당한 정신으로 써 달라는 것. 내 손을 잡으시오. (P.155, 52)

 

이 작품은 후속작에 대한 암시를 가리키는 대목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앞서 읽은 <헨리 6> 삼부작에 따르면 프랑스에 대한 대대적 정복전을 감행한 왕이 바로 헨리 5세다. 헨리 5세의 선택은 단순한 계기와 즉흥적 충동이 아니다. 임종을 앞둔 아버지 헨리 4세의 충고와 왕의 열정을 이끌어낸 인물이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다.

 

(헨리 왕) 그러니, 나의 해리, / 너는 앞으로 들썩이는 마음들을 바쁘게 만들도록 하라, / 외국과의 분쟁으로, 그러면 부담해야 할 군사 작전이 / 지워 버릴 것이다, 예전의 기억들을. (P.142, 43)

 

(존 왕자) 내 내기를 걸겠소, 올해가 다 가기 전에, / 우리는 가져가게 됩니다, 우리 내전의 칼과 토박이 열정을 / 멀리 프랑스까지. 새 한 마리 그렇게 노래하는 것 내가 들었는데, / 그 음악이, 내 생각에, 국왕 마음에 든 듯하오. (P.171, 55)

 

이 작품은 전 5막 구성에 앞뒤로 <도입><에필로그>가 곁들인 형식을 지니고 있다. 특히 에필로그는 차기작에서 폴스타프의 장래를 예고하고 있는데, 그의 죽음이 예정되어 있음을 알려준다. 아래와 같이.

 

여러분께서 뚱뚱한 고깃덩어리에 너무 물리신 게 아니라면, 우리의 겸손한 작가는 존 경을 계속 등장시키고, 프랑스 미인 카트린느로 여러분을 즐겁게 해드릴 겁니다. 그 프랑스에서, 제가 아는 바로는, 폴스타프가 죽게 되지요 땀을 흘리는 성병으로-여러분의 혹평으로 그가 이미 살해된 게 아니라면. (P.173)

 

하지만 후속작인 <헨리 5>에서 폴스타프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의 죽음은 전언을 통해 극중에 알려질 뿐이다. <에필로그>와 실제 후속작 간의 간극은 어디에서 기인할까. 작가는 애초 폴스타프를 한 번 더 써먹을 생각이었음은 분명하다. 1부의 열광적 호응과는 달리 예상보다 2부에서 그에 대한 반응이 썩 좋지 않자 후속작에서 아예 등장시키지 않았던 게 아닐까. 셰익스피어 또한 존 폴스타프의 인물과 역할이 2부에서 애매하게 변질되었음을 깨달았으리라. 해리 왕세자뿐만 아니라 독자들의 냉엄한 반응이야말로 존 폴스타프가 더는 생존의 의미를 갖지 못하게 된 원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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