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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이기 ㅣ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조충지 지음, 김장환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4년 1월
평점 :
조충지의 <술이기>는 위진남북조시대 남제의 대표적인 지괴소설(P.159)이다. 시기적으로는 앞서 읽은 <열이전>과 <수신기>보다는 후대에 지어졌으며, 작품해설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수록된 총 95조의 고사 중 거의 대부분이 다른 책과 중복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 책은 <수신기>를 시기적으로 보완하는 장점이 있다.
초반부의 고사는 신기한 지역을 소개하는 등 박물지 성격을 띠고 있으며, 중반부에 이르러서 비로소 위진남북조시대를 다루고 있는데 대체로 연도와 인물을 명기하고 있어 지괴라기보다는 당해 시기의 비사와 일화를 읽는 기분이다.
전대의 지괴소설과 뚜렷이 구별되는 점은 불교의 영향이 강하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순괴 고사(P.126)처럼 종래의 신선, 선인 및 도사 등도 소수 등장하지만 법사, 부처님, 불경 등에 대한 언급 및 신통력이 더욱 강력하다. 백도유 고사(P.15)에서 자신이 머무는 산에 자리 잡은 법사를 쫓아내기 위해 노력하는 산신은 방법이 통하지 않자 어쩔 수 없이 그 산을 법사에게 양보하고 자신은 슬퍼하며 다른 지역으로 떠나간다. 호비지 고사(P.89)를 보면 소란을 피우는 귀신에게 맞대응한 게 무례했다고 지적받고 부처에게 귀의해야 무사할 수 있다고 한다. 나여의 부인 비씨 고사(P.155)에서 죽을병에 걸린 비씨는 오랫동안 법화경을 열심히 독송하였으니 부처의 가호로 자신이 죽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는다. 신령과 부처가 공존하는 현실 속에서 도교보다 불교의 위력이 큼을 가시적으로 보여줌으로써 불법의 능력과 정당성을 알리려는 의도가 드러난다.
산신이 직접 그를 찾아가서 말했다.
“법사님의 위덕이 이토록 높으시니 지금 이 산을 당신께 드리고 이 제자는 달리 의탁할 곳을 찾아보겠습니다.” (백도유, P.15)
이 책은 착한 귀신과 올바른 저승 세계에 대한 묘사가 많지 않다. 황묘 고사(P.60)를 보면 신령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은 황묘에게 벌을 주는 것은 그렇다 해도 괜히 30명이 억울하게 목숨을 잃게 만들고 황묘는 목숨을 부지하게 하는 신령의 처사는 납득 불가이다. 진민 고사(P.133)처럼 진민에게만 피해를 주는 게 그나마 깔끔한 조처라는 생각이다. 어쨌든 자신에 대한 약속 위반자에게 무자비한 벌칙을 내리는 궁정묘 신령은 사람들과 가까이하기 어려운 존재다. 이런 귀신이라면 굴복하기보다는 맞서 싸우고 물리치는 자세도 나쁘지 않다. 부양 사람 왕 아무개 고사(P.68)에서 귀신 산소는 자신을 풀어달라고 애원하고 이름을 알려달라고 간청해도 소용없이 불에 타죽는다. 잡귀의 출몰을 목도하고 자신을 위협하는 귀신을 끝내 물리친 박소지 고사(P.78)도 귀신에 겁먹지 않고 의연함을 잃지 않는 전형이다.
당시 사람들에게 저승은 이승과 별반 다르지 않은 듯하다. 생전의 잘못이 드러나고 처벌받는 사후세계라면 응당 엄정해야 하겠지만, 비경백 고사(P.99)에 따르면 저승사자도 인정과 대접에 약한 면모를 보이며, 뇌물도 유효적절하게 통하는 모습(영천 사람 유 아무개 고사, P.102)을 볼 수 있다. 게다가 이승에서 유능한 관리를 저승 세계도 탐을 내 관리로 데려가고자 하는 대목(조종지 고사, P.83)도 확인할 수 있다. 그럼에도 사람과 귀신 간에는 엄격한 구별이 있으니 유막의 연인이었던 죽은 여인 곽응의 대답을 통해 알게 한다.
“사람과 귀신은 길이 다르니 날 생각하는 수고는 하지 마세요.” (유막, P.136)
귀신, 사람, 동물 구분할 것 없이 자신에게 잘해주는 상대에게 선을, 괴롭히는 상대에게 악을 베풀고자 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충견인 황이 고사(P.23)가 전자라면, 석현도 고사(P.71)와 오고지 고사(P.146)는 후자의 사례다. 잡아먹힌 새끼를 그리워하며 울부짖는 어미 개의 모성애를 생각하며 석현도의 병이 나을 수 없는 까닭을 짐작게 하며, 새끼 밴 어미 원숭이를 잔혹하게 죽인 오고지가 신령의 노여움을 사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것은 사필귀정이다. 호랑이가 된 태수(봉소 고사, P.20)에서 ‘봉사군’이 호랑이를 지칭하는 명칭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하는데, 어쨌든 봉소에 대한 평가가 세인에게 좋지 않았음을 당시 사람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봉사군은 되지 말지니, 살아서는 백성을 다스리지 않고 죽어서는 백성을 잡아먹는다.” (봉소, P.20)
마지막으로 흐뭇하고 긍정적인 내용도 하나 덧붙인다면, 비견인 고사(P.21)가 그러하다. 비견인(比肩人)은 비익조와 연리지와 같은 의미로 애정 깊은 부부를 지칭한다.
이 책이 더욱 특징적으로 인식되는 사유는 지은이의 독특한 배경 때문이다. 조충지는 단순한 문인이 아니다. 작품해설에 따르면 그는 당대의 저명한 수학자, 천문학자, 과학자이자 발명가라고 한다. 원주율을 소수점 7자리 이하까지 계산하고 전문 수학 서적을 썼으며, 새로운 역법인 대명력을 제작하였고, 지남거(나침반 수레), 수대마(물레방아), 천리선(쾌속선) 등을 발명하였다고 하니 보통 능력자가 아니다. 이러한 작자가 지괴 작품을 지었으니 허투루 넘길 게 아니다. 귀신 세계의 실존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바탕에 깔린 게 아니었을까?
당시에는 대체로 명계(冥界)와 인간 세계가 비록 그 존재하는 방식은 다르지만, 사람이나 귀신이 모두 실재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기이한 일을 서술하는 것과 인간세계의 일상사를 기록하는 것에 대해서 진실과 허망함의 구별이 없다고 보았던 것이다. (P.168)
인용한 루쉰의 발언처럼 당대인들은 귀신 세계 또는 저승 세계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었다. 이를 유치하고 야만적이며 비이성적이라고 매도할 수 없다. 현대의 우리도 꿈과 환상, 이성과 과학이 설명하지 못하는 많은 영역을 알고 있지 않은가. 차라리 그네들의 생각을 그대로 인정할 때 우리가 위진남북조시대 지괴소설의 참된 즐거움과 매력을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