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이전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조비 지음, 김장환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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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수록한 내용보다도 책 자체가 흥미를 끈다. 실린 고사의 수도 많지 않고 그나마 대체로 짤막한 이야기라서 후대의 것과 비교하면 부족한 느낌이 들 수도 있지만 위진남북조 시대 최초의 지괴소설집이라는 문학사적 의의를 참작하면 납득할 만하다. 게다가 내용 자체도 별다른 꾸밈이나 과장 없이 진솔하게 사건을 전달하고 있어 오히려 질박한 감흥을 준다. 지은이도 유명한 조조의 아들인 조비다. 동생을 괴롭히는 악역 군주 정도로 알려져 있지만, 그는 조조와 함께 당대의 유명한 문인이다. 반대 의견도 있는데, <박물지>로 유명한 장화라는 설도 있다. 옮긴이의 의견에 따르면 원작은 조비이고, 장화가 속작한 걸로 추정할 수 있다.

 

<열이전>에는 귀신, 요괴, 신선, 도술, 저승, 유혼(幽婚), 기이한 물건, 재생, 변신, 민간전설 등의 다양한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는데, 이는 이후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위진남북조 지괴소설의 전형적인 내용이 된다. (P.107)

 

기억에 남는 몇 편을 언급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요괴가 등장하는 고사인데, 초왕의 딸을 치료한 노소천 고사(P.16)에서 뱀 요괴가 노소천에게 대접한 음식과 돈은 모두 관청에서 훔친 것임이 나중에 드러난다. 노소천이 뱀 요괴의 제안에 응하였다면 골치 아프게 되었을 것이다.

 

주류를 이루는 유형은 귀신과 저승이 나오는 고사들이다. 죽어서 누명을 쓰자 귀신으로 나타나 자신의 누명을 벗긴 선우기 고사(P.23)는 오죽 억울했으면 대낮에 귀신이 나타나서 장부를 확인하고 상소를 올릴까 하는 안타까움이 든다. 장제의 아들 고사(P.49)<수신기>에도 나온 이야기인데, 저승에서도 지위 고하가 있고, 청탁의 효력이 여전하여 저승도 이승과 별 차이가 없음을 알게 해준다. 역시 사람들의 상상력은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유명한 담생 고사(P.77)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부인이 마른 뼈만 있는 하체로 어떻게 부부 관계를 하였고 아들을 낳았는지 의심스러울 따름이다. 우연히 신계에 들어가고 마침내 죽은 아내를 되살린 채지 고사 (P.81)도 흥미롭다.

 

신선에 대한 호기심은 당대에 널리 퍼진 듯하다. 비장방 고사가 3, 진절방 고사가 2, 채경 고사 2편이 실려있다. 초월적 존재로서 신선보다는 인간적 면모에 가까운 선인들인데, 비장방 같은 경우 주석에 따르면 스스로 신선이 된 것이 아니라 신선의 부적을 얻어서 귀신을 제압했다고 한다. 다만 나중에 부적을 잃어버려 귀신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하니 딱하다.

 

사슴으로 변한 팽씨 고사(P.63)에서 아버지는 갑자기 땅에 쓰러지더니 문득 흰 사슴으로 변신한다. 아버지는 무슨 까닭으로 사슴으로 변신했을까? 사슴으로 변신은 본인의 의사였을까? 아버지에게 이미 사슴의 본성이 내재한 것은 아니었을까? 사슴으로 변한 아버지는 행복하였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끔 만드는 이야기다.

 

생사의 일은 쉽게 말할 수 없고, 귀신의 일은 사람이 알 바가 아니다.” (P.19)

 

죽었다가 되살아난 공손달의 혼령이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다. 인간은 귀신의 세계를 이해할 수 없다. 그것이 자연의 이치다. 산자는 이승에서, 죽은자는 저승에서 각기 맡은 소임을 수행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죽은자에게 정성을 다하고 떳떳한 마음을 지닌 포선과 자손의 영달 고사(P.31)은 이것을 보여준다. 쥐가 아무리 왕주남에게 저주를 반복해서 말해도 미동도 하지 않자 결국 쥐 자신이 거꾸러져 죽는 왕주남 고사(P.92)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가짐이 중요함을 알려준다.

 

<열이전>은 위진남북조 최초의 지괴소설로서 후대 지괴소설에 많은 영향을 미쳤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동진 간보의 <수신기>. 현재 <수신기>에는 <열이전>의 고사 25조가 채록되어 있는데, 일부 고사는 그대로 전록되어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본래 고사보다 훨씬 편폭이 길고 구성이 짜임새 있으며 문학성이 높게 묘사되어 있다. (P.108)

 

이 책의 원서는 일찌감치 잃어버렸고, 현재는 다른 책에서 실린 이야기를 수집하여 재구성된 것으로 총 51조만 전한다고 한다. 따라서 이 책 자체만의 독자적인 이야기는 없으며 다른 책과 중첩되는 이야기들이다. 주로 <태평광기>가 출전이며, 그 외 앞서 읽은 <수신기><열선전> 등이 언급된다. 특히 <수신기><열이전>의 영향을 많이 받은 작품으로 평가받는데, 확실히 <수신기>에 실린 내용이 이야기로서 세부적 구성과 완결성을 지니고 있어 지괴의 발전을 비교해 볼 수 있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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