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신기 - 신화란 무엇인가 인문플러스 동양고전 100선
간보 지음, 임대근 외 옮김 / 동아일보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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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위진남북조시대의 대표적인 지괴소설집이다. 지괴 설화가 다루고 있는 귀신, 신선, 도사, 초자연적이거나 비현실적인 거의 모든 유형의 이야기가 이 책에 수록되어 있다. 원래 <수신기> 전체를 다 읽어볼 의도는 없었고, <수신기, 괴담의 문화사> 정도의 개략과 해설로 만족하려는 생각이었다. 막상 그 책을 읽고 나니 전체 이야기가 궁금해져 다소간 반복적이고 지루한 내용이 있을 것을 각오하고 결국 이 책을 펼치게 되었다. 시중에는 <수신기>의 네 가지 번역본이 나와 있다. 전병구(자유문고), 임동석(동문선/동서문화사), 도경일(세계사), 그리고 이 책이다. 전병구 판과 도경일 판은 나온 지 오래되었고, 임동석(동서문화사) 판은 이야기 내용보다는 원문과 주석 등 한문 번역과 해석에 관심 있는 이에게 적합한 유형으로 판단되어 이 책을 선택하였다. 이 책은 원문을 수록하지 않고 있으며, <수신기> 내용 자체를 현대 독자들에게 흥미롭게 전달하는 데 주력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초심자를 배려하고 있다.

 

이 책의 이야기는 신기한 일이 허황된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충분히 말해준다. (P.9)

 

당대의 저명한 유학자가 신기한 이야기 모음’(P.5) 책을 만들어 낸 까닭에 대해서는 <서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간보는 기이하고 신기한 이야기에 열린 자세를 보인다. 신기한 일이 반드시 터무니없고 근거 없는 것으로 일방적으로 치부할 수 없다는 견해다. 당시의 상식과 문명 수준에서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먼 훗날 현실화하고 과학적으로 증명되는 사례는 역사적으로 적지 않다. 따라서 지은이가 이 책에 실린 모든 이야기를 개연성이 있다고 믿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완전히 허무맹랑하다고 간주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으며, 이는 그 당시 식자층의 일반적 견해에 해당할 것이다.

 

20권에 기록한 수백 편의 이야기는 역사적 인물과 관련된 일화도 제법 많다. 조조와 좌자(P.31), 조조와 원소(P.441) 설화가 그러하다. 죽은 원소가 도삭군이라는 신령이 되었는데, 조조에게 죽임을 당하는 장면을 보면 살아서와 죽어서 모두 조조에게 패배하는 원소가 딱할 지경이다. 공자의 이야기도 있다. 공자가 사후 수백 년 뒤에 일어날 일을 상세하게 예언(P.70, P.231)하는 사례는 공자의 권위에 기대려는 마음일 것이다. 괴력난신을 언급하지 않은 공자가 설화에서 천연덕스럽게 귀신과 도깨비의 이치를 설파하는 대목(P.318, P.488)은 일종의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다.

 

육축(六畜)과 거북, , 물고기, 자라, , 나무 등은 오래되면 신령이 붙어 요괴로 변한다. 그래서 오유(五酉)라고 했다. 오유는 오행의 다섯 방위마다 그에 상응하는 요괴가 있다는 것이다. ()는 오래되었다는 뜻이다. (P.488)

 

신기한 자연현상은 사람의 마음을 불안하게 만든다. 일식과 월식을 군주의 품행에 결부시킨다거나 가뭄과 폭우에 대해 임금 또는 지방관이 하늘에 빌거나 하는 등, 사람 또는 가축이 기형을 출산하거나 죽은 사람이 되살아나고 남자와 여자의 성이 바뀌는 사례의 함의를 찾으려는 노력 등은 그것이 자연이 인간에게 보여주려는 어떤 행동에 대한 징조로 해석하고 있음을 이 책의 이야기는 잘 보여준다. 자연과 인간은 별개가 아니라 서로 긴밀하게 연관된 존재이어서다. 따라서 자연의 변괴는 인간 세상의 재앙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니 어찌 허투루 넘길 수 있겠는가. 또한 남녀관계, 신분질서, 하다못해 패션에 있어서 인간 사회의 기존 질서에 어긋나는 현상도 역시 재앙을 가져온다. 이것이 당대인의 전통적 해석이다.

 

여러 제후와 패악한 수장들이 천자의 권위를 침탈하거나 나눠 가지면 수말이 망아지를 낳는 해괴한 일이 일어난다. 위에 천자가 없고 제후들이 서로 전쟁을 벌이면 말이 사람을 낳는 괴변이 생긴다.” (P.149)

 

음기가 극에 달해 양기로 변했으니, 이는 신분이 낮은 이가 높은 자리에 오를 징조다.”

그 뒤 조조가 벼슬도 없는 평범한 신분에서 시작해 훗날 결국 왕업을 일으켰다. (P.184)

 

이 책에서 소개하는 거의 모든 이야기는 시대와 등장인물의 이름을 밝히고 있어 상당한 역사적 개연성을 보여준다. 얼핏 읽으면 사실로 받아들이기에 십상이다. 게다가 등장인물은 대부분 역사적 실존 인물이니 우리가 잘 모르는 숨은 일화로 생각하기 딱 좋다. 점을 잘 치는 순우지와 곽박의 고사라든지 유명한 의사인 화타의 고사가 그러하다. 장자문, 즉 장후가 등장하는 5’의 여러 편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박물지>의 저자인 장화에게 도전한 천년 묵은 여우의 비참한 최후(P.460)는 당대에 박학다식으로 유명한 장화의 존재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수신기>에 실린 모든 이야기를 하나하나 언급하거나 소개할 수 없다. 압도적인 분량을 차지하는 게 귀신이 등장하는 소재를 다루고 있는 이야기다. 귀신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고집을 부리다가 눈앞의 상대방이 귀신임을 알게 되는 이야기는 귀신의 존재 여부가 과거부터 논란거리였음을 알 수 있다. 참으로 다양한 종류의 귀신이 온갖 사물에 달라붙어 있음을 볼 때 애니미즘의 반영으로 해석할 수 있다.

 

대개의 귀신이 인간을 괴롭히거나 해악을 끼치지만, 간혹 인간에게 도움을 준다든가 하는 예도 있고 때로는 인간이 귀신을 다스리거나 심지어 잡아서 팔아먹는 고사도 있다. 인간과 귀신 간 애틋하거나 아쉬운 사랑 이야기도 전한다. 담생의 고사는 대표적이며, 특히 귀신과 결혼하는 노충(P.419) 이야기는 한편의 잘 구성된 서사를 보여준다. 인간과 귀신의 인연에 대해서는 관점에 따라 다른데, 결혼하여 해로가 가능한 경우 결혼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보는 사례 아니면 인연을 맺었지만 3일 밤낮이 시한인 경우와 같이 다양하다. 주목할 점은 남자 인간과 여자 귀신만 사랑을 나눌 수 있다는 점이다. 남자들의 은밀한 욕망과 판타지를 반영한 이야기라고 하겠다. 반대의 사례는 거의 없지만 있더라도 귀신인 줄 알지 못한 채 이루어지며 나중에 이걸 알게 된 여자 인간은 수치심으로 목숨을 끊는 결말로 이어진다. 남성 중심 사회의 전통 봉건적 사고관을 확인할 수 있다.

 

귀신은 육신이 없고 인간을 능가하는 능력을 가지는 게 일반적이지만 자신의 억울함을 이승의 지방관에게 호소하는 귀신도 있는 걸 보면 꼭 그렇지는 않은 듯하다. 종요의 고사(P.426)를 보면 피 흘리는 귀신도 나타나니 사람과 귀신의 경계가 모호하기조차 하다.

 

오래 묵은 동물이 사람으로 변신한다든가 신선과 귀신의 존재, 꿈과 백일몽, 죽은 사람의 부활, 기이한 자연현상, 은혜 갚은 동물 등 세인의 호기심을 끌 만한 온갖 소재의 이야기는 무궁무진하다.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사람도 듣는 걸 좋아하는 사람도 많다는 건 신기함에 끌리는 것이 인간 본성의 일부임을 알려준다. 어떤 경우를 막론하고 인과응보라는 공통점은 있다. 사람, 동물, 귀신 등에 대해 친절과 선의를 베풀면 보답을 받게 된다. 주인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개 이야기, 단장(斷腸) 고사를 낳게 한 어미 원숭이와 새끼 원숭이 이야기 등이 그러하다. 이 책에 실린 많은 고사를 통해 인간은 자신을 둘러싼 주위의 다양한 존재들을 인정하고 함께 어울려 살아가고자 하는 겸양의 마음가짐을 지닐 수 있다.

 

억울하게 죽어 나무가 된 채 가지와 뿌리가 엉키는 상사수(相思樹)가 된 한빙 부부 고사,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자신의 목을 바친 아들의 처절함이 돋보이는 간장과 막야 고사, 당대의 가치관으로서는 절대적인 하늘도 감동할 만한 효자, 효부 이야기들은 언제나 마음 한구석을 찡하게 만든다.

 

당대에는 우주 현상을 음양오행설로 이해하던 시기였다. 음과 양의 두 정기는 오행의 이치에 따라 형상을 달리한다. , 하늘, 인간, 남자는 양이며, , , 귀신, 여자는 음에 해당한다. 만물의 형상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음양오행의 이치에 따라 변화한다. 당대인들이 귀신에 대해 긍정적인 연유도 이것에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달이 차면 기울고, 물이 차면 넘치듯이 한쪽 정기가 극에 달하면 다른 쪽으로 넘어갈 수 있으므로. 이렇게 보면 인간과 귀신, 인간과 동물 등은 전혀 다른 존재가 아니라 언제든 다른 형상으로 변화할 수 있는 동질성을 지닌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인간 아닌 다른 존재들에게 선의를 가지고 존중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마지막으로 중국 신화와 관련된 고사도 눈에 띄는데, 복희와 여와에게는 용납되었던 남매혼이 인정되지 않아 비극으로 마친 몽쌍씨(蒙雙氏) 고사(P.353)가 안타깝다. 반호 고사는 유명한데, 이 책에서는 반호의 자식들이 만이(蠻夷)임을 밝히고 있다. 그들은 결국 개의 자손이므로 부정적 인식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동명왕 고사(P.356)가 소개되어 있어 우리로서는 흥미로운 대목도 있다.

 

이 책에 담긴 이야기들은 지은이의 순전한 창작이 아니다. 이런저런 경로로 듣거나 읽은 이야기들을 수집하여 정리한 것이다. 따라서 다른 설화집이나 지괴소설집의 내용과 중첩되는 이야기도 제법 있을 것이다. 차이점은 지은이가 단순히 이야기 기록자에 그치지 않고 뼈대를 가다듬고 과도하지 않은 수준에서 살을 붙여 훨씬 이야기답게 정리한 것처럼 보이는 대목이 여럿 있다는 데 있다. 아마 이 책 정도라면 위진남북조시대 지괴소설의 진수를 감상하기에 충분할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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